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행복 실천기
마음이 붕 뜨는 날이 있다. 해야 할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밥 먹는 걸 포함해 모든 게 다 귀찮기만 한 날이. 그런 날이면 몸이 무거웠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게 힘들었고, 애써 몸을 일으킨다 해도 엉덩이가 다시 땅을 찾았다. 자는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상태로 눈을 깜빡이다, 이제 정말 일어나야지 하며 책상 앞에 앉으면 정신이 도망갔다. 그저 쉬고 싶은 몸은 책상 앞에 앉았다는 이유로 정신을 멀리 보냈다.
일 년 중 대개의 날이 위와 같았던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저 귀찮기만 했던 그때, 공부도, 운동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었다. 가족만 있는 집이 좋았고, 또 나만 있는 방이 좋았다.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휴대폰을 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휴대폰을 보다 배가 고프면 대충 밥을 먹은 후 다시 침대에 누웠고, 티브이나 휴대폰을 보다 졸리면 잠을 잤다. 밤낮은 자연스레 바뀌었다. 나는 새벽 다섯 시가 넘어 잠들었고, 오후 두 시가 되어야 잠에서 깼다. 늦은 오후, 닫힌 방문 너머로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눈을 뜨면 벽에 걸린 시계가 보였는데, 늦은 오후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면 자괴감이 들었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오후 두 시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엄마는 자고 일어난 내게 “밥 먹어야지.” 했고, 나는 “나중에.” 라고 대답했다. 밤낮이 바뀐 나를 보고도 엄마는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저 내 끼니를 걱정했다. 지금이라면 엄마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겠지만, 그때엔 엄마의 관심이 싫고 불편했다. 내가 뭘 하고 뭘 먹든, 아무도 몰랐으면 했다. 방금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으면서도 내 몸은 다시 침대로 향했고, 휴대폰을 조금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을 뿐인데도 머리가 아프고 몸이 힘들었다. 눈이 휴대폰을 보며 웃을 때, 머릿속에선 해야 할 것을 잊느라(좀 더 정확히는 잊지 위해) 바빴다. 마음껏 쉬기 위해선 해야 할 것이 없어야 하는데, 머릿속엔 해야 할 것투성이였다. 동시에 시간을 잊어야 했다. 시간을 잊고 시간에 대한 강박을 잊어야 맘껏 쉬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휴대폰을 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시간이었고,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 역시 시계였다.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기 위해선 잊어야 할 게 많았다. 그렇게 여러 번의 방학이 가고 주말을 지났을 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아까웠고 새벽이 아까웠다. 여덟 시간을 자더라도 열두 시에 자고 여덟 시에 일어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졸리고 힘겹더라도 아침을 맞고 싶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일어나는 아침이 그리웠다.
기상 시간과 잠에 드는 시간은 학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저절로 맞춰졌다. 아침 수업이 있는 날이면 일찍 일어나야 했고, 그러려면 일찍 잠들어야 했다. 오후 수업이 있다 해도 학교까지 한 시간이 걸리기에 너무 늦게 일어날 수는 없었다. 주말 역시 게으르게 보내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주말엔 밀린 과제를 하고, 책을 읽어야 했다. 해야 할 일을 만들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선 시간을 잘 써야 했다. 나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 과제를 하고, 수업을 들었다. 시험 기간엔 시간을 더 쪼개서 사용했다. 바쁜 삶이 계속 되자 게으르게 보냈던 시간이 더욱 아깝게 느껴졌다. 마냥 휴대폰을 보다 해가 뜨고서야 잠들었던 날이 눈에 밟혔다. 하지만 과거를 떠올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오늘 하루를 열심히, 잘 사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러 번의 학기를 보낸 후 방학이 되었을 때, 또 휴학을 선택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해야 할 일 목록을 만드는 것이었다. 동시에 나는 잘 쉬는 방법을 고민했다. 적당히 게으르면서도 일상이 유지 되고, 무기력해지지 않는 쉼에 대해 말이다.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벌였기에 일상은 잘 유지됐다. 하지만 쉼에 대해 고민해본 적 없기에 주말이면 무얼 해야 할지 고민했다. 주말엔 아홉 시에 일어나 아가들 간식을 주고 자는 아가들 곁에서 코를 파묻기도 하고 휴대폰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 점심이 되면 밥을 먹었고 언니와 함께 “뭐 하지?” 외쳤다. 언니 역시 한때 게으른 생활을 했었지만, 요즘엔 시간이 아깝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볼 바엔 차라리 산책로라도 걷는 게 낫다며 말이다. 우리는 평일마다 돌아오는 주말에 무얼 할지 생각했다. 그 결과, 어떤 주말엔 가까운 곳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갔고 또 어떤 주말엔 집 앞 카페에 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저녁이 되면 평일처럼 운동을 했고, 끼니 역시 거르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리는 쉬는 걸 하나의 일처럼 여겼다. 매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고, 카페에 가고, 친구를 만나면 좋겠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나와 언니는 이러다 쉼에 대한 강박이 생기는 게 아닐까 웃으며 걱정했다. 그러면서 “그때 너무 게으르게 살아서, 지금이 더 아까운 것 같아.” 했다.
쉼은 어쩌다 한 번 먹는 초콜릿과도 같다. 그것은 일정한 일상 속 자그맣게 끼어있을 때 더욱 빛나고 달콤하다. 그렇기에 아끼게 되고 그것을 더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에겐 모두 같은 하루가 주어진다. 하지만 그걸 사용하는 방식과 대하는 태도는 모두 다르다. 예전의 내가 하루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게으르게 대했다면, 요즘 나는 하루를 소중히 대하고 반갑게 반긴다. 그렇기에 그 사이에 끼인 쉼이 더욱 크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계획한 대로 하루를 보낸 뒤 휴식하는 삶. 오늘은 또 어떤 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