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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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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Feb 12. 2021

파리, 에서만 겪은 겨울

프랑스 네 도시 이야기, 몽파보리 외전(3)







    여행으로 찾은 몽펠리에, 보르도, 리옹에선 딱 한 가지 계절 -여름- 만 겪었다. 사계절을 전부 겪은 건 파리가 유일하다. 몽펠리에에 반한 나머지 프랑스를 다시 찾았을 때 동선을 억지로 비틀며 몽펠리에를 다시 찾긴 했지만, 같은 계절이었다. 리옹에 갈 때 마침 혁명기념일이 코앞이라 일정을 조금 늘렸으나 그 역시 하루 이틀 차이지, 계절을 넘나들 만큼의 시간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든 여행에 제일 잘 어울리는 계절은 왠지 여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프랑스나 유럽 여행만을 콕 짚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여행의 적기는 모름지기 겨울보다는 여름이 아닐까. 알프스에 스키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유럽 여행을 겨울에 다녀온 몇몇 지인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파리의 겨울이 시베리아처럼 수은주가 밑바닥에서 미쳐 날뛰는 곳은 아니니 겨울 여행을 만류할 정도는 아니다. 자연스레 낭만이란 단어와 그 결을 같이 하는 도시라서 나뭇가지에 가득 달린 잎이 낭만을 풍성히 채워주는 여름이 파리의 이미지에 더 어울릴 뿐이다.      


    겨울이라고 낭만이 없는 게 아니고 기후 변화 탓에 오히려 여름 여행은 더 힘들어지는 요즘이니 여름 여행만을 편애한다고는 말하기엔 좀 눈치가 보인다. 다른 세 도시와는 달리 유일하게 겨울을 보냈던 파리에서 본 겨울의 한 장면은 나름대로 포근했다. 눈 내리는 겨울의 낭만. 풍성했던 여름과 달리 소복한 낭만이었다. 파리가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아니란 걸 아시는 독자는 의아해 할 것이다. 파리에서 눈 내리는 낭만을 찾다니. 나보다 오래 파리에 산 사람도 겨울에 눈을 본 적이 손에 꼽는다고 했다. 낭만도 타이밍인 건지, 내가 겨울 동안 파리에 살 때 눈이 제대로 내렸다. 질척거리는 진눈깨비나 쌓이지 못하고 흩날려 사라져버리는 눈이 아닌 함박눈이 펑펑 내린 날이 있었다.      


    아르누보 스타일로 테두리가 꾸며진 메트로(Métro, 지하철) 간판 주위가 하얗게 덮이고, 일하던 레스토랑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에도 눈이 쌓여 화이트 카펫이 깔린 것처럼 보였다. 마침 파리에 여행하던 누군가는 에펠탑이나 사크레쾨르 사원이나 (당시엔 불타지 않았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눈으로 카메라로 연신 담았으리라. 메트로 간판과 골목 사진은 친구가 찍어 보내 준 사진이고, 파리 명소에 대한 내용은 상상일 뿐이다. 갑자기 이야기 전개가 왜 이러냐면... 파리에 살던 시기는 맞는데... 파리에 눈이 내린 건 친형 결혼식 때문에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였다. 하얀 파리의 낭만은 소문과 상상으로만 품어야 했다. 낭만도 타이밍이다.      


    낭만으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난장판이었단다. 눈이 잘 안 오는 도시라 제설 시스템이 허술했던 탓에 갑작스런 폭설은 낭만은 개뿔, 처치 곤란이었다고... 도로는 곳곳이 통제되고 대중교통 운행도 지장을 받았다고 한다. 메트로 간판 사진을 찍어 보낸 친구는 일본 출신, 그것도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니가타 출신이었는데, 고향의 적설량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정도의 눈으로도 도시가 엉망이 될 수 있는 게 신기했다고도 말했다.      


    다시 파리에 돌아온지 얼마 안 돼서 또 눈이 내리긴 했다. 함박눈이 아닌 싸라기눈. 쌓이지 못하고 흩어져 버려 얼마 전의 폭설처럼 일상에 불편을 끼치진 못했지만, 하얀 낭만도 만들어내진 못한다. 못내 아쉬워 흩날리는 눈이라도 구경하려 창문을 열었는데, 아쉬워하는 걸 또 어떻게 알았는지 건너편 건물 지붕엔 옅게 하얀 장막이 깔려 있었다. 켜켜이 쌓이는 하얀 풍경을 여행 중에 제대로 마주한다면 여름보다 겨울 여행을 선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눈이 녹아 질척이는 얄궂은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당분간은 물에 맞닿은 편애가 가득한 여름 여행을 선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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