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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승희 Jan 11. 2019

어쩌면 취준생에게 더 필요한 퇴사론

월간퇴사_후_2년_아직_잘살고_있습니다 (4)

87년생, 주민등록상 여성으로 명명된 나. 내가 개별적인 인간이 아니라 내가 속한 세대의 한 명이라는 관계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는 <월간퇴사>다. 월간퇴사는 월마다 퇴사자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 퇴사자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만든 콘텐츠다.


월간퇴사 아이디어는 2년 전, 아직 회사원 시절이던 어느 봄날 직장 동료와 밥 먹던 중 떠올랐다.

두 번 퇴사했는데 전 직장이 정말 ~@#$%&&!! 했어요, 전 첫 직장에서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서 퇴사했어요. 그리고 침묵의 공감. 우리의 동지애는 퇴사 유발 상황과 원흉들을 잘근잘근 씹어 삼키며 급성장했다. 그리하여 퇴사 이야기로 대동단결.


흔한 이야기다 내 옆 자리의 동료뿐 아니라 어린 시절 친구, 대학 후배, 동기, 선배, 동네 친구 등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번 퇴사를 하고 이직을 했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이 흔치 않을 뿐 아니라 신기한 시대. 덧붙여 그 회사에 어떤 특별한 것이 있구나 상상하게 만드는 시대.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고민하며 퇴사하는 시대.


처음엔 그저 흥미로웠다. 퇴사자의 이야기에 담긴 각종 짠내를 모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퇴사하지 못한 퇴사 실패자, 여러 이유로 아직은 대기 중인 퇴사 꿈나무의 이야기 역시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온라인 기사 중 퇴사 이야기가 나오면 거기 달린 댓글 수는 항상 보통을 넘어선다. 생각을 뻗어나가다 보니 문득 이게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잦은 퇴사, 모두가 공감하는 퇴사, 분노하는 퇴사자들... 이거 괜찮나? 뭔가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퇴사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주 퇴사한다. 특히 나랑 비슷한 출생 연도에 태어난 세대에서 많이. 퇴사를 개별적, 개인적인 사건으로만 봐도 될까. 그게 아니라, 퇴사를 많이 시키는 공통의 원인이 존재하지 않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원흉은 조직문화다. 이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던 연도의 초, sbs 스페셜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에서 대량 퇴사의 원인으로 조직문화를 조준했다. 방송에선 대기업 퇴사자들 이야기가 나왔지만, 나처럼 작은 회사나, 스타트업 퇴사자도 주변에 너무너무 많다.


일단 '조직 문화'를 퇴사의 공적으로 상정했다. 내가 겪은 조직 문화뿐 아니라 매체와 친구들을 통해 접한 조직 문화 중 '후대로 전수하고 지금도 널리 알려야 하는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이런 조직은 거의 없었다. 상명하복과 효율 중심이 핵심이었다.


개인은 항상 조직에 맞춰야 하고, 상사의 지시가 이상해도 반박할 수 없는, 반박하려면 상사가 시킨 일이 완전 망할 정도까지 가봐야 원점 재검토가 가능한, 직원들이 논의해서 결정 후 진행해도 윗사람 '맘'에 들지 않으면 stop!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접어야 하는 일이 산재하는 조직의 문화. 보스나 인사권자 주변에 최대한 고생한 티내기가 실제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보다 중요하고, 주말 저녁 없이 야근하는 자신을 주변에 자랑스럽게 보이는 상사들이 즐비한 회사.


이런 회사에서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일하다가 생기만 쪽쪽 빨려 퇴사하는 요즘 젊은것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누가 신경 쓰고 있지? 정부는 요즘 젊은것들의 취업률 상승 정책에만 급급하다. 그럼 뭐해, 결국 다 퇴사할 텐데. 취업자 증가만 신경 쓰는 것처럼 본질에서 벗어난 게 없다. 그런데 요즘 젊은것들을 향해 항상 뭔가를 포기한다는, 안타깝고 불쌍한 프레임만 씌운다. 역겹다. 위선이다.


요젊것이 불쌍하고 안타까우면 자기들이 가진 걸 포기해야 한다. 내려놔야 한다. 조직 리더이든 정책 결정자이든 요즘 젊은것들을 받아들여서, 그들이 만든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변화 가능성을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 신경 써야 한다. 요즘 젊은것들이 조직에 적응해서 변화하는 것만큼, 조직은 요즘 젊은것들에 가져다준 변화에 얼마나 적응하고 있나? 그런 조직을 만나고 싶다. 이런 고민을 하는 정책결정자는 있을까? 이런 사회에서 우리 세대는 그저 숨만 쉬는 회사원으로 성장하고, 그러다 퇴사를 하고, 다시 또 입사를 하고, 또 퇴사를 하고... 도태되지 않기 위한 각자 생존에 골몰한다.


월간퇴사를 통해 사회에 작은 충격이라도 주고 싶었다. 개인의 퇴사 이야기를 모이 공통점을 뽑으면 퇴사가 개인 탓만이 아님을 알릴 수 있으리라. 지인들에게 퇴사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핵심은 솔직하고 자세하게, 원칙은 가명. 글쓰기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퇴사론 쓰기가 자연스레 조직에서 겪은 오러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되리라 예상했다. 물론 절대 쉽지 않다. 글을 쓰려면 퇴사의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데, 그때를 직면하는 게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다. 떠올리고, 성찰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나의 경우 퇴사론 작성에 3개월을 쏟았다. 직면도 괴로웠지만 쓰다 보니 퇴사론이 곧 내 인생 이야기와 연결됐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 그러리라. 회사 취업 후 조직에 적응하기란 헬조선 청년에게 기대되는 1순위니까. 대부분이 20대의 많은 시간을 '취업, 스펙, 경쟁, 생존' 키워드에 투자했을 것이다.


퇴사론 덕에 나에 대한 아픈 진실도 깨달았다. 모든 게 조직문화 탓이라고 욕했지만, 정작 나 역시 책임이 있었다. 조직이 요즘 젊은것들을 받아들이며 어떤 변화를 준비할지 알지 못했던 것처럼, 나 역시 몰랐다. 조직에 적응하면서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그저 취업에 성공해서, 조직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버티면서,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조직 안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과 책임이 무엇인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나아가 내 삶에서 조직과 일은 어떤 의미인지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


조직이란 기계에 들어가는 나사 부품이 되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인간이다. 느낌과 감정을 가진 생명체다. 무생물이 될 수 없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생명이 들어가 움직이는 생명의 결합체다. 조직은 변하기 어렵지만, 태생적으로 본질적으로 변하는 존재다. 그걸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 다 완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조직 전체에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퇴사론을 쓰고 깨달았다. 물론 현실에서 거대 조직과 소수 개인의 힘은 매우 차이남을 안다. 그럼에도 주도권이 나에게도 아주 조금은 있다는 걸 알아야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이걸 미리 알았다면 나의 회사원 생활이 달라졌을 텐데. 취준생들부터 퇴사론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나만의 퇴사론을 갖고 조직생활을 하면 일하는 마음이 달리 세팅된다. 비록 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처럼 참고 견디다 도망치듯 퇴사하거나, 폭발하듯 퇴사하지 않으리라. 조직과 개인 간 변화와 적응은 커녕, 내 요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조직에서, 퇴사론은 나를 보호하는 가장 최소한의 갑옷이 될 수 있다. 월간퇴사 저자들 중 퇴사론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몇몇에게 듣긴 했지만, 더 많은 사례를 알고 싶다. 혹시 퇴사론 작성으로 회사 생활에 도움받은 분이 계시다면 꼭 연락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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