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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승희 Aug 17. 2017

행사에서 가장 1순위는 누가 되어야 할까

정말 그럴까? 궁금하다(1)

금천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기념무대에 엄마가 올랐다. 구 내 여성 합창단 몇 곳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서른 여명중 하나였다. 금천구 시민과 시민사회단체가 성금을 모아 만든 소녀상 건립을 기념하기 위한 날, 2017년 8월 15일, 광복 72주년일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생존자들이 겪는 문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아파 할 일이다. 엄마 역시 그랬다. 어쩌면 여자로서 더 절절하게 느낄 일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소녀상 건립 기금 계좌에 돈을 보냈고, 무대 연습도 성심껏 참여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후 엄마의 상태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창백했다.


기념 행사는 구청 마당에서 5시부터 시작했다. 소녀상 건립 준비위 인사가 준비 과정을 무대 앞 군중에게 보고했고 내빈을 소개했다. 기념사가 있었고 합창단이 올랐으며 대금 연주자가 무대를 이었다. 6시 소녀상이 공개됐다. 소녀상을 보기 위해 모인 인파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와 나는 집으로 향했다. 7시부터 구청 대강당에서 기념 식사를 할 수 있지만, 엄마는 기다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피곤하고, 힘들어 보였다.


집에 가던 중 엄마가 밥을 먹고 가자고 제안했다. 흔한 일이 아니었다. 평소 엄마는 투철한 절약정신으로 외식을 지양한다. 이날은 달랐다. 눈치를 보며 군말 않고 따랐다.


이동하며, 밥을 먹으며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합창단 리허설은 2시부터 시작했고 빵과 물을 하나씩 받았다고. 기념무대가 끝나고 나니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7시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고. 음식물이 들어간 엄마의 얼굴에는 붉은 기가 돌았고, 태도는 여유로워졌다. 평소 당뇨약을 드시는데, 당 상태에 문제(흔히 말하는 당 떨어지는 상태?)가 생겼다가 이제 괜찮아지신 것 같았다.


엄마의 이야기에 반응하며, 열심히 행사 기획자의 흉을 봤다. 아니, 행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사람들을 잘 챙겨야지, 빵 하나에 생수병 하나 주면 끝인가,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행사를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 아닌가, 왜 7시까지 기다려서 밥을 먹게 만드냐 등등.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핀란드 스타트업 축제 '슬러시(SLUSH)'. 슬러시는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행사다. 그 행사에는 자원봉사자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팀이 따로 존재한다. '누구도 무리해선 안 된다'라는 핀란드 스타트업 생태계의 문화(라고 난 이해했다)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구성 같다.


두번째로 내가 참여했던 여러 일이 떠올랐다. 집회와 시위 생중계, 토론회와 북콘서트 촬영, 소규모 유료 행사 운영 보조 및 진행. 그 수많은 행사 중 나, 혹은 진행팀이 배려받은 적이 있었나.


돌이켜 떠올리면 진행자 혹은 운영진의 입장에서 일할 때, 단 한 번도 여유로운 적 없었다. (나랑 같이 일했던 지인들이여, 아니라면 알려주오. 난 도통 여유롭게 준비한 기억이 나질 않는다-_-;;) 항상 빠뜻한 시간에서 준비를 마쳤고 허겁지겁 밥을 먹거나, 밥을 먹지않고 일을 시작했다. 일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준비할 시간을 갖거나 최상의 컨디션에서 일을 시작하거나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여유롭게 행사에 적합한 환경을 만드는 그런 광경은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다.


행사를 기다리는 사람,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 일순위였고, 행사를 만들고 준비하는 당사자의 상태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일 하며 고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당연한 일로 여겼다. 이의를 제기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쳐다봤다. 집회 중계 중 화장실에 가지 못해 생리 중인 여자 카메라 기자가 곤란을 겪었던 일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그게 왜 화낼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반성합니다.)



더 나아가 왜 그게 누군가에게 불쾌감과 문제의식을 일으켰고, 그런 상황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 기술적으로 어떤 방지 조치를 취해야 할지, 아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계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누구도 고민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일하는 도중에 벌어진 일인데.


그때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다시 생각한다. 아무리 일이라고 해도, 일 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적인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그 일은 나쁜 일이 아닐까.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나는 왜 이걸 지금 깨달았을까.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있어', '돈 받고 하는 일인데 힘든 건 다양하지' , '일 하면 고생하는 건 당연하지', 이런 말에 둘러쌓여 자랐고, 믿었고, 일했다. 정말 이게 당연한 일일까?


행복의 나라 덴마크나 행복지수가 높은 북유럽 나라에서도 일은 힘든 게 당연한 걸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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