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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승희 Jan 11. 2019

퇴사한 '요젊것'에게 필요한 것

월간퇴사_후_2년_아직_잘살고_있습니다 (5)

Photo by George Keating from Pexels


모든 퇴사는 축하받아야 한다. 도망치는 퇴사, 절박한 퇴사 모두 그 상황을 빠져나온 누구든 축하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특히 나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각종 규칙을 적극 따르면 살아온 모범생들, 노력한 만큼 돌려받으리라 믿은 사람들은 더더욱.


사회가 예시로 들어준 안전한 사례를 쫓아 열심히 살았다. 운 좋게 취업도 했다. 하지만 유연성 없는 회사에 숨구멍이 조여든다. 이런 상황의 당신이라면 퇴사는 헬조선 청년 최초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다. 퇴사 후 이직과 스펙업 대신 나만의 원칙을 세워 사는 실험은 이제 2년을 향해 간다. 요즘 들어 퇴사 초기에 없던 감각을 느낀다. 내가 삶을 개척해간다는 느낌이다.


겉보기엔 남들처럼 땅을 걷고 있다. 남들 보기엔 흔들거리고 울퉁불퉁한 땅이다. 안정적이지 않다. 나 역시 가끔은 불안정하다. 위협받는 것 같다. 내 삶과 선택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내가 맞는 방향으로 삶을 선택했다는 믿음이 있다.


물론 앞선 글에 토로한 것처럼 너무너무 괴로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만의, 나다운 길을, 누가 점지해준 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다는 것은 정말 새롭다. 내가 유일한 사람이 아니다. 이미 자기 삶을 자신의 속도대로 개척해가는 이들을 여럿 만났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의 프로젝트 모임 <독립활동가의 시대>에서 만난 독립러들이다. 모임 운영자인 우군과 하진은 같은 직장을 퇴사한 사이다. 퇴사 후 각자 관심사대로 활동하고, 프리랜서로 일도 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왜 존중받기 어려울까?


회사원 대신 다른 말로 내 일과 내 정체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들, 우군과 하진은 '독립러'라는 큰 범주로 이들을 모았다. 첫 만남은 '독립활동가 고충 토로회(2017.11)'였다. 수다회 공간에 둥글게 앉은 우리는 서로를 향해 눈빛을 반짝였다. 어색함? 기대감? 한바탕 이야기가 돌고 나니 그 눈빛이 호기심이었음이 드러났다. 다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 오는지’ 궁금했다고.


주최자 2인 중 하나인 지구별우군(이하 우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군은 1년 반 전 퇴사한 후 프리랜서, 알바생, 독립 연구자 등 여러 이름으로 호명됐다. 그 과정에서 서러운 사건도 겪고, 외로움도 느꼈다.


“조직에서 시키는 일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독립러로 잘 살아보고 싶었어요... 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일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데 울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뭘까, 독립러? 독립활동가? N잡러? 프리랜서? 일단 ‘독립활동가의 시대’로 모임을 만들었어요. 참석자의 욕구를 파악하고, 격식 없이 사는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었어요.” - 우군


참석자 12명(주최 측 포함)의 정체성은 다양했다. 각각이 다를 뿐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도 여러 정체성이 공존했다. ‘아그래요’는 빠띠(데모그라시 액티비스트 그룹) 활동가이자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 연구자이다. ‘희원’은 희망제작소의 직원이자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활동가(운영위원)이다.


“한 곳에만 소속감 느끼지 않는 것이 저에겐 독립일까요? 고립되어 있거나 자립된 형태로서 독립러라기보단, 개인으로서 여기저기를 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요.” - 희원


수다회 장소 제공자이자 참여자로 함께 한 ‘최경민’은 식재료 유통업에 종사하면서 카페샘을 운영한다. 문화예술인과 카페를 공유해 그들도 화폐를 벌어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경민의 카페 공간에서 연주회를 기획한 ‘로망클라’는 음악 전공자이며 연주가 본업이다. 최경민은 이곳이 문화센터로서 자리매김하길, 로망클라는 자신의 활동이 충분한 수입으로 연결되길 바란다.


“시향의 신입 단원 자리에는 졸업생이나 유학파 아니고서 들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레슨 알바를 많이 다니는데,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죠.


그러다 보니 뭔가 해야 하겠다 싶어서, 기획 쪽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공연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있지만, 생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관객을 유치하기는 어려워요.” - 로망클라


독립러로 커리어 전환(?)을 한 이도 만났다. ‘오미자’는 누군가 던진 ‘뭐하세요?’라는 질문에 ‘논다’고 대답한다. 5월부터 놀기 시작했는데 혼자 노는 게 지겨워서 얼마 전엔 행사(지리산 포럼)를 열어 100명 정도를 모아 함께 놀았다고.


“전 시간 부자예요. 재미를 쫓아서 시간을 흥청망청 쓰고 있어요. 지리산 포럼에서 청년 기획자로 우군을 만났고, 지난주엔 뜬구름 학교에 가서 안 본 영화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우고, 책 안 읽고 저자 사인회도 가보고(일동 폭소).” - 오미자


’로아나’의 경우 독립러의 감각을 얻고 싶은 CEO(!)였다. 비영리 섹터에서 사회 혁신 관련 연구를 했으며 동료와 공동창업을 했다고. 4년 동안 작은 조직(4명)에서 일하던 중 올해 긴 휴식을 갖고,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다면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4년 간 이런저런 과정 거치며, 제가 이 안에서 정해진 역할만 수행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프로젝트 실행 중 누군가는 기획, 다른 이는 리서치, 또 다른 이는 현장, 이렇게 나뉘는데 점점 고착화되더라고요. 이런 부분은 또 어떻게 깰 수 있을까, 고민이 되죠.


제가 어디까지 해볼 수 있는지, 일에 대해 어디까지 주도할 수 있을지 실험해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독립활동가 정체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로아나


참석자 중 가장 신기했던 사람은 3년 차 독립러 나무영이었다. 3년 동안 조직에 들어가지도, 돈 벌기를 우선으로 삼지도 않은 채 어떻게 생활했을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데 걸린 시간이 길었어요 물론 ‘내년에 활동 자금이 고갈되면 어떻게 하지?’ 이런 고민이 들 수도 있죠. 그런데 이런 문제는 지금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어요. 미래의 부정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당겨서 고민하는 거니까요. 저의 결론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는 거예요.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빠르게 도전해야죠.” - 나무영


그는 과거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로서 많은 일을 처리하며 바쁘게 살았지만, 현재 우선순위와 삶의 관성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https://goo.gl/NcBqwi)>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사회에 나와서 목적에 맞게 사람을 가려 만나는 방식을 배웠죠.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기회도 오지 않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플라스틱 컵을 화분으로 재활용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제 일의 결과물이 상품으로만 비치기보단, 나무를 심자는 메시지가 좀 더 주목받았으면 좋겠어요.” - 나무영


물론 나무영과 달리 돈에 대한 압박을 매우 무겁게 느끼는 독립러도 있었다. 굿데이는 얼마 전 퇴사를 하고 독립활동가로 살아가려 한다. 그런데 집세와 학자금, 생활비에 대한 걱정이 크다.


"항상 혼자 활동하는 1인 활동가를 동경했어요. 주변 지인 중 그런 분들도 꽤 있어서 얘긴 많이 들었지만, 두려웠어요. 지금은 그 두려움을 맞닥뜨리는 중이에요.


또 며칠 집에 있으면서 보니까, 자칫 잘못하면 나태해지겠더라고요. 밥 먹고, 티비 보고, 눕고, 이런 생활이 반복되지 않을까.


힘과 위안과 알바 거리를 던져주면 기쁜 맘으로 나서겠습니다. 소비를 줄이는 삶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죠.” - 굿데이


독립 활동으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우리 중 가장 생존 기간이 긴 나무영은 무엇보다 자신만의 페이스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퀄리티와 상관없이 자기 시간에 맞게, 누가 보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인스타든 어디든 활동을 해서 팬이 생겨야 해요.

수익은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고 팔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 ‘저 독립러는 이걸 하더라’라는 인식이 연결되어 발생하는 게 아닐까요?” - 나무영


‘하진’은 돈 외에 고충도 토로했다. 바로 ‘존중’의 문제였다. 그는 카페 사장인 최경민과 함께 남가좌동 마을 공동체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공동체의 구성원, 혹은 가까운 지인의 말에 가끔 상처받는다고 한다. 지역에서 가족과 함께 유기농 벼농사를 짓는 ‘날자’ 역시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옆에선 다 자기 모임에 소속됐다고 생각하며 일을 부려먹죠.” - 날자


“마을공동체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얘기가 맘에 꽂혀 올 때가 있어요. ‘취업은 해야지’, ‘잠깐만 와서 뭐 해줄래?’ 물론 서로 오래 이어진 관계니까, 제가 나쁘게 되길 원해서 하는 말이 아님은 알죠.


내가 번듯하게 나를 잘 설명한다면 , 정해진 뭐가 있다면 그거에 맞춰 요청하실 텐데. ‘이일, 저일 잠깐 와서 해주면 돼’, ‘너 편할 때 와서 해줘’...” - 하진


존중의 문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가까운 사이에선 조금 기분 나쁠 정도로 끝날 수 있지만, 대가가 오고 가는 사이에선 후려치기의 문제로도 연결된다. 그래서 독립러를 설명하는 울타리가 필요하기도 하다. 우군과 하진이 듣는연구소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연구소 명함 없이 다닐 때랑 지금 사업자 등록해서 명함 들고 다닐 때가 매우 달라요. 호칭부터 단가까지.

우리가 하는 일이 서로 즐거워서 하는 일이지만 한 스텝 더 나가서 화폐를 벌 수 있는 다른 일로도 확대되면 좋겠어요.


그 방식이 독립러를 맞이할 준비가 1도 안 된 이 시대를 헤쳐나갈 우리의 수용법 아닐까요?” - 우군


고충 토로회에 오지 못했지만 이미 10년 이상 독립적으로 활동한 쓰잘데기종합상사 원영님도 있다. 십 년 전 조직을 퇴사하고 독립 활동을 시작했다. 조직 일원으로 일하는 방식이 당연한 선배들은 하나같이 충고했다. '너 그러다 오래 못 간다, 혼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려고 하냐' 그런데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이야말로 지금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고.


원영님을 통해 자기만의 속도로 꾸준히 움직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원영님은 자기만의 속도뿐 아니라 자신을 지킬 울타리로 자신과 비슷한 활동가들을 모아 쓰잘데기종합상사라는 이름의 느슨한 공동체를 만들었다. 우군&하진의 듣는연구소와 유사한 역할이라 추측한다.


독립러 수다회가 열린 시절 회사원이었으나 이제는 퇴사 후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는 독립러 가현님도 있다. 회사원 1년 차부터 조직의 한계를 느끼고 일과 조직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고민의 결과물로 '내-일은 가볍게'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월간퇴사에 퇴사론도 기고하며 퇴사를 차근차근 준비한 그는 퇴사 후 N잡러이자 로컬 큐레이터로 활동한다. 맘의 고향 강원도와 현재 사는 송파구를 왔다 갔다 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제왕이라고 생각하는 갱님도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다. 갱님은 회사를 다니며 조직 밖의 다양한 공익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게다가 고정 칼럼니스트이자 육아 노동자이기도 하다. 이분이 한 일을 하나하나 거론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소개는 여기서 줄이려고 한다.


이런 다양한 일의 방식, 일하는 사람들, 일하는 문화를 큰 틀에서 연구&활동 중인 손호석( 조직문화 탐구생활 https://brunch.co.kr/magazine/jojiktamgu)님도 있다. 그는 나와 비슷한 시기 퇴사했으며 여전히 독립 상태를 유지하며 이런 현상들을 연구 중이다. 내가 만나지 못한 이들이 많을 테다. 이런 활동을 부러워하며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사람들의 독립적인 활동이 사회에 어떤 새 바람을 만들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 5060에게 익숙한,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다. 다양한 일을 걱정 없이 벌일 수 있는 여유다. 만약 육아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조직문화가 만들어지도록, 남성 육아휴직이 다양한 직군에서 당연해진다면 갱님은 더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듣는연구소의 우군&하진님이나 호석님같은 독립 연구자를 위한 다양한 공모 사업(각종 활동비와 영수증 하나 하나 첨부하고 사용마저 제한적인 그런 짜증 나는 기존 공모사업 대신...)이 열려야 한다. 내가 아는 가장 젊은 독립러 가현님과 가장 원숙한 독립러 원영님이 하고 싶은 공익적 활동을 걱정 없이 벌일 수 있도록,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구직 활동 전제 청년 수당과 다른 성격의 청년 보장이 필요하다. 요즘 젊은것들이 사회에 전파할 다양한 활동의 공익성을 인정하는 기본소득말이다. 


내가 언급한 이들 모두 퇴사 후 여유를 찾고 이런 활동들을 시작했다. 더 많은 퇴사자들이 퇴사를 삶의 주체적 선택이자, 새로운 인식의 기회로, 사회의 활력을 확대하는 활동의 계기로 선택할 여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들의 마음 속에 웅크린 생존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놓쳐서도 안 된다. 이런 배려와 고민 없이 요즘 젊은것들에게 활력이 없다, 청년은 엔포세대다, 무기력하다, 불만만 많다,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은 전부 입 다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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