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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선 Oct 03. 2020

명절날의 작은 해프닝

아니 작은 혁명!


늘 밀양에서 명절을 보내시던 부모님이 이번에는 부산 집으로 오시기로 했다. 주중엔 부산 집에 계시다가 주말엔 밀양에 가서 텃밭에서 농사도 짓고 과일나무도 키우는 주말 귀촌 생활을 하신지도 제법 몇 년이 되었다. 그리고 집도 넓고 마당도 있어 좋다면명절이면 꼭  밀양으로 오라고 하신다. 셋째이자 외동아들인 남동생과 올케는 며칠 전부터 밀양에 가서 음식 준비를 하며 같이 지내야 했다. 여동생들은 시댁에 갔다가 자동차로 명절 당일 밀양으로 가서 하룻밤 지내고 집으로 갔다. 차가 없는 우리는 다음날 기차를 타고 밀양역으로 가면 동생들 중 한 명이 마중을 나와야 했다. 부산에 부모님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4남매가 모두 부산에 사는데 매번 이게 무슨 번거로운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웬일로 이번엔 음식도 안 하고 추석날 부산으로 오시겠다고 한다. 엄마가 올해 들어 몸이 많이 아프시고 차례나 제사도 없으니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다들 추석 당일 오후에 가서 저녁 식사만 같이 하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작년에 요양병원에 계시던 시부모님이 모두 갑자기 돌아가셔서 우리 집에서 차례를 지내야 했다. 며칠 전부터 준비했던 음식으로 추석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영덕에서 내려온 아가씨에게 전에 어머님이 하신 것처럼 음식을 조금씩 싸서 보내드렸다.


오후에 남편과 큰딸을 데리고 30분 거리의 친정으로 걸어갔다. 안 한다더니 차례도 안 지내면서 나물이며 전이며 몇 가지 음식을 해놓았다. 우리 올케도 혼자 며느리로 참 고생이 많다 싶었다. 좀 있으니 사댁에 갔던 동생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온다. 4남매 중 맏이인 나와 둘째 여동생 그리고 막내는 모두 아이가 둘이고 셋째인 남동생만 아이가 하나였다. 서울에 있는 우리 막내와 군 복무 중인 둘째의 큰 아들 빼고 다모이니 식구가 장장 15명이다. 


여느 때처럼 저녁 준비하고 상 차리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을 한 잔 다. 남자들은 고기를 굽고 아버지와 남편, 제부 등 어른들은 고기와 함께 소주를 마시고 아이들 식사부터 챙긴 동생들은 그제야 맥주를 한 캔씩 꺼내 들고 이것저것 담소를 나누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고 치워야 할 때가 되자 평소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둘째가 갑자기 폭탄발언을 했다. "명절에 왜 여자들만 설거지해야 하는 거냐? 올해부턴 남자들도 설거지하자!" 농담처럼 시작된 얘기가 여기저기서 동의를 얻으면서 진전이 되었다. 막내부터 하자는 둥 아버지도 설거지하셔야 한다는 둥 여러 얘기가 나온다. 은근히 보수적인 부모님도 분위기에 휩쓸려 뭐라 말도 못 하고 계실 때 막내라인 둘이서 하겠다고 나섰다.


막내 제부가 그릇에 세제를 묻혀 씻고 남동생이 헹구기로 했다. 온 가족이 보고 있는 와중에 설거지통 앞에 아들과 사위가 서서 명절 설거지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세제로 씻기를 마친 제부가 물러나고 남동생 혼자 그릇을 헹구고 있었다. 엄마는 황당해하는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딸들이 셋이나 있고 며느리도 있는데 아들내미가 설거지한다고 한탄을 하신다. "오빠야만 하는 거 아니다. 우리 남편도 했다."며 막내가 항의를 하고 "딸이 할 때는 마음 안 아팠냐?"며 둘째가 대들기도 하고 아주 왁자지껄 난장판이다. 그때 남동생이 외쳤다.

"이제부터 명절 때 개인 앞접시 금지!" ㅋㅋㅋㅋ

앞접시가 좀 많았나 보다. 좀 있으니 컵도 많아 씻기 힘든지 맥주도 각자 캔으로 마시고 컵도 쓰지 말란다.

다시 온 가족은 웃음이 터졌고 그렇게 한바탕 해프닝은 끝이 났다.


이 작은 소동이 단순히 해프닝으로 끝날지 어쩌면 작은 혁명이 될지는 모르지만 보기 드문 상황인 건 분명하다. 아마 동생도 평소 집안일이나 설거지를 안 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명절 설거지가 얼마나 많은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술자리 도중에 눈에 그슬린다며 엄마가 반 정도는 설거지를 해 놓았는데도 말이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해 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전통이니 따라야만 할게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맞춰 조금씩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설날엔 처제들이 형부 시킨다는데... 어때요?"

"뭘 어때 하면 되지." 우리 남편 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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