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가을비가 기도를 한다면
한강, 2015.10.01
새벽을 먹고 내리던 비가
가뭄을 보채어
오전 내 뜀박질하다가
시간이 되니 식당으로
점심 먹으러 들어가
소주 한 병 시켜놓고 기도를 한다.
주님~~!
이 한잔엔 술 취한 자들의 푸념을 담고
또 한잔엔 억울한 자들의 고독을 담고
다른 한잔엔 넉넉한 자들의 부족함을 담고
나머지 한잔엔 자유로운 자들의 억눌림을 담고
마지막 세잔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낮 선 영혼을 위하여
갈매기의 부리로 섞게 하소서
아멘~~!
엉터리 같은 기도에 감동받은
숟가락과 젓가락이 함께 아멘을 한다.
오늘도
마포대교 난간에는 둘이서
다리를 대롱이며 앉아있다.
바람이와 가을이는 거기가 좋은 모양이다.
가을비가 한강을 건너다가
낯선 영혼들을 위해 마시다 만
소주 몇 방울을
끝 비로 따르다가 흘린다.
오늘따라 바람이 심술이다
한강을 몇 바퀴 돌고 온 바람이
C.U편의점 간판에 사정없이 부딪혀
이마에 생체기를 입고 피를 흘린다.
보다 못한 가을이 노랑 나팔꽃 잎 하나에 침을 발라
밴드처럼 붙여 놓으니
바람은 노란색 이등병이 된다.
가을은 술을 일 모금도 못하여
보리밭 옆만 지나가도
취하여 헤헤 실실 웃으며
왼 종일을 헤맨단다.
그래서 보리가 봄에 익는 것이고
가을과 만날 수 없다는 전설의
서글픈 사연이 있다.
얼마나 가을을 만나고 싶었으면
가을에 파종을 하겠는가~!
쏘다니던 바람이 소주 섞인 비를
맞았나 보다
가을이 벌게져서
실실 웃으며 비틀거린다.
한강이 헤헤 웃는다.
능수버들이 따라서 웃고
느티나무가 따라서 웃다가
얼굴이 불그스레 변해간다.
아~~
가을에 낙엽이 예쁜 것은
술에 취한 가을의 비틀거린 춤에
나무들이 뒹굴며 배꼽 빠지게 웃다가
붉어진 얼굴이란다.
정말 그런가~~!
나도 모르겠다.
자우당간 오늘은 햇살이 참 좋다
술에 취한 가을이를 보면
한번 웃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