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유적지를 보거나 카프리섬에 가기 위해 들르는 게 아니라 그냥 나폴리를 보러 가고 싶었다.
산타루치아 항구의 선셋
로마와 밀라노에 이어 이탈리아 3번째 큰 도시인 나폴리.
그리스의 식민 도시라는 뜻인 네아폴리스가 어원이고베수비오 화산과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18세기 때부터 상업과 관광지로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괴테가 쓴 '이탈리아 기행' 에는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하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더럽고 위험하고 가난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조사하면 할수록 나폴리는 너무나 위험해 보였다. 갱들과 소매치기, 부랑자의 도시라고 했다.
자유여행을 가는 경우가 거의 없는지 후기도 별로 없었다. 이런 곳을 여자 둘이서 자유여행을 가도 되는 걸까?
나폴리 입성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나폴리 가리발디 역에 도착했다.
나폴리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가리발디 역 근처라고 한다.
시내 중심가와 관광지는 괜찮지만 역 주변은 부랑자들과 소매치기가 가득하고 치안이 아주 안 좋다고 했다.
딸과 의논 끝에 밖으로 나가지 않고 기차역과 연결된 지하철을 타고 숙소 근처의 단테 (Dante) 역으로 바로 이동하기로했다. 기차역에서 지하로 계단을 내려가 통로를 따라가면 지하철이 나온다. 금방 이동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거리가 멀었다. 이리저리 굽어진 통로를 거쳐서 쇼핑센터 같은 곳도 지나니 겨우 지하철이 나왔다.
L1을 타고 4번째 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이 숙소라 이동이 쉬울 거라 생각했었다.마침내 L1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이탈리아어로 뭐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고 지하철 입구는 폐쇄되어 있었다.
번역 앱으로 해석해 보니 파업!!
헐... 고생길이 열렸다.... ㅠㅠ
이제 숙소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야만 한다.
나폴리의 지하철 생각보다 깔끔하다.
밖으로 나가서 버스를 타고 가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큰 캐리어 두 개를 겨우 끌고 온 길을 또다시 가야 하다니...
안돼! 그럴 순 없지!
다시 구글맵을 통해 경로를 찾아보자!
오키! L2를 타고 2개 역만 가면 숙소와 도보로 10분 거리인 몬테산토(Montesanto) 역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이거야!!
지도엔 분명히 700미터, 약 9분 거리라고 되어있었는데...
몬테산토 역에서 숙소까지 구글맵을 의지해 길을 찾아갔다. 하지만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온통 돌바닥으로 된 좁은 골목길을 헤매다보니 거의 30분 이상 걸어야만 했었다. 체크인 시간인 2시쯤 도착 예정이었으나 막상 숙소에 갔을 때는 벌써 4시가 넘어갔다.
시작부터 장난이 아니다.
휴... 그래도 제대로 도착한 게 어디냐. 아 좀 쉬자...
나폴리와의 첫 만남
처음 만난 나폴리의 모습은 로마나 피렌체 같은 도시의고전적인 아름다움이나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었다.
낡고 칠이 벗겨진 건물들, 거칠게 낙서된 듯한 그래비티들 뭔가 어수선하고 소란한 분위기도 있었다. 거리는 좁고 어두웠으며 아치처럼 생긴 통로 공간이 골목들 사이를 이어주고 있었다.
짐이 있고 숙소를 찾아가는 중이라 자세히 살펴볼 여유는 없었지만 개성적인 도시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건물 사이로 어지러이 널려 펄럭이는 빨래들마저도 예전 홍콩 영화나 B급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나에게 주었다.
와우! 완전 내 스타일인데!!
첫눈에 나폴리와 사랑에 빠져 버렸다!!
나폴리 구시가지 모습
La Gemma
단테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건물의 4층으로 올라가면 우리가 예약한 숙소 La Gemma 가 있다. 교통이 편리한 것도 있지만 평점이 5점 만점이고 후기가 좋아서 끌렸다.
객실이 4~5개 밖에 없는 작은 규모의 B&B 였지만 밝고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어 왜 평점이 높은지 알 것 같았다.
호스트인 젬마는 젊고 유쾌한 아가씨였는데 우리에게 나폴리에 대한 설명과 맛집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리셉션 입구
깨끗하고 넓은 객실
그러나 지칠 대로 지쳐 버린 나와 딸은 관광은 내일로 미루고 간단히 저녁을 먹고 와서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해산물 가게 옆 간이 식당
숙소와 가까운 시장통에 위치한 해산물 가게 겸 간이식당.
나폴리에서 유명한 해산물 요리인 문어 샐러드와 봉골레 파스타를 주문했다. 잘못 알아 들었는지 그냥 봉골레볶음이 나와서봉골레 파스타를 하나 더 시켜야 했다.
짭짤하고 감칠맛 나는 봉골레도 너무 맛있었다. 하지만 야들야들 부드러운 문어 샐러드의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봉골레는 이탈리아어로 조개라는 뜻
음식 세 가지와 맥주까지 먹었는데 32유로밖에 안 나왔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음식 하나당 7~8유로 정도였고 문어 샐러드가 9유로 정도로 제일 비쌌던 것 같다.
로마에서 온 우리는 정말 나폴리의 싼 물가에 깜짝 놀랐다.
너무 맛있어서 맛에반하고 가격에 또 한 번 반하고 말았다.
단테 광장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단테 광장에서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오!! 이게 뭐지? 한번 가보자~
여러 나라의 맥주 부스와 다양한 먹거리들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었고 옥토버 페스트 기간이라 그런지
독일 맥주 부스도 많이 보였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나폴리의 젊은이들은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특이하게도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는 달리 동양인은 별로 보이지 않고 현지인이나 서양인 관광객들이 많은 듯했다.
천천히 돌아다니며 맥주 부스와 음식들을 살펴보았다. 향신료가 발라져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맛있는 통구이도 보였고 처음 보는 비주얼의, 모험이 필요할 것 같은 음식도 있었다. 인기 있는 메뉴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다 맛있어 보이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던 우린 양꼬치 몇 개를 먹어 보기로 했다.
이런 축제에서는 평소 접할 수 없는 맥주를 맛볼 수도 있다.
세상에! 7도짜리 파울라너 맥주를 마셔 보다니...!!
좋아하는 파울라너 맥주와 꼬치를 사들고 우리도 한껏 축제의 분위기에 빠져 들었다.
여행지에서 뜻밖에 마주친 행운이 너무나 반가웠다.
밤이 깊을수록 더 사람들은 더 모여들었고 소란해졌다.
배도 부르고 정신이 없어서 우린 숙소로 돌아갔지만 광장의 축제는 새벽 2~3시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다.
"나폴리 사람들 좀 시끄럽긴 한데 재밌고 유쾌해 보이네!"
"나폴리도 별로 안 위험한데... ㅋㅋ"
숙소에서 와인 한 잔 더 하면서 피로와 긴장을 풀었다.
새벽의 나폴리
여행지에 갈 때마다 새벽에 일어나 전날 관광객들이 가득 찼던 곳을 혼자 산책해 보곤 한다.
위험할까 싶어 나폴리에선 나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제 보니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던데...
큰길을 따라 바닷가까지 가 볼까? 룰루랄라 길을 나섰다.
그런데...
전날 밤과 달리 어두컴컴한 거리의 모습은 너무 무서웠다.
어둡고 휑한 광장에는어젯밤의 흥겨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을씨년스럽고 광장 주위의 건물들만 겁을 주듯 위협적으로 둘러싸고 있다.
어제의 흔적인 천막들과 쓰레기들이 쌓여 있고 휘잉~ 불어오는 바람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아치로 난 통로에선 금방이라도 누가 나와서 잡아갈 것만 같다. 부스럭 청소하는 아저씨 모습에도 흠칫 놀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