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는 법을 배우는 하루
요즘은 줄을 설 일이 많지 않지만,
가끔 어디선가 줄을 서게 되면
나는 본능처럼 앞자리를 찾는다.
모임에선 누가 중심에 서 있는지 살피게 되고,
어떤 말이 사람들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지도
눈치껏 헤아리게 된다.
언젠가부터 나는
모든 것에 익숙한 어른이 되어 있었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안은 등을 떠밀었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내 마음의 속도를 재촉했다.
어른이란 이름은, 생각보다 많이 외롭고 무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마당 한켠에서
작고 조용한 아이 하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이 없었다.
그저 서 있었을 뿐인데,
나는 괜히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자기만의 눈으로,
마치 “왜 그렇게 애쓰세요?” 하고 묻는 듯했다.
아이들은 그런 재주가 있다.
진심을 알아보는 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무엇을 계산하거나 따지기 전에
먼저 다가서는 태도.
그 모든 게 아이들에겐 자연스럽고
어른들에겐 점점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생각한다.
언제부터일까.
도움을 청하는 걸 창피해하게 된 건.
눈물 흘리는 게 약하다는 증거처럼 여겨지게 된 건.
사람들 앞에선 괜찮은 척,
웃는 얼굴로 버티는 게 익숙해졌던 날들이
언제부터였을까.
아주 오래전 겨울,
가난한 형제 셋을 돌보던 권사님이 계셨다.
손은 하얗게 텄고,
그 손으로 푸시던 밥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날 그 집에서 들은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권사님은 우리에게 천국이에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천국이란 게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밥이 되고, 품이 되고, 집이 되어주는 것.
그게 바로 천국의 모양이라는 것을.
울산에서 전도사로 지내던 시절,
어느 날 부부 한 쌍이
조심스럽게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 사이엔 말이 없는 딸이 한 명 서 있었고,
그 아이는 중학생 또래였지만
눈빛은 나이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며칠 전 가출을 했던 아이였다.
친구 집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에게 붙잡혀 돌아온 날,
아버지는 말 대신
가위를 들었다.
아이의 머리카락은 앞뒤도 없이 툭툭 잘려나갔고,
그 모습으로 교회에 온 아이는
어디에도 시선을 두지 못한 채
작게 움츠러져 있었다.
어머니는 말끝을 낮추어 말했다.
“전도사님, 우리 딸… 사람 좀 만들어주이소.”
그 짧은 말에는
미안함과 절망,
그리고 부모로서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잔잔히 배어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그 아이 곁을 천천히 걸었다.
말을 강요하지 않았고,
울음도 말리지 않았다.
때론 아무 말 없이 피아노를 함께 들었고,
때론 교회 마루에 앉아
햇살을 함께 맞았다.
아이는 서서히 웃는 법을 되찾았고,
지금은 유아음악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 전화를 걸어온다.
“그때 목사님은… 제게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였어요.”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도리어 더 작아진다.
사실은, 그 아이야말로
나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는 걸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했던 순간들,
이름도 없고, 말도 적은 이들을
무심히 지나쳤던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한다.
이제는 질문을 바꾸어 본다.
“누가 더 큰 사람입니까?”보다는
“나는 지금 얼마나 작아지고 있습니까?”
작아진다는 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안에 여백이 생긴다는 뜻이다.
마음속에 오래도록 품어둔 작은 아이 하나가
조용히 말을 건다.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모르면 물어봐도 돼.”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하루를 산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아이와 함께 걷는 길,
그 끝 어딘가에
조용하고 다정한 천국의 문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 문은 거창하지도,
성대하지도 않다.
라일락 향기처럼 은은하게,
어느 봄날 문득 마주치는 그런 문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은… 나에게 천국이었어요.”
그런 말로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다.
말없이 다정한,
작고 느린,
그러나 진심이었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