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
오래된 아니 오래전에 연락이 끊어진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친구라고 부르기도 어렵고 아는 사람이라 부르기에도 딱 떨어지지 않는 적당한 단어를 찾기 어려운 사이 J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학 초년생에 만났으니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할 만큼 알고 있는 아이였다. 삶이란 그렇듯 바쁘게 살아가다보니 교차점이 없었다. 가끔 만나 얼굴을 보지만 가까워지지 않고 그렇다고 멀어질 거리도 없는 그런 사이였다. 가끔 J의 소식을 듣지만 그런가보다 싶었다.
폰에 J의 번호가 뜨고 갸우뚱하며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돈을 빌려달라 했다. 일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나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할 만큼 친한 사이인가를 따지기 전에 생활고라는 단어가 먼저 마음에 와 박혔다. 생활고에 시달린다니... 일순 생활고에 죽음을 선택한 극단적인 뉴스들이 떠올랐다.
J에게 얼마의 돈이 필요하냐 물었다. 80만원을 빌려달라 했다. 생활고라 했을 뿐 어디에 돈이 필요한지 카드값인지 방세인지 그것도 아니면 누구에게 빌린돈을 갚아야하는지 J는 말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거절을 해야할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생활고라는 단어로 마음에 자극이 되었던 터라 쉽사리 단칼에 끊어내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돈을 J에게 빌려 준다 해서 J가 돈을 갚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J에게 돈과 친구를 모두 잃기 때문에 친구와 돈거래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에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돈을 주겠다고 했다. J는 얼마를 줄 수 있느냐며 물었고, 나는 이십만원 정도 주겠다고 했다. 내가 통장번호를 문자로 보내달라 했을 때 J는 눈물이 난다고 했다. 돈이 목적이었던 모양이다. J는 금세 인사를 하고 다시 연락하겠다며 마지막에 돈 붙이는 걸 잊지 말라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딘가 홀린 듯 나는 J에게 돈을 붙였다.
하루가 지나 다른 친구에게서 J의 소식을 들었다.
J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배 후배 친구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고, 생활고에 시달린다 했으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J에게 돈을 준 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다. 내가 J를 판단하거나 비난하거나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젊은데도 불구하고 J가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웠다.
생활고라는 단어 때문일지, 도와줘야하는건 아닐까 J가 진짜 큰일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한아이 컴플렉스 때문인지, 다시 연락할게라고 마지막에 했던 J의 말때문인지...
며칠이 지난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