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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 모래알 사랑

by 청사

존재(being)는 본질(essence)을 내재화하고 있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따라서 존재가 없으면 본질은 없다. 본질이 없는 존재는 가치를 잃는다. 의자라는 존재는 앉는 것이 본질이다. 의자가 부서져 않을 수 없다면 본질을 잃어 의자라는 존재는 사라지게 된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존재는 좋아하는 것이 본질이다. 만약 증오하거나 미워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존재를 구기는 것이다. 법이라는 존재는 질서를 준수한다는 본질이 내재되어 있다. 도둑질했다면 그것은 법의 본질을 벗어난 것으로 존재를 무너뜨리는 것이 된다. 본질은 절대불가역적 성질을 가진 존재를 가치 있게 하는 것으로, 보편타당한 일체형의 쓰임새(using)이다. 보편타당한 일체형의 쓰임새(using)는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일치하는 쓰임새를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본질에 대해서 다툼이 있게 되어 존재 자체를 위기에 빠트린다. ‘존재는 본질을 내재화하고 있다’는 명제를 통해서 본질의 일탈을 선별하고, 존재에 충실한 세상을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본질을 가진 존재는 미(美)를 동반하게 된다. 존재가 갖고 있는 미는 인간의 체험, 인식, 감성, 이성 등을 통해서 다양하게 표현된다. 존재에 대한 미는 사실적이며 감상적 표현이다. 존재가 미로 표현되는 것이 사진이고, 그림이고, 음악이고, 춤이고, 문학이고, 건축이고, 설계이고, 디자인이고, GPT다. 일반적으로 존재는 미를 내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예술의 대상이다. 존재에 미가 무미건조하거나 추출할 수 없다면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추구하는 예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존재는 버려지거나 외면당하여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존재가 갖고 있는 미가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 의해 표현되거나 귀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내재화된 본질과 동시에 존재에 동반되는 미에 의한 것이다. 나는 오늘 다가오는 존재에 대해서 본질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미적인 관점에서 체험하고자 한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아부다비에 있는 알바다이(Al Badaiyah) 사막으로 갈 생각이다. 사막 사파리 투어의 중심지 중 하나다. 그곳은 생명이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고사시키는 매우 험상궂은 곳이라고 인식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모래, 언덕, 바람, 열기 등이 기다릴 뿐이라 미적 감각을 동원할 필요가 별로 없는 곳이다. 호텔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 달려가야 하는 곳이다. 오전 4시에 사막 사파리를 안내할 차가 도착했다. 칸두라를 입고 수염을 기른 우락부락한 중년 남자는 사막 사파리를 가는 일행인지를 확인하고 차로 안내를 했다. 우리 가족만 가는 여행길이었다. 잘 부탁한다고 하자 그는 무함마드라고 소개했다. 출신국을 물었더니 파키스탄이라고 했다. 낯선 안내인과 함께 영화 <듄>으로 접했던 사막 모래와 친해지기 위해 출발했다. 새벽에 떠난 이유는 무생명의 집에 끊임없이 생명의 빛을 주고 있는 붉은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덤으로 기대한 것은 사막에도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숨어 있는 미를 찾는 것이다.

무함마드는 알바다이 사막에 도착하면 다양한 사막 액티비티가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듄 배싱(Dune Bashing)은 4 윤 차량을 타고 사막의 모래 언덕이 내어주는 스릴을 맛보는 코스였다. 그리고 낙타 트레킹(Camel Trekking)은 말 그대로 낙타를 타고 사막 위를 걷고, 샌드보딩(Sand Boarding)은 사막 언덕에서 보드를 타는 체험이었다. 우리는 정해진 대로 액티비티 체험을 했지만 오히려 사막이 숨겨놓은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모래 위를 걷는 발길은 내려앉은 삶의 무게를, 알게 모르게 쌓아둔 걱정거리를 파열음 없이 조용하게 내려놓고, 어머님의 품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붉게 타오르는 강렬하고 찬란한 해님이 둥글게 둥글게 함박웃음으로 다가왔다. 바다 위로 떠 오르는 눈물 젖은 해님이 이번에는 사막 위에서 뽀송뽀송한 해님으로 돌아왔다. 햇빛 놀이에 깊숙이 빠져있는 우리를 본 무함마드는 다양한 포즈를 취하게 하고 핸드폰으로 찍어댔다. 온 힘으로 떠오르는 해님과 온몸으로 버텨 희생하는 모래 언덕은 무 생명의 척박함을 만회하고 있었다.

이윽고 각자 휴식 시간을 가졌다. 끝없이 이어진 모래 언덕이 끌어가는 대로 정처 없이 걸었다. 약 10분 정도 걸어가니 가족들은 사막에 숨어 사는 신분 없는 생물처럼 가물가물 멀어져 갔다. 무념으로 걷는 모습은 많은 세월을 먹어치운 중년이었고, 오랜 세월 그대로 있을 모래보다도 낮은 신분의 소유자였다. 더욱이 앞으로 게걸스러운 시간에 매몰되어 넘어질 그날을 위해 가고 있는 듯했다. 가족이라는 존재와 나라는 존재 사이에 모래성 같은 나약함이 생기고 있었다. 큰딸이 시집을 가 새살림을 차렸고, 둘째는 날짜를 잡아 출가를 앞둔 상황이 모래 언덕의 자국처럼 새겨졌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으스러지고 있는 것 같았다. 순리로, 현실로, 미래로, 그리고 사랑으로도 뭉쳐지지 않는 길로 가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상처 입은 모래 언덕이 따듯한 모래바람으로 치유되고 있었다. 나에게도 따듯한 바람은 불어올는지? 호텔로 돌아와 손으로 모래를 끄집어내려고 했지만 잡히지 않아 주머니를 뒤집어 털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넣어 놓은 미세한 모래알 사랑이 털리고 있었다.

이어서 높이만큼이나 이야기가 쌓여있는 부르즈 할리파(Beuj Khalifa)로 갔다. 미국의 건축가 스미스(Adrian D. Smith)가 설계했다. 그는 진 마오 타워(Jin Mao Tower), 펄 리버 타워(Pearl River Tower), 트럼프 국제 호텔과 타워(Trump International Hotel & Tower), 센트럴 파크 타워(Central Park Tower), 제다 타워(Jeddah Tower) 등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리고 벨기에의 베식스(BESIX), 아랍에미리트의 아랍텍(Arabtec) 그리고 삼성물산 등이 시공했다. 그 가운데 500m 지점부터는 3일에 1층씩 올리는 초고속 건설공법(3 Days cycle)을 성공시킨 삼성물산이 단독으로 시공을 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공사 중에 두바이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면서 아부다비로부터 32조 원을 지원받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부르즈 두바이’에서, 아부다비의 국왕이자 UAE 대통령인 할리파 빈 자예드 알 나히얀의 이름을 따서 ‘부르즈 할리파’로 바뀌었다. 높이는 828m이고 철탑을 포함하면 829.8m로, 2021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그것의 높이를 넘는 1,008 미터의 제다 타워(Jeddah Tower)를 건설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미담을 가진 부르즈 할리파는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달에 가는 꿈이 실현됐듯이 하늘에서 생활하는 꿈도 실현된 듯하였다. 하늘을 침범하고 신의 영역을 넘는 부르즈 할리파는 인간승리였다. 과학은 신의 섭리를 이해하는데, 꿈은 바람을 실현하는데, 자본은 존재하게 하여 완전체를 만들었다. 눈이나 가슴으로 남기기에 너무도 아까워 사진기로 담으려 했지만 이내 실망을 하고 말았다. 눈으로 보고 오감으로 느낀 그런 감동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비로움이나 경이로움, 위대한 기적 등 그것을 칭송하는 많은 미사여구가 어울리지 않았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담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일뿐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미는 신의 경지를 넘어섰다고 한다면, 불신론자의 경박한 감각이라고 비판이나 비난받을 수 있다. 부르즈 할리파는 주저하지 않고 ‘인간은 미의 종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간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고 있었다.

완벽한 모래성 부르즈 할리파 옆에서 거대한 입으로 모두를 삼키고 있는 두바이 몰(Dubai Mall)에 입성했다. 이것도 세계 최대의 쇼핑과 레저를 할 수 있는 복합공간을 가진 명소다. 건축비는 20조 8,300억 원, 축구장 50개의 넓이, 1,200개의 매장, 대형 백화점 2곳, 수백 개의 레스토랑과 카페, 레크리에이션장, 올림픽 경기가 가능한 아이스링크, 에미레이트 A380 익스피리언스, 용량 23,500톤이 담긴 두바이 아쿠아리움 및 수중 동물원 등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온 명물 중의 명물은 따로 있었다.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는 하마처럼, 두바이를 방문하는 관광객을 모두 흡입하고 있는 힘이었다. 나도 그 큰 입에 빨려 들어갔다.

두바이 몰에는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민족과 각기 다른 운율을 가진 문화가 웅성웅성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 모습은 세계 최대의 쇼핑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세계 사람이 가장 많이 있는 인간 몰이었다. 남기고 싶은 욕심에 두바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있는 기념품을 사기 위해 샵에 들어갔다. 자동차 앞 거울에 달기에 접합하다고 판단되는, 황금색을 띤 부르즈 할리파, 부르즈 알 아랍(Burj Al Arab) 호텔, 낙타, 두바이 몰 등의 모형을 한 열쇠고리를 샀다. 쇼핑하는 가운데 너무 넓고 방대해서 방향감각을 여러 번 잃었지만, 당황하면서 얻는 재미가 있었다. 아이쇼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려고 카림 택시를 호출했다. 그러나 서로 위치를 공유하지 못해 헤매고 있는 동안 나캅(niqab)을 두르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젊은 여성이 동일한 장소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예약된 택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다. 그녀는 택시를 탄 후 검은 웃음을 차창으로 흘렸다. 별처럼 왔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두바이 몰과 부르즈 할리파를 연결하는 곳에는 황홀한 물 향연을 피로하는 두바이 분수가 있다. 이 분수는 라스베이거스의 벨라지오 호텔(Bellagio Hotel) 호수의 분수를 설계한 미국의 워터 피처 전문 디자인 회사 WET가 디자인했다. 두바이 분수는 12헥타르 규모의 인공호수, 2억 1,800만 달러의 비용, 최대 275m의 분수길이, 83,000리터의 물 분수, 6,600개 이상의 조명, 25개의 컬러 프로젝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연 중에서는 다양한 클래식, 아랍음악, 월드뮤직 등이 등장한다. 2025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안무 분수다. 분수의 이름은 개발사 에마르(Emaar Properties)가 주최한 콘테스트를 거쳐 선정되었다. 수리 중이어서 두바이 분수가 물을 뿜어내는 광경은 직접 접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려든 사람의 물결이 물 쇼를 대신하고 있었다.

오늘 체험한 알바다이 사막, 부르즈 할리파, 두바이 몰, 두바이 분수 등에 동반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실패했다. 존재에 동반되는 시각적 미를 세밀하고 정교해진 카메라와 스마튼 폰으로 담아보았지만, 그들이 발하는 실체적 아름다움은 사진 속에 녹아있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리고 눈으로 보고 느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자신의 어휘와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하여 글로 담아낼 수 없었다. 아직까지는 존재에 내재된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인간의 눈으로 보고 오감으로 느끼는 것 이외에 그 어떤 수단으로도 정확하고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통제하고 있는 과학적 도구나 인간이 다스리고 있는 감각적 언어로 존재의 미를 표현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런 모순을 해결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그러나 새롭게 다가오는 AI시대에는 인간이 창출한 존재뿐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과학적 도구나, 이성과 감성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비인간적인 것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인간보다도 더욱 거대한 존재를 탄생시키고 인간의 이성이나 감성보다 더욱 세밀하고 정확하게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른바 휴머노이드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그런 시대가 오면, 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Chat GPT와 나는 하나의 화두를 놓고 시를 쓴 적이 있다. Chat GPT는 앱을 열어 시어를 넣고 읽은 시간 포함해서 2분 정도, 나는 2시간 걸렸다. 어떻게 됐을까? 지금 그 내용을 까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사고하는 이성과 느끼는 감성으로 구축한 미적 세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말로 대신한다. 어느 대학 시험에서 Chat GPT 커닝으로 A+를 받았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AI의 파악, 이해, 표현, 능력, 예측 등이 교수자나 학습자의 그것을 일부 초월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간을 농락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확대된다면, 인간계는 하등동물 간의 리그가 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허점투성이인데 휴머노이드 시대에 독자가 생기고 라이킷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떤 존재로 있게 될까? 사막처럼, 부르즈 할리파처럼 아니면 니캅을 쓴 여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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