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돌봄
어젯밤 읽었던 레베카 솔닛의 글이 밤새 내 머리속에 맴돌았다.
문둥병에 관한 이야기였다.
문둥병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병, 몸이 썩는 병이었다. 병에 걸리면 불에 타는 고통도 신발바닥이 닳아 없어지고 염증이 생기고 고름이 나고 결국 손발을 잘라내거나 해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그런 병이었다. 병에 대한 이야기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간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모든 감각이 무감각해지는 것이라는 생각과 상상은 끔찍했다.
오래전 보았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어떤 유전병을 지닌 삼 남매가 집안에서만 살아가는 모습을 비추었다. 유전 때문인지 아이들은 모두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다큐멘터리를 볼 당시에도 세명 다 걷지도 못하고 기어 다니고 있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달려가다 부딪혀도 쉽사리 팔다리가 부러졌다. 유전으로 인해 뼈는 약한데 몸의 고통을 감지하지 못하니 아이들은 집안에서조차 많은 위험에 노출 되어 있었다.
잦은 골절로 인해 몸은 기형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천진했다. 나는 그들의 천진함이 무서웠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동경하기도 했다. 내 안에 파고드는 상실이 커서 흐르는 눈물을 그만 멈추고 싶었다. 고통을 모르는 사람처럼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몸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쉬이 망가지듯 마음의 작용도 마찬가지이다.
상처를 입어 고통스럽지만, 고통과 상실의 과정들이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돌보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마음을 짓 눌렀던 고통스러운 일들과 아픔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몸도 마음도 고통이 없다면 이미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니 제일 무서운 것은 무감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