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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이탈리아

2018년 이탈리아 : 로마로 가는 비행기

by 금선



혼자 로마행 비행기를 탔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한 것은 밤 9시 35분.

인천에서 러시아 항공을 타고 9시간 비행을 하고 경유지인 모스크바에서 3시간 55분을 더 날아간 후 로마에 도착했다.

14년 만에 다시 로마에 오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서둘러 수하물을 찾고 로마로 가는 기차를 타러 플랫폼으로 향했다. 테르미니역에서 11시쯤 딸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나와 만나서 같이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기로 한 딸은 벌써 이틀 전에 로마에 도착해 있었다.

7개월 동안 딸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워홀 생활을 했고 귀국하기 전에 이탈리아 일주를 해 보고 싶어 했다.

전부터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남편이 이 기회에 함께 갔다 오라며 나에게 권유해 주었다. 지난 6월에도 딸을 보러 빈에 갔었기 때문에 좀 무리한 일정이어서 남편에게 많이 미안했지만...

너무 가보고 싶은 마음에 냉큼 받아들였다.




14년 전 두 딸과 단체 배낭여행 16일 상품으로 유럽 6개국 12개 도시(당일치기로 반나절 들른 도시 포함)를 갔었다. 정해진 기간에 많은 도시를 보는 일정이라 베네치아 반나절, 로마 3일이 이탈리아 여행의 전부였다. 많이 아쉬웠었다.

당시에는 언제 다시 올지 몰라 그런 건지 최대한 많은 나라, 많은 도시를 보고 오는 여행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갔던 여행도 한 나라에 한 두 개 도시 정도만 관광하는 일정이라 이동이 많아서 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요즈음은 7~9일 정도 한 나라를 집중해서 여행하는 게 대세인 것 같다. 유럽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딸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여러 번 했지만 혼자서 유럽까지 찾아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또 큰애와 단 둘이서 여행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막내는 학교 때문에 같이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급하게 일정이 정해져서 항공권을 그리 싸게 구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제일 저렴한 100만 원 정도에 러시아 항공 티켓을 구입했는데 비행시간이 길지 않은 건 마음에 들었다. 출발이 몇 시간 지연이 되어 모스크바 환승이 늦어질까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무사히 로마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인천공항 라운지에서 혼자 식사를...

다만 무엇 때문인지 기내에서 술을 주지 않아서 좀 짜증이 났다. 음료는 무얼로 하시겠냐고 물어보길래 와인 한 잔 달라고 했더니 없다고 한다. 옆에 있던 승객이 맥주를 달라고 하니 그것도 안된다며 노 알코올!이라고 하기만 하였다.

와인 한 잔 곁들여 기내식을 먹고 잠을 좀 자고 일어나 영화 한 두 편 보는 것이 긴 비행시간을 견디는 내 팁이었는데...

뒷좌석 승객이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승무원의 러시아식 발음이 너무 듣기 어려워서 뭐라는지 모르겠다.

러시아 항공의 여러 악명 중에 술 안 준단 말은 없었건만...


처음에는 부산에서 인천, 그리고 모스크바를 거쳐 로마까지 혼자서 찾아갈 것이 좀 두렵기도 했다.

막상 가보니 혼자만의 여행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동행이 있으면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은데 오롯이 혼자, 특히 기차나 비행기에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는 것은 꽤 색다르면서 즐거운 경험이었다.

전혀 낯선 공간, 익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이 아니라) 내가 오직 나로 존재하는 듯한 순간을 만나는 이런 경험을 그때까지 해본 적이 없었다. 여행을 하는 이유와 나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로마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공항버스를 탈 수도 있고 택시나 픽업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로마 중앙역인 테르미니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공항 철도인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를 타고 이동했다. 티켓은 자동발매기에서 구입할 수 있었고 2018년 당시 가격은 14 유로였다.

공항에서 테르미니역까지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 걸렸다.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 티켓은 14유로 였다.

도착해 기차에서 내리니 로마는 아직 후끈 더위가 느껴졌다. 9월 말인 날짜가 무색하게도 말이다.

밤늦은 시간임에도 역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딸을 발견할 수 있었다.

3개월 만에 만나는 딸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로마 한인 민박 객실

로마 테르미니역 주변에는 수많은 한인 민박이 있다.

현희가 묵고 있던 '인 스테이션 민박'은 역에서 가깝고 시설도 나름 좋아 보였다.

앞서 2박은 도미토리룸에서 묵었다는데 엄마 온다고 2인실을 예약하고 미리 맥주까지 사서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두었다. 오!! 역시 우리 딸!!

우리는 밤늦도록 맥주를 마시면서 술을 주지 않은 항공사 험담과 딸의 이틀간의 로마 여행 일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콜로세움

늦게 합류해서 로마를 볼 시간이 없다. 뭐... 14년 전에 로마 관광은 했으니까 이번엔 넘어가고 출발 전 오전 시간을 이용해 가까운 콜로세움만 간단히 보고 오기로 했다.

숙소에서 걸어갔다 올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콜로세움 가는 길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 도중에 아름다운 공원을 만나게 된다.

푸른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파아란 하늘과 초록빛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푸른 숲들 사이로 보이는 콜로세움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전이라 한산한 콜로세움

"역시 관광지라 오전 일찍 왔는데도 관광객들이 제법 많네!"

나의 감탄에 딸은 아침이라 적은 거라며 제가 왔을 땐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했다.


14년 전 왔을 때도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다시금 추억에 잠겼다.

지금도 좀 더운 편이지만 그때는 한여름이라 정말 더웠었다.

더위에 지쳐 이곳 콜로세움부터 포로로마노와 진실의 입 등 관광지를 걸어 다녔던 기억들, 분수대 물줄기에 반사된 불빛들로 아름다웠던 나보나 광장의 야경과 어디선가 들려오던 버스킹 소리들, 빼곡히 들어찬 관광객들 때문에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던 트레비 분수...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로마의 기억이다.

그 와중에도 로마에 다시 오겠다며 사람들을 뚫고 가서 기어이 등 뒤로 동전을 던져 넣었었지. ㅋㅋㅋ


그래서 이렇게 다시 오게 된 걸까?





나폴리를 향해 출발!

로마 테르미니역

로마에서 오후 12시 15분 기차를 타고 1시간 10분 걸리는 나폴리로 갈 예정이다. 간단히 간식을 들고 설레는 맘으로 기차에 탑승했다.


나폴리가 위험하다는 소문에 보통은 나폴리는 가지 않고 폼페이 유적이나 포지타노, 아말피 같은 곳으로 당일치기 남부 투어를 하는 사람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탈리아 남부의 지중해를 품은 나폴리에 전부터 가보고 싶어서 일정에 2박이나 추가했다.

그리고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한다는 포지타노에서도 1박 머물면서 여유 있게 여행을 할 예정이다. 그 후 살레르노를 거쳐 피렌체 3박 , 베네치아 3박 그리고 밀라노 1박 후 아웃.

이것이 이번 우리 이탈리아 여행의 일정이다.

사실 시칠리아 섬도 일정에 넣고 싶었지만 시간과 경비 문제로 제외되었고, 그래서 다시 이탈리아 여행을 해야 할 이유로 남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여행을 많이 해 봐서 그런지 우리 딸은 엄마와의 여행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음... 여행 경비를 대줘서 그런 걸까?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여행을 하면서 내가 보살핀다는 느낌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친구처럼 서로 카페에서 대화도 하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술도 한 잔 하면서 여행을 같이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딸과 함께하는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경험과 재미가 기다리고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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