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두 딸과 크로아티아 배낭여행 중 자다르에 갔을 때였다. 인솔자의 안내하에 여러 일행이 같이 레스토랑에 갔었는데 거기서 처음 티본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었다. 하루에 일정량의 티본만 판매되는 식당이었는데 마침 종업원이 우리 쪽부터 주문을 받아서 다행히 먹어볼 수 있었다. 늦게 주문한 일행은 고기가 다 떨어져서 주문할 수 없어 너무 아쉬워했다. 레어로 구워달라고 요청했고 처음 알게 된 티본스테이크의 풍부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작은 딸은 나중에 자다르에 와서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바다 오르간과 석양으로 유명한 자다르지만 우리는 지금도 자다르 하면 티본스테이크부터 생각하게 된다. 그 후로 다시 먹어보지 못했는데 피렌체에서 티본스테이크가 유명하다니 딸도 나도 여행 전부터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티본스테이크 (T-bonesteak)
이탈리아어로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piorentina)' 즉 피렌체식으로 구운 스테이크라는 뜻이다.
T자 모양의 뼈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등심, 다른 한쪽은 안심이 붙어 있어 두 가지의 부위를 맛볼 수 있다.
16세기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주관한 가톨릭 축제에서 뼈가 붙은 소고기를 시민들에게 제공하였는데 그것이 피렌체 티본스테이크의 시초라고 한다.
예전부터 피렌체는 가죽과 염색 산업이 발달해서 그 가죽을 사용하고 남은 고기를 이용한 스테이크도 발전하게 되었다.
베키오 다라 (Ponte Vecchio)
우피치 미술관과 베키오 궁전을 지나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가는 길에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곳으로 유명한 베키오 다리가 있다. 14세기까지는 다리 위에 푸줏간과 가죽 처리장 등이 입점해 있었는데 고기의 내장과 부산물을 함부로 버려서 악취와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 훗날 페르디난도 1세가 강제로 철거시키고 금세공업자를 입점시켜 지금처럼 보석 상점이 들어서게 되었다.
달 오스떼 (Trattoria Dall'Oste)
오전에 우피치 미술관 투어를 마친 우리는 미켈란젤로 언덕에 가기 전 저녁으로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티본스테이크로 유명한 '달 오스떼'이다. 출발 전 'The Fork'라는 레스토랑 예약 사이트에서 30% 할인을 받고 두오모에서 가까운 2호점으로 예약했다.
달 오스떼 2호점
들어서는 입구부터 숙성되고 있는 소고기가 진열되어 있어 기대감을 더해준다. 예약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자 기본 식전 빵을 세팅해 주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제일 기본인 티본스테이크 1.2kg과 구운 채소, 그리고 와인 1/2리터를 주문했다.
당연히 스테이크는 레어로 시켜야 한다. 우리 취향이 그렇기도 하지만 이곳에선 뜨거운 돌판에 스테이크가 올려져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레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빨리 먹지 않고 돌판에 좀 더 익혀 먹으면 된다.
겉은 너무 익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바삭하게 보이지만 속은 핏물이 배어 나올 듯 붉은색을 보이며 레어의 풍미를 보인다. 드라이 에이징으로 숙성시킨 고기의 깊은 맛이 와인과 정말 잘 어울렸다. 결국 와인이 모자라 1/2리터를 더 시켜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등심 쪽 고기의 맛은 진하고 쫄깃한 반면 안심은 정말 부드러워서 입에서 녹는다는 말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정말이지 환상적인 맛이었다. 1.2kg이나 되는 엄청난 크기의 스테이크를 둘이서 와인과 함께 해치워버렸다. 너무 배가 불러 숨쉬기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너무 맛있었으니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다시 먹으러 가고 싶을 정도이다.
티본스테이크가 좀 비싸긴 한 것 같다. 자릿세 포함해서 80유로나 나왔지만 30% 할인을 받아서 56유로(약 73,000원)만 계산했다. 제일 싼 1.2kg에 58유로짜리로 시켰는데도 할인을 못 받았으면 10만 원 넘게 지불해야 했다. 할인을 받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얼마 전 부산에서 피자를 먹으러 간 이탈리아 레스토랑 메뉴판에 티본스테이크가 있었다. "어! 여기 티본스테이크 48,000원 밖에 안 하네? 이탈리아보다 싼데." 딸의 말에 다시 보니... 0을 빼먹었다. 헐... 48만 원!
아... 티본스테이크 먹으러 피렌체 가고 싶다.
배불리 먹었으니 다음 일정을 가보자.
피렌체의 야경을 제대로 즐기려면 미켈란젤로 광장에 가야 한다. 후기를 보니 올라가는 길이 멀고 힘들다고 꼭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정류소엔 사람도 너무 많았다.
"배도 부르고 버스에 소매치기도 많다던데 그냥 걸어갈까?" 거리와 풍경을 보며 설렁설렁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미켈란젤로 언덕 올라가는 길
해가 지기 시작하고 노을빛이 물들어가는 길을 쉬엄쉬엄 올라갔다. 생각보다 걸어 올라가는 여행자들도 많았다.
마침내 도착한 미켈란젤로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장 중앙에는 미켈란젤로 400주년을 기념해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다비드상의 복제품이 우뚝 세워져 있다.
미켈란젤로 광장의 다비드상
몇 년 전에 피렌체를 다녀온 지인이 미켈란젤로 광장 계단에 앉아 맥주 한 잔 하는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보내주신 카톡이 생각난다. 얼마 전 많이 아프셨는데 이제 좀 회복되고 있다고 하신다. 우리 부부가 일을 시작할 때부터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인데 아프지 말고 이 광장에서 느꼈던 것처럼 정말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우리도 맥주 하나씩 들고 사람들 틈에 앉았다. 이름 모를 가수가 버스킹 하는 노래를 들으며 아름다운 아르노강과 피렌체의 전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피렌체의 야경
피렌체 시내와 아르노 강변에 불빛이 반짝이며 야경이 펼쳐졌다. 환상적인 맛과 멋이 있는 도시 피렌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