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바람을 맞아도 자유다.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자유라 하더라도 하고 싶은 할 때나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때는 ‘양심, 규칙, 도덕, 법 등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회피하기 어려운 전제가 있다. 그렇다면 자유란 여전히 어느 정도 규범의 제한을 받는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누리는 자유의 본질이다. 오늘은 두바이에서 규범에 저촉되는지? 또는 저촉되지 않는지?라는 의문 부호를 달지 않고,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 대로 나를 놓아줄 생각이다. 실행하지 못한 자유를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호텔 로비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들뜬 떨림은 속박을 걷어내려는 리베르타스(Libertas) 심장의 두근거림이 아닐는지?
사실 맘대로의 자유는 호텔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과하고 넘치게 호화로운 호텔과 카림(Careem) 택시를 기다리는 현장이 자유의 한 모습이었다. 10분 정도 흘렀을까 미끄러지듯이 렉서스 택시가 왔다. 목적지를 알고 있는 젊은 운전사는 말이 없었고, 차 안에는 침묵이라는 소통이 흘렀다. 살 떨리게 낙점한 행선지는 더 팜 타워(The Palm Tower)였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영장으로, 천상의 눈물이 흘러 지상으로 떨어지게 만든 아우라 스카이 풀(Aura Sky Pool)이 있는 곳이다. 한때 아우라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런지 가슴에 꽂혔다. 숨결 또는 바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우라(αύρα/aura)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인체가 발산하는 에너지와 품격, 실재하는 힘, 인간의 주위에 맴도는 생각체나 파동체, 성기광(星気光) 등이 발산되는 곳이다. 아우라 스카이 풀에는 아름다움만을 볼 수 있는 발가벗은 망루가 있다.
두바이 시내를 설레게 횡단하는 사이에 더 팜 타워에 도착했다. 사계의 마지막 잎새가 된 늦은 여름이 품어내는 열기에 빠지고 싶다는 듯 가벼운 옷차림의 외국인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올 곳에 온 것이고 앞에서 아른거리는 희망은 즐거움의 전조현상으로 여겨졌다. 풀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지는 숨 고르기와 눈 고르기로 뭉친 정적은 조용한 경계였고 환희의 웃음이었다. 입장 절차가 끝낸 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속에 섞여 있을 낭만을 찾으러 갔다. 풀장은 팜(팜 주메이라), 부르즈(부르즈 할리파, 부르즈 알 아랍), 아인(Ain, 마리나 해변), 시티(City, 도시) 등 네 방향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전망이 좋은 곳은 선점되었기에 시티 방향에 자리를 잡았다. 일광욕 의자, 2인용 카바나(Carvana), 소파 중 4인용 소파를 선택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마음이 가는 대로 놀면 되는 것이다.
하늘의 저점과 땅의 고점에서 만나 흐르는 물줄기는 다름이 하나이고 하나가 다름이 아니라고 몸체를 던지고 있었다. 정숙한 물 숲을 헤집고 숨어있는 낭만을 느끼는 감각만이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물 숲을 달려야 한다는 무의식이 작동하니 어느새 무리 속에 끼었다. 유희로 불거진 물보라를 밀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대란에 가끔 마주치는 눈빛은 알맹이 잃은 공허한 만남이었다. 물보라가 목까지 차오르면 연약한 또 다른 만남이 지나가리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손에 쥔 반짝이는 황금보다도 더 아름답고 무거운 설렘이었고,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밀회였다. 잠깐 숨을 돌려 내려앉은 세상을 보니 오후에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팜 주메이라가 거장의 작품처럼 누워있었다. 하늘과 바다와 주택과 호텔, 그리고 나무는 현실을 초월한 추상화였다. 나와 너, 남과 여, 자유와 절제, 자연과 인간,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놓은 물 사막은 이것이 같고 저것이 다르다는 이치를 아주 간결하고 정교하게 깨버렸다.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다운 아내의 신체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물장구치다 경직된 몸을 녹이기 위해 따듯한 바위에 기댔듯이 소파에 누워있노라니 횡단하는 선남선녀의 흐름은 시각과 촉각을 점점 무디게 했다. 보고 싶은 전망이 됐을, 흡입하고 싶은 공기가 됐을, 순종하고 싶은 애인이 됐을 타인들은 점점 뒤돌아서 가는 연인이 되었다. 과감한 노출이라는 의식은 당치도 않았고, 민망하다는 도덕적 준거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동행하고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올바른 준거이고 솔직하고 잘된 표현이었다. 만약 그렇게 느끼는 것이 자유정신에 어긋난다고 질책한다면 항변하지 않고 깨끗하게 인정할 것이다. 그들이 가는 곳이 가야 할 곳이었고 머무는 곳이 머물러야 하는 곳이 됐다. 부족함이 있다면 두 개의 눈과 오감을 늘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심신의 자유 방랑에 대해서 변명을 하자면, 작동해야 할 이성은 물에 젖어 있었고, 방향을 잡을 감성은 흔들려 졸도하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환상에 젖어 말리지 못한 감흥을 안고 아우라 스카이 풀을 떠나, 가본 적도 없는 꿈의 고향 주메이라(Jumeirah)로 향했다. 아름답다는 의미인 주메이라는 고독하여 이웃을 두었다가 시샘하여 도도한 여인이 되고 말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욕망을 태우는 바람이 불면서 한순간에 부유하고 고급스러운 동네로 신분 상승한 곳이다. 이곳은 팜 아일랜드(Palm Island)와 더 월드(The World)가 있다. 팜 아일랜드는 팜 주메이라(The Palm Jumeirah), 팜 제벨알리(The Palm Jebel Ali), 팜 데이라(The Palm Deira) 등으로 이루어졌다. 팜 아일랜드는 야자수 모양을 한 인공도시로 주거와 레저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더월드는 바다 위에 세계지도 모양의 300여 개 인공섬을 주거와 휴양 시설로 만들었다. 천지개벽한 이곳은 행복, 화려함, 바다, 여유, 낭만, 부자, 자유, 부러움 등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명성과 품위를 얻은 주메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돈의 철학과 미학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름다움과 기괴함을 내포하고 있는 호텔 중에서 마음을 사로잡은 래플스 더 팜 호텔(raffles the palm hotel)로 향했다. 인공섬인 팜 주메이라에 위치하고, 해변과 아쿠아 벤처 워터파크와 가까운 곳이다. 호텔 외면은 바로크 양식의 권위와 평화를 담은 궁전 같은 모습을 하였고, 정교하고 화려한 유럽식 클래식 장식, 6,000개의 스와로브스키 샹들리에, 해변, 실내외 수영장, 사우나, 터키식 목욕탕, 피트니스 센터, 극장과 골프 코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2024년 세계 100대 호텔 중에서 14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곳은 화려함과 부유함을 빼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곳이다. 한 땀 한 땀 질서 정연하게 수놓은 야자수 길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게걸스럽게 삼키는 졸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척박한 부에 애타고 있던 목마름이 축축하게 젖어 해갈되는 느낌이었고, 입속에서는 알 수 있는 달콤한 감탄사가 폭죽처럼 터졌다.
들어선 로비는 울긋불긋 단풍 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곳이었다. 범접하기 어려운 황금색의 옷을 입고 한 팔로 하늘에 매달려 곡예를 하는 샹들리에가 인사를 했고, 바로코 양식의 금색으로 치장한 기둥이 호위병처럼 맞이했고, 립스틱으로 멋을 낸 빨간 카펫이 발길을 받아들였다. 사치는 절제를 초라하게 만드는 급한 성질이 있음을 알게 했다. 눈앞에서는, 열정을 쏟아 걸친 야자수 그림의 상위와 하얀 운동화가 너무도 뚜렷하게 시선을 외면했다. ‘아 망했다’는 아쉬움을 속이고, 발아래 납작 엎드린 카펫 위를 사뿐히 밟으며 파란색과 금색으로 어우러진 파란 황금의자에 거만하게 앉았다. 이윽고 갈대 걸음으로 다가와 투숙객인지를 물었다. 커피를 마시러 왔다고 했다. 커피, 주스, 아이스크림 등을 주문하니 비로소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숨통이 트였다. 화려함에 주늑이 든 여유는 이곳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격정적인 쉼표였다. 친절하게 맞아준 스텝과 그곳에서 얻은 여운을 사진 속에 담고 로비를 나오자 더운 열기가 덮쳐왔다. 그 순간 창밖 의자 밑에서 더위를 피해 앉아 졸면서도 우리를 시샘하던 한 마리의 비둘기가 떠올랐다.
이어서 쇼핑을 위해서 에미리트 몰(Mall of the Emirates)로 향했다. 두바이의 명물 대추야자, 그리고 두바이 초콜릿을 사고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2005년 개장한 쇼핑몰은 630개 매장, 100개 레스토랑과 카페, 80개 명품매장, 250개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 등을 갖추고 있다. 중동 최초의 실내 스키장 스키 두바이(Ski Dubai), 두바이 커뮤니티 극장 및 예술 센터(Dubai Community Theatre and Arts Centre), 가족 엔터테인먼트 센터 매직 플래닛(Magic Planet), 20개 스크린을 갖춘 VOX 시네마, 지중해식 레스토랑 잇 그릭 쿠지나(Eat Greek Kouzina),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s) 카페, 까르푸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런던에서 열린 월드 트래블 어워드에서 세계 최고의 쇼핑몰로 선정되었기도 했다.
눈길을 따라 한 바퀴를 돌고 잠시 쉬기 위해서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s) 카페를 찾았다. 커피와 음료를 시키고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면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뜨거운 시선을 느꼈다. 반대편에 히잡을 쓴 여성과 마주쳤다. 종교적 예절이 있다는 말에 구속되어 있었는지, 마주침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신선했다. 그녀들도 카피와 먹거리를 앞에 놓고 보통의 여성들처럼 수다를 떨면서 웃고 있었다. 그 이외 히잡 안으로부터는 아무런 비밀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이어 까르푸에 들러 마음껏 사라는 아내의 말에 용기를 얻어 떠오른 인물에게 안겨줄 대추야자와 초콜릿을 골랐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 잇 그릭 쿠지나(Eat Greek Kouzina)로 향했다. 새까맣고 새빨간 분위기가 매혹적이었다. 가격을 보니 작은 사치가 가능했다. 아랍식과 익숙한 메뉴를 주문하고 만찬을 한 후 잠시 부풀어 올랐던 거품을 빼려고 일반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에 여행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자유라는 개념은 마무리하면서 황홀하게 변질되어 있었다. 자유를 더욱 가치 있게 치장할 수 있는 단어가 필요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생에서 잘 나타나지 않았던 훌륭한 인물이 생각났다. 성은 사(奢)고 이름은 치(侈)였다. 사치할 사에 사치할 치로 항상 경계해야 할 비 덕목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분수에 맞지 않게 생활하는 과소비나 낭비라는 정의가 딱 맞지 않았다. 타인의 것으로만 알았던 사치는 심이 굳은 향(享)이었고, 심연의 락(樂)이었다. 매주 화요일 햄버거, 콜라, 감자튀김 삼종세트를 먹을 때면 조용히 번지는, 참 진실이 빛나 넘치는 미소였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은 내 안의 자유는 삶의 의미를 더욱 즐겁게 하는,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사치의 다른 이름이었다. 내일도 있는 오늘은 사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