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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Jun 01. 2016

만약, 가을비가 기도를 한다면

한강, 2015.10.01

새벽을 먹고 내리던 비가

가뭄을 보채어

오전 내 뜀박질하다가

시간이 되니 식당으로

점심 먹으러 들어가

소주 한 병 시켜놓고 기도를 한다.

주님~~!

이 한잔엔 술 취한 자들의 푸념을 담고

또 한잔엔 억울한 자들의 고독을 담고

다른 한잔엔 넉넉한 자들의 부족함을 담고

나머지 한잔엔 자유로운 자들의 억눌림을 담고

마지막 세잔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낮 선 영혼을 위하여

갈매기의 부리로 섞게 하소서

아멘~~!

엉터리 같은 기도에 감동받은

숟가락과 젓가락이 함께 아멘을 한다.

오늘도

마포대교 난간에는 둘이서

다리를 대롱이며 앉아있다.

바람이와 가을이는 거기가 좋은 모양이다.

가을비가 한강을 건너다가

낯선 영혼들을 위해 마시다 만

소주 몇 방울을

끝 비로 따르다가 흘린다.

오늘따라 바람이 심술이다

한강을 몇 바퀴 돌고 온 바람이

C.U편의점 간판에 사정없이 부딪혀

이마에 생체기를 입고 피를 흘린다.

보다 못한 가을이 노랑 나팔꽃 잎 하나에 침을 발라

밴드처럼 붙여 놓으니

바람은 노란색 이등병이 된다.

가을은 술을 일 모금도 못하여

보리밭 옆만 지나가도

취하여 헤헤 실실 웃으며

왼 종일을 헤맨단다.

그래서 보리가 봄에 익는 것이고

가을과 만날 수 없다는 전설의

서글픈 사연이 있다.

얼마나 가을을 만나고 싶었으면

가을에 파종을 하겠는가~!

쏘다니던 바람이 소주 섞인 비를

맞았나 보다

가을이 벌게져서

실실 웃으며 비틀거린다.

한강이 헤헤 웃는다.

능수버들이 따라서 웃고

느티나무가 따라서 웃다가

얼굴이 불그스레 변해간다.

아~~

가을에 낙엽이 예쁜 것은

술에 취한 가을의 비틀거린 춤에

나무들이 뒹굴며 배꼽 빠지게 웃다가

붉어진 얼굴이란다.

정말 그런가~~!

나도 모르겠다.

자우당간 오늘은 햇살이 참 좋다

술에 취한 가을이를 보면

한번 웃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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