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의 하루 01화

무던하다는 말

자기 이해

by 글몽

예년과는 달리 밥을 먹자든가 차를 마시자는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되도록 임하려 한다. 시간이 들고 돈이 들어가고 에너지가 들어가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지불 해야하는 경비라 생각한다. 나의 세계를 넓혀가기 위해 책도 읽어야겠지만,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과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타인 대한 이해가 생기고 사람에 대해 배우게 된다.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면서 종국엔 자신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다.



며칠 전 도서관 수업을 함께 했던 사람과 만났다. 그녀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처지도 비슷하고, 나이대도 비슷해서 그런지 대화도 잘되고 즐거웠다. 커피는 그녀가 사고, 디저트는 내가 샀다.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자고 내내 다짐했다.



“내 친구 중 당신처럼 무던한 사람이 있어요. 친구가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블라블라..”

먹구름이 낀 하늘의 벼락처럼 내 귀에 꽂혔던 무던하다는 말.

아니라 부인하고 싶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말.










동생과 트러블이 생겨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았을 때 엄마는 말했다. “가는 아가 까탈스럽잖아. 니는 무던하니까 마음 넓은 니가 참아라.” 결국 내가 참아야 했다.



K장녀라는 역할과 무던함과 인내를 살아오는 내내 벗을 수 없는 운명처럼 안고 살았다. 착하다는 말, 무던하다는 말, 어른스럽다는 말 이 말들이 내포하고 있는 무시무시함을 알지 못한 채 묵묵히 참아내면 되는 줄 알았다. 내 것을 빼앗겨도 무던하니까 내어주어야하고 누군가 나를 침범해도 무던하니까 이해해주어야 했다. 심지어 임신 기간 동안 함께 병원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남편을 참았다. 아이를 낳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남편의 머리채를 잡기는커녕 “산모 소리 지르지 마세요. 소리 지르면 안됩니다.” 간호사의 말에 비명 한번 지르지 못했다. 나에게 덧씌워진 무던함이라는 말은 감옥 같았다. 무던하니까 불평 하면 안되고 무던하니까 참아야하고, 무던하니까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아는 마법의 말 같은 것이었다.












무던한 사람이 무던함을 벗으면 왜 그러냐고 한다. 이전처럼 살라 한다. 참으라 한다.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무던하다는 말의 숨겨진 속내를 말이다. 세상에 참기만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은 없다. 태어난 순서대로 역할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마땅히 책임져야 사람도 없다. 무던하다는 말은 칭찬이나 좋은 말이 아니다. 무던하다는 말은 감사를 당연함으로 바꾼다. 무던하다는 말은 나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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