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행복 실천기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한 밤이면 두 손을 모았다. 누운 자세 그대로 눈을 감았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으면 작은 우주가 펼쳐졌다. 별처럼 작은 것들이 반짝였고 가끔은 낯선 형상을 만들기도 했다. 눈을 감아야만 펼쳐지는 세상에 집중하다보면 머릿속을 뛰어다니는 잡다한 생각들이 잊혔다. 잊힌 생각 중 어떤 것은 꾸역꾸역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속으로 천천히 “괜찮아.”를 외치면 잦아들었다. 불안이 잦아들면 기도를 시작했다. 나는 예수님과 부처님,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기도하며 불안을 털어놓았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엔 종교의 경계랄 게 없었다. 그랬기에 어떤 날엔 교회에 갔고, 어떤 날엔 절을 찾았다. 교회에 가면 내 또래의 아이들부터 엄마 또래의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와 언니에게 알은 체를 했고 또 친근하게 다가왔다. 일요일마다 간 그곳은 늘 활발하고 시끄러웠으며, 사람이 많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반면 절엔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많았다. 스님은 우릴 봐도 가볍게 합장할 뿐, 말을 걸지 않았다. 절을 방문한 사람들 역시 그랬다. 그들은 불상 앞에 서서 조용히 절을 했다. 절을 찾을 땐 가족 모두가 함께였는데, 엄마와 우리에게 절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저기 방석 가져와서 엄마 옆에 서 봐.” 식당이나 가정에서 쓰는 방석과 달리 절에 놓인 방석은 무겁고 길었다. 나와 언니는 키만 한 방석을 잡고 엄마 옆에 섰다. 그럼 엄마는 “봐봐.” 하는 말과 함께 천천히 절을 했다. 엄마는 가볍게 합장한 후 무릎을 꿇고 방석에 머리를 댔다. 머리를 대면서 땅을 짚은 손바닥은 다시 하늘을 봤고, 동시에 머리와 몸을 일으켰다. 엄마는 총 세 번의 절을 했고 마지막엔 합장한 후 목례했다. 나는 엄마를 따라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교회와 달리 절을 하려면 몸을 움직여야 했다. 가장 먼저 손을 모아야 했고 무릎을 꿇어야 했다. 꿇은 무릎 그대로 머리를 숙이고 다시 머리를 일으키고. 절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절하는 거 어려워. 이걸 왜 하는 거야.” 하며 내가 툴툴거리면 엄마는 “간절히 바라는 게 있으니까 그렇지.” 했다. 엄마는 기도하는 걸 수련이라 했고, 누군가 밉거나 하루가 힘들 때면 마음속으로 빌고 끝내라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도하는 게 왜 수련인지, 할머니들이 왜 불상 앞에서 그토록 열심히 절하는 지를 말이다. 시간은 한 해, 두 해 지났고 내가 자라는 만큼 불안도 커져갔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의 말대로 부처님께, 예수님께 기도했다. 어서 빨리 이 불안이 가라앉게 해주시고 마음속에 깃든 나쁜 마음을 잠재워달라고. 하지만 불안은 잘 가라앉지 않았고, 나쁜 마음을 가라앉히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아무리 간절한 기도라도 그것이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기도는 부수적인 것이었고, 실질적인 노력은 내가 해야 했다.
불안이 계속 되는 밤, 끊기지 않는 기도를 하면 불상 앞에서 열심히 절하며 기도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할머니는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간절히 기도했던 게 아닐까 하는. 간절히 바라는 것이 모두에게 하나쯤은 있으니, 그 할머니에게도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불안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사이 나는 불상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던 할머니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불안과 친해지고 그것이 작아진 후 내 기도는 바뀌었다. 이전의 기도가 불안을 없애고 자주 덜컹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면, 요즘의 기도는 가족과 소중한 이의 행복과 건강을 바라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나는 기분이 좋을 때면 내 주변 사람들의 기분도 좋아지길 바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