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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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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an 26. 2021

물의 거울에 비친 보르도

프랑스 네 도시 탐방기, 몽파보리(3-3)







   Bordeaux [보르도] Bord d’eau [보르도/ 뜻: 물가]


   ‘물가’란 뜻의 단어가 보르도 지명의 어원으로 여겨지는 건 발음이 같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실제 어원인 라틴어 ‘Burdigala’의 뜻도 만(灣) 혹은 늪지이니 ‘물가’와 아예 관련이 없지도 않다) 가론(Garonne)강은 보르도 좌안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는다. 우안인 바스티드(Bastide) 지구는 신시가지로 개발된 곳이니 도시에 이름이 붙을 당시에는 가론강 좌측에 닿은, 말 그대로 ‘물가’에 닿은 도시였다.

  

  물의 도시라는 콘셉트로 꾸며진 관광지 역시 가론 강 한가운데 접해 있다. 물가의 도시 위에 물을 비추기 위한 거울이 있다. Le miroir d’eau, 물의 거울. 이름도 지명처럼 참 직설적인 곳.


Le Miroir d'Eau



자박하게 물이 차 있던 거울은 때가 되면 물안개를 뿜는다.

물안개가 지나면 발목 끝자락에 닿을 정도의 물이 거울 위에 차오른다.

수위가 다시 가라앉을 즈음 이번엔 물안개를 세차게 뿜어낸다.

거울에 비치는 도시의 반영도 시시각각 변한다.

한 사이클이 끝날 즈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거울 위엔 얕은 물이 얇게 한 겹으로 깔린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물의 수위가 높아졌다 가라앉기도 하고, 물안개가 낮게 깔렸다가 높게 솟구치다 하는 물의 거울.



물의 거울 위를 지나는 아이들의 발끝에서 퍼지는 동심원에 시선이 멈춘다.

뒤뚱뒤뚱, 아직은 어색한 걸음을 내딛는 아기에게서 아주 작은 원이 퍼진다.

힘찬 뜀박질을 하는 아이에게서 넓어진 보폭만큼 더 커진 원이 퍼진다.

키가 세 뼘 정도 더 자란 소녀가 켜켜이 퍼져 온 원을 톡 건드리니 세 뼘만큼 다시 한번 커진 원이 퍼져 나간다. 물의 거울 곳곳에서 퍼지는 동심원은 동심(童心)원이다.


물의 거울 곳곳에서 퍼지는 동심원은 동심(童心)원이다.



언제 잃었는지도 모르는 사이 사라져 버린 나의 동심.

아이들이 만들어 낸 동심원을 지날 때만이라도 동심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물의 거울 위를 걸었다.

발 아래 늘어진 반영이 걷고 있는 나를 따라온다.

물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는 동심이 담겨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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