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활동가 고충토로 수다회 참관기
일주일 전인 2017년 11월 10일이 먼 훗날 이렇게 기록되길 바란다. ‘독립러의, 독립러에 의한, 독립러를 위한 새 시대의 첫날’이 시작된, <독립활동가 고충토로 수다회>가 열린 날. 독립러, 독립활동가는 뭐 하는 사람인가? 아니 무엇인가? 이 질문 밑바닥에 깔린 밑밥에 끌린 이들이 10일 오후 서울 남가좌동 한 카페에 모였다.
수다회를 마련한 ‘독립활동가의 시대’ 운영진의 제안으로 나는 이날 녹취자이자 참가자로 함께했다. 수다회 약 한 달 전 운영진과의 인터뷰로 ‘아, 나도 독립활동가 정체성을 갖고 있구나’ 깨달았다(인터뷰는 여기서 보시길 https://goo.gl/fXJs5e).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리듬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수다회 2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꽤 비관적이었다. 카페에 도착했으나 문은 닫혀 있고, 잠시 머물 곳을 찾아 주위를 돌았으나 고깃집과 밥집이 전부였다. 찬바람 맞으며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서대문구 하면 연남동 먼저 떠올리던 내게 이곳은 어디, 나는 누구...
알고 보니 이곳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유동인구 적은 지역이었다. 서울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 한 군데를 찾기 위해 30분을 헤매야 하는 장소인 데다, 날은 오전에 내린 비 때문에 급 추워진 금요일 저녁(!). 과연 신청자 11중 얼마나 참석할지... 그런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 명 빼곤 모두 모였다. ㅇㅂㅇ.
이제 ‘독립러의, 독립러에 의한, 독립러를 위한 새 시대의 첫날’이라고 거창하게 서술한 내 심정이 조금 이해 갈까?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전혀 예상되지 않는데, 대체 독립러와 관련해 어떤 열망들이 있길래 이곳에, 이런 날씨에도 왔단 말인가.
#요즘뭐해?
라는 질문은 어려워요. 1인 활동가, 연구자라고 하면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은 아주아주 적어요. 그렇게 이야기해도, '아, 그래서 뭐하신다고요?'라고 물으면 저도 곤혹스러워요... 이런 고민, 저런 생각 때로는 즐거운, 때로는 고달픈 독립활동가들이 여러분, 사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한 번 만나서 서로의 고충을 그냥 부담 없이 두런두런 이야기해보는 시간 가지려고 해요! - 수다회 홍보글 중 -
@카페 샘 한쪽 공간에 둥글게 앉은 우리는 서로를 향해 눈빛을 반짝였다. 어색함? 기대감? 한바탕 이야기가 돌고 나니 그 눈빛이 호기심이었음이 드러났다. 다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 오는지’ 궁금했다고.
주최자 2인 중 하나인 지구별우군(이하 우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군은 1년 반 전 퇴사한 후 프리랜서, 알바생, 독립연구자 등 여러 이름으로 호명됐다. 그 과정에서 서러운 사건도 겪고, 외로움도 느꼈다.
“조직에서 시키는 일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독립러로 잘 살아보고 싶었어요... 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일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데 울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뭘까, 독립러? 독립활동가? N잡러? 프리랜서? 일단 ‘독립활동가의 시대’로 모임을 만들었어요. 참석자의 욕구를 파악하고, 격식 없이 사는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었어요.” - 우군
#내안에독립러도있다
참석자 12명(주최 측 포함)의 정체성은 다양했다. 각각이 다를 뿐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도 여러 정체성이 공존했다. ‘아그래요’는 빠띠(데모그라시 액티비스트 그룹) 활동가이자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 연구자이다. ‘희원’은 희망제작소의 직원이자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활동가(운영위원)이다.
“한 곳에만 소속감 느끼지 않는 것이 저에겐 독립일까요? 고립되어 있거나 자립된 형태로서 독립러라기보단, 개인으로서 여기저기를 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요.” - 희원
수다회 장소 제공자이자 참여자로 함께 한 ‘최경민’은 식재료 유통업에 종사하면서 카페를 운영한다. 문화예술인과 카페를 공유해 그들도 화폐를 벌어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경민의 카페 공간에서 연주회를 기획한 ‘로망클라’는 음악 전공자이며 연주가 본업이다. 최경민은 이곳이 문화센터로서 자리매김하길, 로망클라는 자신의 활동이 충분한 수입으로 연결되길 바란다.
“시향의 신입 단원 자리에는 졸업생이나 유학파 아니고서 들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레슨 알바를 많이 다니는데,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죠.
그러다보니 뭔가 해야 하겠다 싶어서, 기획 쪽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공연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있지만, 생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관객을 유치하기는 어려워요.” - 로망클라
독립러로 커리어(?) 전환을 한 이도 만났다. ‘오미자’는 누군가 던진 ‘뭐하세요?’라는 질문에 ‘논다’고 대답한다. 5월부터 놀기 시작했는데 혼자 노는 게 지겨워서 얼마 전엔 행사(지리산 포럼)를 열어 100명 정도를 모아 함께 놀았다고.
마치 내 이야기 같아 반가웠다. 나 역시 6개월 전부터 혼자서 이것저것 시도하며 주위의 도움을 받아 행사(#겨털살롱)도 열고, 무크지(#월간퇴사)도 만들어 일하며 놀고 있다. 일이 재미있으니, 놀이 맞겠지?
“전 시간 부자예요. 재미를 쫓아서 시간을 흥청망청 쓰고 있어요. 지리산 포럼에서 청년 기획자로 우군을 만났고, 지난주엔 뜬구름 학교에 가서 안 본 영화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우고, 책 안 읽고 저자 사인회도 가보고(일동 폭소).” - 오미자
’로아나’의 경우 독립러의 감각을 얻고 싶은 CEO(!)였다. 비영리 섹터에서 사회 혁신 관련 연구를 했으며 동료와 공동창업을 했다고. 4년 동안 작은 조직(4명)에서 일하던 중 올해 긴 휴식을 갖고,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다면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4년 간 이런저런 과정 거치며, 제가 이 안에서 정해진 역할만 수행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프로젝트 실행 중 누군가는 기획, 다른 이는 리서치, 또 다른 이는 현장, 이렇게 나뉘는데 점점 고착화되더라고요. 이런 부분은 또 어떻게 깰 수 있을까, 고민이 되죠.
제가 어디까지 해볼 수 있는지, 일에 대해 어디까지 주도할 수 있을지 실험해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독립활동가 정체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로아나
참석자 중 가장 신기했던 사람은 3년 차 독립러 나무영이었다. 3년 동안 조직에 들어가지도, 돈 벌기를 우선으로 삼지도 않은 채 어떻게 생활했을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데 걸린 시간이 길었어요
물론 ‘내년에 활동 자금이 고갈되면 어떻게 하지?’ 이런 고민이 들 수도 있죠. 그런데 이런 문제는 지금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어요. 미래의 부정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당겨서 고민하는 거니까요.
저의 결론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는 거예요.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빠르게 도전해야죠.” - 나무영
그는 과거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로서 많은 일을 처리하며 바쁘게 살았지만, 현재 우선순위와 삶의 관성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https://goo.gl/NcBqwi)>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사회에 나와서 목적에 맞게 사람을 가려 만나는 방식을 배웠죠.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기회도 오지 않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플라스틱 컵을 화분으로 재활용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제 일의 결과물이 상품으로만 비치기보단, 나무를 심자는 메시지가 좀 더 주목받았으면 좋겠어요.” - 나무영
1년 한정으로 현재 생활을 즐기고 있는 나에게 나무영의 사례는 가뭄의 단비 같았다. 나와 똑같지 않지만,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3년이나 버텼다니! 심지어 그에게 절실한 것은 돈보다 사람이었다. 자신의 활동을 이해하고 응원해줄 동료를 찾고 싶어 했다(우리가 있어요+_+!).
#독립러를괴롭히는것
물론 나무영과 달리 돈에 대한 압박을 매우 무겁게 느끼는 독립러도 있었다. 굿데이는 얼마 전 퇴사를 하고 독립 활동가로 살아가려 한다. 그런데 집세와 학자금, 생활비에 대한 걱정이 크다.
"항상 혼자 활동하는 1인 활동가를 동경했어요. 주변 지인 중 그런 분들도 꽤 있어서 얘긴 많이 들었지만, 두려웠어요. 지금은 그 두려움을 맞닥뜨리는 중이에요.
또 며칠 집에 있으면서 보니까, 자칫 잘못하면 나태해지겠더라고요. 밥 먹고, 티비 보고, 눕고, 이런 생활이 반복되지 않을까.
힘과 위안과 알바 거리를 던져주면 기쁜 맘으로 나서겠습니다. 소비를 줄이는 삶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죠.” - 굿데이
독립 활동으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우리 중 가장 생존 기간이 긴 나무영은 무엇보다 자신만의 페이스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퀄리티와 상관없이 자기 시간에 맞게, 누가 보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인스타든 어디든 활동을 해서 팬이 생겨야 해요.
…
수익은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고 팔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 ‘저 독립러는 이걸 하더라’라는 인식이 연결되어 발생하는 게 아닐까요?” - 나무영
‘하진’은 돈 외에 고충도 토로했다. 바로 ‘존중’의 문제였다. 그는 카페 사장인 최경민과 함께 남가좌동 마을 공동체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공동체의 구성원, 혹은 가까운 지인의 말에 가끔 상처받는다고 한다. 지역에서 가족과 함께 유기농 벼농사를 짓는 ‘날자’ 역시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옆에선 다 자기 모임에 소속됐다고 생각하며 일을 부려먹죠.” - 날자
“마을공동체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얘기가 맘에 꽂혀 올 때가 있어요. ‘취업은 해야지’, ‘잠깐만 와서 뭐 해줄래?’ 물론 서로 오래 이어진 관계니까, 제가 나쁘게 되길 원해서 하는 말이 아님은 알죠.
내가 번듯하게 나를 잘 설명한다면 , 정해진 뭐가 있다면 그거에 맞춰 요청하실 텐데. ‘이일, 저일 잠깐 와서 해주면 돼’, ‘너 편할 때 와서 해줘’...” - 하진
하진의 문제제기에 나 역시 크게 공감했다. 작업실 얻을 돈은 없으니 주로 집에서 열일을 하는데, 뭔가를 시키거나 부탁하거나 밖에서 큰 소리로 티비를 보는 가족을 마주하면... 내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어렵고, 섭섭하기도 하고.
존중의 문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가까운 사이에선 조금 기분 나쁠 정도로 끝날 수 있지만, 대가가 오고 가는 사이에선 후려치기의 문제로도 연결된다. 그래서 독립러를 설명하는 울타리가 필요하기도 하다. 우군은 얼마 전 하진과 함께 ‘듣는 연구소’라는 사업체를 만들었다.
“연구소 명함 없이 다닐 때랑 지금 사업자 등록해서 명함 들고 다닐 때가 매우 달라요. 호칭부터 단가까지.
우리가 하는 일이 서로 즐거워서 하는 일이지만 한 스텝 더 나가서 화폐를 벌 수 있는 다른 일로도 확대되면 좋겠어요.
그 방식이 독립러를 맞이할 준비가 1도 안 된 이 시대를 헤쳐나갈 우리의 수용법 아닐까요?” - 우군
우군은 첫 단계로 명함 만들기를 제시했다. 한 회사에 속한 조직원들이 같은 형식의 명함을 갖는 것처럼, 우리 독립러들도 한 포맷의 명함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포맷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지켜준다면!... 물론 명함 직함은 독립 연구자, 독립 농부, 독립 기획자 등등 각각 전문 분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독립러의시대
독립 다큐, 독립 영화, 독립 운동가와 달리 독립활동가, 독립 연구자, 독립 00은 낯설다. 네이버에 검색해도 나오는 정보는 거의 없다. 독립러가 어떤 사람들인지 오늘 모임을 통해 정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독립러'라는 카테고리에 반쯤 정체성을 겹치거나, 독립러로서 자각하는 사람은 더 빨리,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조직 안에서 느끼는 갈증은 독립러 발생 조건에 최적인 환경이다. 조직은 우리 세대의 개성과 철학을 담기에 너무 답답(그런 곳이 너무 많다)하고, 조직 밖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독립러들끼리 만나서 연대한 느슨한 공동체(기존 조직에서 보기에)가 더 일을 잘 할지도 모른다. 혹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어드는 이 시기에 독립러의 탄생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로망클라처럼 본업을 지속하기 위해 독립 기획자로 나서는 사람은 훨씬 많아질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를 맞이할 준비가 1도 안 돼있는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행방을 가늠할 자리가 곧 열린다. ‘독립러’에 끌리는 당신, 11월 25일 <독립러’s 이그나이트>가 열리는 신촌 체화당으로 오시라.
(2017.11.18)
(2017.11.18)
독립활동가 고충토로 수다회 참관기(2017.11.18)
독립활동가 고충토로 수다회 참관기(2017.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