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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Apr 26. 2016

눈으로 걷는 여행 1

앵무산은 그렇게 시를 가르친다.

여행은 시작이다

사진이 있다

이야기가 있다

시가 된다

그리고

나를 찾는다.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대안리

■ 대안들

해룡에 들어서면 풍요와 트임을 함께 갖춘

널따란 들녘이 가슴을 열어 눈을 반긴다.

겨울엔 넓은 들판을 열어 오리와 흑두루미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곳간이 되고

봄에는 물을 담아 싱싱한 생물의 탯자리가 된다.

여름엔 자연을 보듬어 안아 태양을 익히고

가을이 내리면 풍요와 넉넉함으로 해룡인의 인심을 만들어 내는 들녘이

이곳 대안들이며

여행의 시작점이다.

■ 해삼리

공동묘지의 무서움을 만들어내던

애기 난 골 아래

궁간무퉁이를 돌아서면

C자 곡선을 그리며 커다란 마을 세 개가 나란히 자리한다.

도롱리, 중흥리, 해창리 3개의 마을을 이름하여 “해삼리”라고 하는데

자연부락 하나하나가

행정리가 되어 마치 하나의 마을처럼 연결되어 있다.

해삼리의 믿거나 말거나 유래는

도롱 마을 뒤에 ‘천황산’이 있고

해창마을 등에 ‘곡고산’이 있는데

주위는 바다로 둘러싸였다고 한다.

천황산의 높이가 항아리 하나만 엎어서 올려놓고

복지기를 덮으면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았다고 한다.

봉황과 청룡이 천황산에서 내기를 하여

봉황이 날지 않고 뛰어서 곡고산에 이르면 천황산이 하늘까지 높아지는 내기였는데

그만 한발 못 미치는 바람에 천황산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

지금의 해삼리가 되었다는 가물가물 구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해삼리에는 벼와 무, 콩, 호박, 고추, 배추 등 다양한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어

주민들이 풍요롭게 살고 있다.

■ 천황산

월전리 신흥마을에서 올라, 도롱리 뒤를 넘어

곡고산에 이를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

배고픈 시절 배고픔을 달래주던 ‘까마중 열매’을 비롯하여

이름 모를 야생초와 야생화가 다양하게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다.

좁다란 산책로를 걷다 보면 평소 접하지

못한 예쁜 꽃이 가슴으로 안겨든다.

연분홍 꽃 몸을 햇살에 투여할 듯 가볍게

꼬리를 흔들면 벌과 나비가 향기에 취해

다리 꼬고 날아든다.

돼지 꼬리 말 듯 꽃병은 통통하게 부풀어

가을을 가득 담고 씨방을 머금은 봉오리는

잠수함의 잠수경을 연상케 하여 카메라의 셔터를 부지런히 누르게 한다.

줄기 잘린 달개비의 애환을 듣노라면

시간은 어느덧 산 중턱을 너머 서고

카메라가 신기한 듯 달개비의 전신을 훑고 지나면

그때서야 부끄러운 듯 가녀린

다리를 옴지락거린다.

청푸른 갓머리에 노란 입술은 달개비의

어린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고

새벽에

밀어 올린 초록의 이불을 살며시 덮어오는 재미를 그린다.

■ 곡고산

임진왜란 때 그 모습이 곡식을 가득 쌓아놓은

창고를 닮은 산의 모습을 보고 왜군이 겁을 먹고

달아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곡고산이다.

어슬렁거리며 활엽수의 낙엽을 밟으며 걷다 보면

어느덧 마음은 초겨울의 언저리를 걷고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했던

법정스님의 목소리가 귓바퀴를 맴돌다가

달랑이는 잎사귀에 정신을 빼앗겨 그만 계절 속으로

풍덩하고 빠져든다.

‘희로애락 애오욕’ 칠정의 질곡 진 삶을

고스란히 물러낸 어느 잎사귀의 모습에서

인생이 스멀스멀 기어서 나와

내손 꼭 잡아주며 '인생이란 찬찬히 가는 것이여'

라고 귀에 대고 속삭인다.

시간의 단맛을 몽땅 베껴서 열매에 담아놓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여 늘어진 야생화에서

어머니 배겟닢에 얼룩진 물그림자의 속사정이

이해되고

이 길 위를 걷고 있는 사람의 인생이

그 눈물의 양분을 받아먹고

여기까지 왔음을 알기에

조용히 한 컷의 자연을 카메라에 담게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말없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가파른 산을 올라서면 숨을 돌릴 공간이 있다고,

메마른 저 잎사귀에서 봄이 오면

예쁜 꽃을 피워낼 것이라고~~,

그러나 서두르지는 말라고 하신다.

지나온 후회가 그날만을 보고 바삐 살아왔기에

예쁜 꽃이 그곳에 있었는지 몰랐다고,

아픈 꽃이 곁에서 신음하고 있었는지 몰랐노라고 말해준다.

어머니는 나머지 마음도 들려주신다

세월이 옷을 봄으로 갈아입고 마중 나오면

희망이 사랑을 만들어 행복으로 열려온다고,

어머니가 지나오신 그 길을 아들도 그렇게

밟아 갈 것이라고 조용히 웃으신다.

곡고산은 산이 그렇게 가슴속에 담아뒀던

오래된 이야기를 살며시 풀어놓는다.

■ 앵무산

청설모 한 마리가 감춰둔 도토리를 꺼내어

소나무를 타고,

은은한 칠면초의 붉은빛이

멀리서 순천만의 향기를 불러낸다.

순천만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

바다와 산과 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그려낼 수 있는 곳,

순천의 남동쪽 끝을 밟고 올라서면

앵무산 정상이다.

앵무산에서는 떠오르는 일출과

저물어가는 아름다운 일몰을 함께 담아볼 수 있다.

인공이 만든 산업단지 여천공단의 굴뚝과

자연이 만든 지구의 정원 순천만의 생태를

손가락 안에 가둘 수 있는 개안의 장소가

앵무산 정상이다.

그곳에서 편한 숨을 들이마실 수 있다.

앵무산에는 자연이 있다

넘어진 소나무 엉치를 밟고

붉게 익어가는 개옻나무 잎이 가을을

닮아가고 있다.

가을은 수줍음이 많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가을이 저만치 물러나

손사래를 치며 멀리서 찍어 달라

통사정을 한다.

너무 환한 햇살을 가을이 나뭇잎을 들어

가려본다.

가을 잎은 옹골진 삶의 흔적이 구석구석

묻어서 아프기도 하겠건만 가을의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가을이 아픈 흔적의 틈으로 살며시 내다보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니 참으로 아름답다.

앵무산에 하늘이 열린다

주황의 상수리나무가 모둠발로 높이를 세워

하늘과 손을 잡는다.

가을이 하늘에서 내려와 상수리나무를 타고

앵무산을 밟는다.

가을이 입을 맞추자, ‘너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가 춤을 춘다.

앵무산에는 ‘시’가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가

자연스럽게 입에서 맴돌도록

앵무산은 그렇게 시를 가르친다.

앵무산을 넘어서면 여수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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