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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에서의 하루

2018년 이탈리아 : 인생 피자를 만나다.

by 금선



나폴리에서의 일정은 2박 3일

보통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도시라 꽤 여유 있는 여행이 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첫날은 늦게 도착해서 아무것도 못했고,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포지타노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관광을 할 시간이 없다.

나폴리를 경험할 시간은 오직 오늘 하루뿐이다.


자! 이제부터 오늘 하루 무얼 할 것인지 고민 좀 해보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간이다.

우선 어제 못 갔던 산텔모 성과 구시가지 걸어보기, 그리고 산타루치아 항구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춰 가기로 했다.

우리 따님은 바쁜 일정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ㅎㅎ



우리가 묵은 La Gemma는 B&B(Bed&Breakfast)라는 것으로 큰 건물 안에 한 두층 정도 임대해서 소규모로 숙박시설을 운영하고 조식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조식은 리셉션 공간에 세팅되어 있었는데 호텔처럼 규모가 큰 건 아니지만 식빵과 파이, 시리얼 그리고 과일까지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었다.

여덟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1인당 식기가 세팅되어 있고 외국인 노부부가 조식을 먹고 있었다.

아무도 못 봐서 우리밖에 투숙객이 없는 줄 알았는데...

간단한 음식들이 뷔페식으로 놓여있다.

세팅된 음식은 알아서 가져다 먹고 커피나 따뜻한 음식은 젬마가 바로 서빙을 해 주었다. 오늘도 여전히 활기찬 우리의 호스트 젬마가 빵과 파이, 과자와 요거트 등 음식들을 자신이 직접 요리했다면서 자랑하듯 설명을 해준다.

오오! 어쩐지 이탈리아 가정식을 먹는 느낌이 드는걸...


"커피와 크루아상 드실래요?" "좋죠~ 주세요."

갓 구운 듯 따뜻한 크루아상을 내주었다.

미리 세팅된 빵보다 훨씬 맛이 있다.

"이것도 직접 구워낸 것이냐? 정말 맛있다."

칭찬을 했더니 음... 그것만 가게에서 사 와서 데웠다고 했다.

아... 우린 잠시 당황해서 서로 머뭇거리다

"이 치즈는 이름이 뭐냐? 정말 맛있는데..." 했더니

이것도 역시 슈퍼에서 사 온 치즈라며 포장지를 보여주었다.

뭐야! 다 만들었다며... ㅠㅠ

미안하지만 젬마가 음식 솜씨가 좋은 편은 아닌가 보다...





산텔모 성 (Castel Sant' Elmo)

전날 숙소로 왔던 길을 되짚어 몬테산토 푸니쿨라 역으로 갔다. 꽤 멀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짐이 없고 한번 와봤던 길이라서 그런지 금방 도착했다.

산텔모 성으로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우린 몬테산토 역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을 택했다.

푸니쿨라를 타고 두 번째 정거장인 모르겐 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 올라가면 된다. 승차권 가격은 편도 1.1 유로였다.


푸니쿨라를 타고 모르겐역에서 하차.

푸니쿨라에서 내려서 잠시 방향이 헷갈렸지만 금방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높은 산이 없는 나폴리에서는 산텔모 성이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나폴리 전체 전망이 가장 잘 보인다고 한다. 입구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성 꼭대기까지 올라가 성벽을 따라 걸으며 전망을 감상하고 내려올 때는 성 안으로 들어가 비스듬히 경사가 진 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된다.

산텔모 성 전망대로 가는 길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한 날씨여서 오전인데도 상당히 더웠다. 그래도 관광객들이 그리 많지 않고 붐비지 않아서 둘러보기 좋았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타루치아 항구의 모습은 아름답고 햇빛에 반사된 지중해는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다. 멀리 폼페이를 멸망에 이르게 한 베수비오 화산의 모습도 보였다.


베수비오 화산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거리의 모습도 색다른 감흥을 주었다.

나폴리 구시가지를 일자로 죽 가르고 있는 스파카 나폴리도 뚜렷이 볼 수 있다.

스파카 나폴리

평소 여행할 때 전망대에 잘 올라가 보지 않았는데 막상 올라와보니 산텔모 성에서 보는 나폴리의 모습도 아름답고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전경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딸과 둘이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얘기도 하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에서 통역을 담당하고 있는 큰딸
내려가는 길

이래서 사람들이 전망을 보러 가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장시간 내리쬐는 햇빛 아래 있다 보니 너무 덥고 힘이 들었다.

이제 점심을 먹기 위해 성에서 내려가야겠다.





나폴리 3대 피자집

나폴리에 왔으면 나폴리 피자를 먹어줘야지!

어디나 그렇듯이 나폴리에도 유명한 3대 피자집이 있었다.

소르빌로, 다 미켈레 , 디 마테오 이 세 군데가 그것이다. 마르게리따 피자의 원조인 브란디(Brandi)도 유명하지만 우리가 갈 때 조사한 바로는 위 세 군데가 가장 유명한 것 같았다.


푸니쿨라를 타고 시내로 내려온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일단 숙소 근처로 이동했다. 숙소 바로 골목에 들어서면 맛집인 소르빌로(Gino e Toto Sorbllo)가 있었다.


"오픈 시간인 12시에 맞춰 가니까 대기가 별로 없겠지?"

우리는 맛있는 피자를 먹을 생각에 신나서 찾아갔다.

아~주 안일한 생각이었다. 좁은 골목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헐! 이렇게 유명한 곳이었나?...

디 마테오 피자 앞 인파들

혹시 모르니까 근처에 있는 디 마테오(Di Matteo)도 한번 가보자. 역시 여기도 마찬가지... 어쩌지?...

맛집 세 군데 중 위 두 곳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다른 한 곳인 다 미켈레(Dal Michelle)는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나왔던 곳으로도 유명한데 좀 먼 곳에 위치해 있어 갈 수가 없었다.


걸어 다니느라 배가 고팠던 우리는 대기하고 싶지 않았고 결국 체크인할 때 젬마가 가르쳐준 달 프레지덴테라는 피자 맛집으로 가기로 했다. 여기도 사람이 많았지만 안에 공간도 넓고 두 사람이라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피자 한 판에 4유로 (약 5,200원)밖에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1인 1 피자 하던데 모자라지 않을까?"

"우린 양이 많지 않으니까 먹어보고 모자라면 더 시키자."

의논 끝에 마르게리따 피자 한 판과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피자 한 판이 충분히 커서 둘이서 먹기에 적당한 양이었다.


우리 옆 쪽 테이블에 가족인 듯 보이는 단체 손님이 앉아 있었는데 일행은 열명 정도였다. 나폴리 사람들이 목소리가 큰 건지 너무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2인당 피자를 한 판씩 시키는 게 아닌가. 의외였다.

"응? 나폴리 사람도 한 판 주문해서 나눠 먹네?" 그랬는데

좀 있다 일행이 몇 명 더 오고 나니 종업원을 불러 피자를 사람 수대로 다시 주문을 했다. 어쩐지...

처음 건 기다리는 동안 먹으려고 시킨 거였구나...

Dal Presidente 의 마르게리따 피자

좀 있으니 우리가 주문한 피자와 맥주가 나왔다. 이탈리아 맥주는 더운 날씨에 어울리는 맑고 청량한 라거였고 고소한 피자와 정말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피자도 먹어보았다.

화덕에서 구워낸 쫄깃하고 고소한 얇은 도우에 생 모차렐라 치즈와 촉촉하고 새콤한 토마토소스의 풍미, 그위에 올려진 바질 한 잎. "우와!! 이건 정말 인생 피자야!!"

딸은 나폴리 피자와의 만남은 운명이라며 감동했다.

정통 마르게리따 피자를 처음 먹어봤는데 왜 나폴리 피자가 유명한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 3대 피자집의 피자는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 걸까?

저녁에는 꼭 어디라도 가서 젤 맛있다는 피자를 먹어보자고 서로 다짐을 했다.


이젠 배도 채웠겠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라는 산타루치아 항구로 갈 시간이다. 구시가지를 천천히 걸어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바닷가로 향했다.

날씨는 여전히 맑았고 낮이 되면서 점점 더워졌다.

톨레도 역을 지나 플레시비토 광장 쪽으로 걸어가니 많은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제 느낀 그대로 좀 빈티지한 거리의 모습이 정말 매력적으로 보였다.

델로보성(Castel dell'Ovo)

일명 달걀 성이라고 불리는 델로보 성도 보였다. 바닷가에 가니 바람이 많이 불어 좀 시원한 것 같다. 부산이 고향이라 바다를 많이 보았지만 언제나 바다는 나를 그립게 만든다.

산타루치아 항구의 선셋

점점 날이 어두워지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은은하게 붉은 기가 감돌더니 황혼의 아름다운 선셋을 볼 수 있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도 모두 홀린 듯 바다를 보았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평화롭고 신비한 순간을 사랑하는 딸과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산타루치아 항구 근처에 아까 가지 못했던 소르빌로 피자집 분점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오픈 시간이 아직 안되었지만 그 앞으로 가서 바다를 보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관광객들 몇 명이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줄을 서지 않는 건지 낮에도 가게 앞에서 어수선하고 무질서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게 입구에 그냥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그런데 어떤 동양인 관광객 커플이 우리 뒤로 줄을 섰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 뒤로 줄을 서기 시작했고 졸지에 우린 맨 첫 번째로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드디어 나폴리 3대 피자의 맛을 보게 되는 건가!!

소르빌로 산타루치아점
마르게리따와 카프레제 샐러드

소르빌로는 피자도 유명했지만 카프레제 샐러드가 그렇게 맛있다고 한다.

카프레제 샐러드는 토마토와 생 모차렐라 치즈에 바질을 얹어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뿌려서 먹는 음식이다.

이 가게는 다른 곳과 달리 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샐러드 가운데 큰 부팔라 모차렐라 치즈가 떡하니 올라가 있고 바질 대신 루꼴라가 가득 깔려있는 것이다.

부팔라는 남부에서 많이 키우는 물소의 젖으로 만드는 치즈로 생우유를 살짝 굳혀 먹는 듯 부드럽고 진한 맛이 정말 좋았다. 루꼴라는 그냥 먹어 봤을 때는 쓴 맛만 나는 것 같았지만 올리브와 발사믹을 뿌리고 나니 갑자기 엄청나게 맛있게 변했버렸다. 오! 놀라운 반전의 맛이었다.

마르게리따 피자도 역시 유명한 맛집답게 정말 맛이 있었다.

인생 피자의 순위가 또 교체가 되었다.


나폴리에 오길 잘했다!

아무도 그리 선호하지 않는 관광지, 과연 좋은 선택이었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여행지였지만 나에겐 최고의 선택이었다.

결국 나폴리를 봤으니 이제 죽어도 좋은 건지... ㅋㅋ

이번 여행에 같이 오지 못한 다른 가족들도 죽기 전에 와봐야 하니까 그땐 가이드 역할로 또다시 와야겠다.


내일 갈 포지타노도 죽기 전에 꼭 한번 보아야 할 곳인데...

죽기 전에 봐야 할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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