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행복 실천기
늦은 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흐리게 빛나는 야광별이 보였다. 야광별을 보며 눈을 두세 번 깜빡이다 아래를 보면 책장이 보였고, 조금 더 왼쪽을 보면 옷걸이에 걸린 가방이 보였다. 어두운 방 안, 흐린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경계가 없었다. 모든 것들이 두루뭉술했고 표정이 없었다. 불투명한 창을 넘어 새어드는 가로등 불빛과 이따금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 밤이 되면 동네는 어두웠고 조용했다. 가로등만이 밝게 빛나는 밤, 공기처럼 떠도는 고요를 느끼며 눈을 감으면 잔잔한 불안이 고요 속에 스며들었다.
열네 살, 학교에서 심리검사를 진행했다. 백 개가 넘는 질문은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물었고, 별 고민 없이 답안을 체크했다. 검사를 진행한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담임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선생님은 내게 일주일 전 시행한 심리검사를 언급하며 보건실에 가보라고 했다. 보건실엔 보건 선생님과 침대 몇 개, 각종 약이 든 캐비닛이 있었다. 보건 선생님은 검사 결과지를 펼치며 말했다. “불안이나 우울, 자살충동에 대한 점수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조금 높게 나왔어.” 선생님은 검사 결과지 속 내 점수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선생님의 말대로 내 점수는 평균보다 조금씩 높았다. “네가 원하면 심리 상담을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데, 나는 네가 상담 받는 걸 추천해.” 선생님은 고민하는 나를 보며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말하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게 뭘까, 생각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매주 월요일 5교시, 아이들이 수업을 들을 때 나는 상담실로 향했다. 첫 상담에서 저번과 다른 검사지를 받았고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열심히 체크했다. 앞선 검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검사지 역시 정신 건강을 물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니? 있다면 언제니? 자주 그렇게 생각하니? 네 삶에 만족하니? 검사는 지겨웠다. 상담은 형식적이었고, 나는 그저 웃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일기를 쓰게 했지만 일기 속에 나는 없었다. 나는 그저 얼른 한 페이지를 채워야지 생각했고 때론 문장을 쪼개고 또 쪼갰다. 그 사이 아이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상담을 마치고 온 내게 수업을 듣지 않아서 좋겠다고 했고, 가서 뭘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럼 나는 또 한 번 웃었다. 상담 선생님과 함께 하는 사십 분을 아이들에게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상담은 약 세 달에 걸쳐 끝이 났다. 상담의 마지막 날 받은 검사지에 긍정적인 답안을 적었고,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떠났고, 나의 불안은 상담이 끝난 후에도 곁에 남았다. 곁에 남은 불안을 해소할 방법은 오직 내게 있었다. 나는 불안을 보고 도망치는 대신 곁눈질로라도 마주보려 했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을 찾으려 했다.
자주 나를 찾아오는 불안은 혼자 있을 때나 어두운 밤을 좋아했다. 창문으로 햇볕이 드는 오후, 낮잠을 자다 일어나면 불안은 내 곁에 있었다. 나는 이불을 코까지 끌어당기고 주변을 둘러본 후, 서둘러 침대를 벗어났다. 침대를 벗어나고 방을 벗어난 후에도 심장은 쿵쿵 소리를 내며 뛰었고, 불안은 내 안으로 숨어들었다. 불안은 때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했고 예민하게 굴었으며, 작은 것에도 짜증을 냈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는 다른 친구를 데려왔다. 작은 것에 오들오들 떠는 불안과 달리 친구는 파괴와 죽음을 생각했다. 친구는 그의 곁에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였다. 가족을 죽이고 친구를 죽였으며, 종래엔 나를 죽였다. 그것들이 내 머릿속을 한바탕 헤집은 날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고 죽음과 관련된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불안한 마음으로 잠든 날이면 꿈자리가 사나웠다. 모르는 누군가를 피해 도망 다녔고 헐벗은 몸으로 거리 한가운데 놓이기도 했다. 때론 낯선 이가 대문 밖에서 나를 지켜봤고, 그러다 갑자기 현관문이 열려 놀란 상태로 눈을 뜰 때도 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꿈으로까지 이어지는 날이면 하루가 괴로웠다. 자꾸만 가족을 죽이는 내가 싫었고 스스로를 찌르지 못해 악에 받친 나도 싫었다. 나는 이러한 내 상태를 언니에게 고백했다.
형식적이었던 상담과 달리 언니는 내 불안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언니는 내게 강박 증세를 고백하기도 했는데, 심한 날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몸을 지배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의 불안과 강박을 털어놓았다. 동시에 무기력해지지 않으려 노력했고 누워있기보단 몸을 쓰는 데 집중했다. 몸을 쓰고 머리를 쓰니 자연스레 불안이 차지할 공간이 줄어들었다. 언니는 강박 증세의 강도가 조금씩 약해지는 것 같다고 했고, 나 역시 그렇게 느꼈다. 불안과 강박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안정과 괜찮음을 끼워 넣었다. 마음이 불안한 날엔 가슴에 손을 대고 괜찮다고 토닥였고, 강박이 심해지려하면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우리는 우리를 다독였다. 불안해지려는 마음에 괜찮다는 말을 불어넣었고, 조급해지는 마음에 쉬어갈 수 있는 숨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언니와 나는 몇 년 간 노력했다.
요즘 나의 불안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폭력적인 생각 역시 줄어들었고, 누군가 쫓아오는 꿈 역시 덜 꾸게 되었다. 물론 가끔씩 불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지만 예전만큼 당황하거나 그것 앞에 무력해지지 않는다. 주저앉아 울거나 두려워하는 대신 그저 가만히 누워 가슴에 손을 얹고, 괜찮아, 괜찮아 한다. 그럼 정말 마음이 차분해지며 괜찮아진다. 오늘 밤도 나는 침대에 누워 가슴에 손을 얹고 괜찮아, 괜찮아 할 것이다. 고요 속 스며드는 불안을 다스리고, 그것에 울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