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ING : 제4화 담장 위에 앉은 그림자

by 청사

관문은 닫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는 곳이었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소금기에 젖은 바람과 체취에서 스며 나오는 간장 맛에 절인 공기가 진하게 다가왔다. 적어도 본부장에게 도쿄(東京)의 관문인 하네다(羽田) 공항은 그런 곳이었다. 긴박했던 유학 시절 바쁜 일이 있어도 지나갔고, 좋은 일이 있어도 지나가는 복잡한 문이었다. 시퍼런 칼을 찬 사무라이(侍)가 성을 정복하러 가며 생기는 긴장감과 승리하고 돌아올 때 치솟는 성취감이 교차하듯이 학문과 삶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밀당을 벌이며 통과한 곳이었다. 그 과정에서 절실하게 정성을 다하는 자에게 시대와 시간은 다행스럽게 아군이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그 당시 한쪽 구석을 매몰차게 차지하며 무거운 긴장감에 휩싸였던 흔적은 사라졌고, 안방인 양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게 열린 마음으로 통과했다. 일본에서 의문을 가졌으면서도 희망과 바람을 실현했다는 의미에서 재팬 드림을 이루었고, 그와 동반되어 안착한 여유가 내심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네다 공항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욕심이 시작된 설렘의 입구였고, 마무리를 짓고 돌아가는 성공의 출구였다.

한편 정총장은 일본과 아주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 생존언어로 일본어를 터득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일본 지인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멘 파워는 그때의 인연으로 형성된 인맥이었다. 일본은 자신의 인격 형성과 성장 발판이었을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곳이었고,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존감을 높여준 것처럼 황금이 기다리는 고향이었다. 그런 신념을 갖게 된 것은 삶의 원류이자 뻗어 가게 하는 힘을 얻어 활용할 수 있었고, 숨쉬기가 너무 편하고 사랑과 미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생긴 꽉 막힌 숙제를 해소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거나, 사그라드는 에너지를 충전하거나,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싶거나 할 때 현실로부터 떠나게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살아오면서 마음속에 박제된 한풀이를 할 수 있고, 자유를 만끽하는 선을 넘어 방황하거나 방종도 하염없이 수용해 주었다. 못다 이룬 꿈들을 갖게 하고 기획하고 실천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천연의 보고였다. 그런 이유로 일본에 대한 과도한 애착과 무모한 편애는 시종일관 스스로 판 친일파라는 구덩이에 갇혔다.

외견상으로 보나 인격적으로 보나 품행으로 보나 그는 분명히 온화한 교육자였고 친절한 지도자였다. 그에게는 절제라는 무기가 장착되어 있었고 사용하는 데 원칙이 있었다. 남에게는 날카롭지만 부드럽게,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느슨하게 라는 원칙이었다. 주위에서는 그를 이율배반적 성격의 소유자라고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의 비밀은 내면이라는 숙주 위에서 조급하게 때로는 느긋하게 길러진 두 가지 색깔의 절제가 탁월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중성을 가진 절제가 느슨해지는 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어, 자신에게 내재된 절제와 내부의 위험인자가 연결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것의 정체는 정총장의 마음에 문신처럼 자리 잡아 지울 수 없고, 정신과 육체를 혼탁하게 하며 삶을 갉아먹는 사한(四恨) 트라우마였다. 부에 대한 한, 학벌에 대한 한, 권력에 대한 한, 여성에 대한 한 등이었다. 그것은 때로는 능숙하게 사용하는 절제라는 통제를 벗어났고, 색칠로 덮거나 메스로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빈 가슴을 채우는 방식으로 푸는 이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더욱이 그것이 정총장의 현재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고, 전진하는 원동력이며, 삶의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의 영혼과 현재의 영혼이 만나는 접점에서 살아가는 영원한 경계인이었고, 담장 위에 앉아 언젠가는 사라져야 하는 그림자였다.

부에 대한 한은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던 모든 불행이 가난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기에 생긴 마음의 병이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각인된 부에 대한 욕망은 삶을 활기 있게 도전하게 했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 그 자체였고, 사는 동안에도 되새김질해야 하는 숙명이 되었다. 따라서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은 즐겁게 살아가는가 아닌가 보다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났는가 아닌가라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가난 극복이라는 평생의 목표는 자신에게 내재되어 용트림하는 부에 대한 탐욕 의지와 돈을 버는 기술을 발굴하여 연마하면서 달성되었다. 그것은 돈을 버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여 현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었고, 돈을 소유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란한 비법으로 축적하였고, 돈이란 벽돌을 만들어 성을 쌓은 것이다. 정총장에게 과거는 비워버리는 것이었고, 현재는 그것을 채우는 것이고, 미래는 쌓아온 성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순간 돈방석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 후부터 일본은 가진 돈을 절약하거나 버는 곳이 아니라 쓰는 매우 적절한 곳이라고 인식했다. 사고 싶은 것을 사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갖고 싶은 것을 갖고, 하고 싶은 것을 해서 과거로부터 쌓인 망상을 즉흥과 충동이라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차곡차곡 지우는 작업을 했다. 부는 베푸는 것이 아니라 축적하여 즐기는 것이라는 새로운 사고가 고착되었다.

그리고 학벌에 대한 한은 공적교육과정에 진학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었다. 정식교육은 공부를 하며 지식을 함양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자격증을 따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검정고시를 통해서 졸업자격증을 땄기 때문에 공적교육과정을 그리워했다. 정규교육에 편입되지 못한 탓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교류할 수 있는 동년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항상 개 밥의 도토리처럼 외톨이로 있었고 그것이 인생의 오점이며 자격지심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생업과 학업을 겸업하였기에 전공교육을 배워 사회에 나가 전문가로서 활동하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다는 오로지 학위를 획득하는 과정이었을 뿐이었다. 대학원도 석사 자격증을 따는 것으로 매듭을 졌다. 그런 이유로 스스로 학벌과 관련된 자격지심으로 항상 위축되었다. 사회적 지위를 가지면 가질수록 학벌이나 학위에 대한 간절함이 사무쳐 한이 되었다. 학위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맥이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서 해외자매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것으로 해결했다. 박사학위 중에서도 법학박사 학위를 선호했다. 학벌에 대한 한풀이는 모든 행사에서 법학박사 학위복을 항상 입고 등장하였으며, 학위증을 총장실이나 입구 복도에 사진을 나열해 놓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그리고 명문대 학위를 가진 우수한 인력을 교수로 채용하여 마음대로 부리는데, 그리고 그들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총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크게 만족하였다. 학벌은 출세를 위한 자격이지 지식을 연마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권력에 대한 한은 본인의 힘으로 삶이나 사회적 지위를 개척하는 데 한계를 느껴 권력에 대한 욕망이 폭발하면서 자생하였다. 공식절차나 공동경쟁을 통해서 하는 게임은 가진 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피부로 체험하였다. 출세하는 길을 닦는 방식으로 학벌이나 부보다 권력이 작용하는 사회를 원망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권력지향적 처세술과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권력을 갖기 위한 방법은 사다리를 올라가는데 지지 않는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면서, 동시에 권력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아첨하거나 굴복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권력 싸움에서는 상대방이 공격할 수 있는 티끌만큼의 여지도 두지 않았고, 치열하게 승부를 확실하게 가르는 선택을 했다. 싸움이나 경쟁이나 전쟁은 이기는 것이지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철두철미하게 몸에 배어있었다. 싸움에는 항상 승리라는 두 글자가 따라다녔다. 권력에 대한 한풀이는 권력을 쟁취하여 타인을 움직이는 것으로 해소되었다. 권력은 독점하는 것이지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한은 젊은 시절 깊은 사랑에 빠진 여성이 자신의 청혼을 거절한 데서 시작되었다. 꿈에 그리던 환상적인 여성을 만났으나 가난으로 빚어진 경제적 차이를 시작으로 다층적인 차이에 대한 거부감, 학벌의 미약함에 따른 낮은 사회적 지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신 등으로 사랑 고백이 물거품이 되면서, 정성을 다해 쌓아 온 사랑이 처절하게 버려지고 산산조각이 나면서 사랑이라는 감성은 그의 마음에서 지워졌다. 젊은 시절 순수했던 고백에 대한 거절은 사랑이라는 씨앗을 마르게 했고, 싹틀 여지를 없앴고, 척박한 허허벌판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의 가슴에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고백과 거절이라는 기억으로 깊숙이 박혀 지을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가장 맘에 드는 여성을 찾는 병적인 습관이 생겼다. 그에게 여성은 고백해서 사랑을 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절대적이며 독단적으로 가질 수 있는 소유물로 인식되었고, 지배하여 즐기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진심이나 됨됨이나 품위보다는 자신의 자부심을 높여 준다고 생각되는 여성만을 골랐지만, 선택한 대부분의 여성은 젊은 시절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여성과 닮아있었다. 여자는 사랑하고 보호하며 동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선택하고 소유하며 지배하여 즐기는 꽃바람 같은 존재였다.

정총장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은 사한 트라우마를 해소하는데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고 주위의 눈을 의식해서 조심스럽게 행동했을 뿐 아니라 오랜 기간 쌓아 내공을 가진 절제라는 숭고한 미덕으로 다스렸다. 그러나 일본에 가면, 닫힌 마음을 활짝 열고 마음에 새겨진 못들을 빼내는 작업을 열정적으로 과감하게 시행했다. 거기에는 망각한 절제만이 있었다. 한풀이인지 복수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언행을 하였고,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열정을 가감 없이 풀었다. 그에게 있어 한풀이나 복수는 동일한 의미로 내통하고 있었고,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극도로 추구하는 데 긴밀하게 협업을 했다. 특히 한풀이를 실행하는데 상대방이 인지하거나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하였기에 인심 좋은 아저씨나 지식인 같은 느낌을 줘 경계하지 않도록 했다. 정총장은 공식적인 자리에 본부장이나 반비서를 대동하였지만, 사적 인연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나 한풀이를 하는 상황에는 대동하지 않는 등 치밀하게 행동을 해왔다. 따라서 정총장의 한풀이는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위험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작위였고, 미완이었고, 미수로 정리가 되었다. 거기에는 통과가 있을 뿐 완결이나 마침표가 없었다.

그처럼 아픔을 해소하고 기쁨을 누리는 관문이 된 하네다 공항은 정총장에게 행운의 문고리이고, 활짝 열린 대문이었다. 일본은 사치를 부리고 마음에 담은 응어리를 녹이기 좋은 천연의 장소였다. 일본지인들은 마음을 나누고 한으로 닫힌 과거를 지우고 현재를 열어 즐길 수 있는 좋은 인생의 동반자였다.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일본말은 사람을 연결하는데 유효하게 작용했고, 일본에서 생활하는데 편리함을 제공하였으며, 자존감을 높이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공식 자리나 어려운 일본어가 난무하는 토론장소를 제외하면 일본어를 사용했다. 본부장은 일본출장에 흥분을 하는 정총장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를 바랐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하네다 공항에서 숙소인 뉴오타니 호텔(New Otani Hotel)로 가는데 지금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이 없었다. 정총장은 이곳에서는 물을 쓰듯이, 공기를 마시듯이 하는 기분으로 돈으로 대응했다. 돈으로 구매 가능한 편의, 향유, 여유 등을 의식적으로 즐기는 과정에서 이젠 그것이 일상의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다는 것을 본부장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간섭하거나 제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제일 효과적이고 암묵적인 처세술이었고,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특효약이 이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미끄러지듯이 관문을 떠나 미지의 기쁨이 기다리는 도심으로 향했다. 항상 가던 길로 갔기에 눈에 익숙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일본인의 깊은 심성만큼이나 예측되지 않는 길이기도 했다. 지나치는 건물이나 자연은 이색적인 만남이나 새롭지 않다는 듯이 미동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모르는 척 무덤덤하게 앉아 있었다. 정총장의 자부심을 드높이는 호텔 입구에 들어섰다. 도쿄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에 있어 비싼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저명인사들이 사용하는 곳이라는 비밀스러운 곳이라는 의미가 더 붙여졌다. 멀리서 보이는 정원은 산속에 있는 한 폭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조화로웠고, 화려한 건물을 품어 궁전으로 만들었다. 양옆에는 언제나 같은 색으로 있을 것 같은 은행나무와 사계의 멋을 담고 있는 단풍나무로 된 가로수가 바람결에 거들먹거렸다. 가노라니 뒤에서 뽐내고 있는 파란색의 얼굴을 한 폭포가 환희의 눈물을 폭탄처럼 토해냈고, 물소리와 함께 두툼한 물의 요정이 집단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서럽고 외로워 철버덕 뛰어들어도 잔잔한 물방울 웃음으로 와락 감싸줄 것 같은 유혹을 느끼게 했다. 아름다운 호수와 폭포, 자연목과 꽃, 그리고 잔디가 빼어난 한 가족처럼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깊은 산중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나 생긴 닭살 돋음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것 같았고, 깊이 간직한 보물을 대가 없이 내줄 것 같았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그리움을 자극했고, 긴장감이 미세하게 분해되어 바람결처럼 불었던 첫사랑이라는 설렘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내심을 숨기고 있는 깊은 땅바닥의 기운은 슬렁거리지 않을 것이라는 냉정함과 비밀을 털지 않을 것이라는 묵직함도 있었다.

벨보이가 택시 문을 열어주고 거만하게 누워있는 붉은 카펫 위를 걸으면, 성공했다는 감각을 최상으로 만끽해도 되었다. 거대하고 화려한 로비에 들어서면 정총장은 돈 자랑과 지위 자랑, 일본어 자랑을 할 차례였다. 정갈하고 공손하게 인사하는 프런트 여직원에게 우선 눈웃음으로 인사를 건넨 후, 잘 알고 있고 친근한 사이인 것처럼 일본어로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잘 있었어요.”라며 악수를 청했다. 프런트 여직원은 익숙하지 않은 듯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정총장의 남심이 발동하여 청한 것인지 아니면 의례적으로 청한 것인지 헤아릴 방법은 없었다. 보기 드문 돌발적인 악수에 여직원은 여전히 망설였다. “아네, 감사합니다.”하며 부자연스럽게 손끝을 살짝 내밀자 덥석 잡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반비서가 곁눈으로 정총장의 얼굴을 힐끔 보며 화살을 쏴버렸다. 분명하게 이상징후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눈빛이었고, 경계하는 듯한 날림이었다. 더욱이 유심히 바라보던 반비서는 평소 사근사근한 모습과는 다르게 생뚱맞게 혼자서 붉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원망인지 아니면 체면을 차리라는 것인지, 과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경계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정총장의 분위기와 반비서의 얼굴빛은 반비례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지금까지 정총장은 여성과 인사를 나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악수를 청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본부장이 보기엔, 지금 정총장의 언행은 나무랄 때가 전혀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다. 그런 인사법은 행사와 만남을 즐기는 출발신호였고, 행사를 마치며 하는 악수는 즐겼다는 완결 신호였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 보면, 지인이든 아니든 익숙하든 어색하든 악수라는 일반적 접촉으로 개인의 욕구와 사회관계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고 의심할 수는 없었다. 학교 이외의 장소에서 정총장은 매우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젊은 세대에 비견할 만큼의 열정과 신선함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주위의 분위기나 상대방의 입장보다는 생각한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과 임기응변은 매우 탁월했다. 특히 여성에게 악수를 청하는 습관이 있는 듯했지만, 거기엔 따듯함과 다정함이 깊게 배어있으면서도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은 공식적인 자리나 행사에서 본인이 먼저 남자에게 악수를 청하는 법이 없었고, 상대방 남자가 악수를 청하면 마지못해 손을 내밀곤 했다. 정총장의 악수에는 본인만이 알고 있는 매우 정교한 의도와 의미가 있는 듯했다.

악수 세례가 끝나자 VIP카드를 내밀면서 의도적으로 만기일이나 갱신일을 물었다. 궁금해서가 아니라 다시 한번 자신의 카드를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말을 걸기 위한 술수라고 보는 것이 옳은 듯했다. 더욱이 호텔의 귀빈 손님이라고 확인을 하면서 대접받고 싶다는 다른 언어였고 행위였다. 그는 항상 VIP라는 말이나 ‘에라이’(偉い: 훌륭하다) 라는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는 기대했던 언어나 행동이 날아오면 잽싸게 낚아채서 기다렸다는 듯이 호탕한 웃음으로 응대했다. 특별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것에 대해서 매우 민감했고, 과시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일본에서 최고 특급이라고 평판을 받는 이 호텔과는 매우 잘 어울렸다. 그가 고집스럽게 이 호텔을 선택하여 투숙하는 이유였고,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여기에서 좋은 고객이라는 꽃으로 피고 있었다.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언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세밀하고 우수한 감각을 가졌고, 그런 수단들은 그가 높아지려는 욕망을 배반하지 않으며 언제나 충분하게 채워줬다.

예약내용을 확인하고 방이 정해졌다. 정총장이 결정하는 것이어서 투숙하는 본부장이나 반비서의 선택의지는 더위로 땅속에서 기어 나와 말라가는 지렁이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본부장 자 방 키, 이것은 반비서 키, 이것은 내 것”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선물이라도 되는 듯이 각자에게 키를 나눠줬다. 그 큰 목소리에는 많은 의미가 섞여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키를 주는 행위는 주인과 부하가 누구이며 결정자와 피 결정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가르는 상하구별법이었다. 그리고 각각 방을 따로따로 쓴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따라서 방과 관련된 다른 해석이나 추측의 여지를 두거나 의심할 기회를 애당초 차단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혹시 밖으로 나돌아 다닐지도 모를 소문을 예방하는 기술이었다. 그 큰 소리를 들으면, 해야 할 믿음과 임무는 그렇게 알고 일체의 다른 생각을 소각하는 것이고, 이후의 일은 상상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알고 믿는 것이 정총장의 의도에 딱 맞는 대응방식이며, 지금까지 본부장이 틀림없이 가장 잘 해온 처세술이었다.

이어서 “6시에 로비에서”라는 말을 남기고 정총장과 반비서는 본관에 있는 방으로 향했고, 본부장은 별관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정총장과 반비서가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정총장과 반비서는 서열이 정해진 사용자와 고용자로 보이기도 했지만, 딸과 아버지와 같은 느낌이 들어 그대로 좋아 보였다. “그래 지금부터 6시까진 자유야.”라는 감정에 충실하게 혼자서 가는 길 위에서 잘 움직이는 발길을 마부처럼 더욱 세차게 재촉했다. 자유가 기다리고 있는 방에 도착해서 옷을 정리하고, 이 순간과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침대에 속옷만을 입은 채 벌러덩 누웠다. 이 맛에 출장을 오는 것이고, 정총장을 수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해방공간이라는 사실을 즐겼다. 수행으로부터의 스트레스 완화, 신경 쓰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할 수 있는 일로부터의 탈출 등 많은 것을 안겨주고 있었다. 자유가 자유를 부러워하고 자유가 자유를 주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어느새 알람이 울려 일어나니 5시 30분이었다. 옷을 챙기고 급하게 로비로 내려가니 5시 50분을 가리켰다. 두리번 두리번 오가는 사람을 보는 가운데 멀리서 정총장이 혼자서 걸어왔고, 반비서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반비서는 오지 않았습니다, 연락할까요?”

“아니. 오늘은 단체장의 초대 만찬이야. 반비서는 호텔에서 쉴 거야. 메이지회관으로 가면 돼”

“일본단체장만 오시는 겁니까?”

“하시모토 회장도 동석할 거야. 하시모토 회장은 그 단체의 오래된 후원자야. 그래서 일본에 오면 항상 같이 만나지.”

“참 좋은 분이군요. 저희 대학에도 장학금을 쾌척하시고.”

“그렇지... 그분은 명예를 쫓고 있어. 돈과 명예는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엔 순서가 있어. 돈으로 명예를 살 수는 있어도 명예로 돈을 살 수는 없어. 돈에 명예가 따라오는 세상이야. 돈이 세상과 인간의 품질을 규정하고 있지. 돈이 뭔지 아나?. 돈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훈장 같은 명예이고, 움직이게 하는 권력이지. 그러나 명예는 그늘을 먹고 살지만 돈과 권 력은 햇빛을 먹고 살지.”

“총장님은 어느 쪽을 선호하시는가요?”

“하하하 잘 생각해 보게나. 내가 어느 쪽인지”

“글쎄요? 아마도...”

“돈, 명예, 권력은 한통속이야. 본부장은 그것 중 어느 것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해?”

“저는 명예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내 질문은 모범 답안을 내라는 것이 아니야. 욕망을 가진 남자로서 속에 담고 있는 진심을 말하라는 것이야. 자네도 욕심을 내서 교수가 된 것이 아닌가? 본부장이 됐고, 지금 내 옆에 있잖아.”

“저의 인생 목표를 달성하고, 동시에 공동체 일원으로서 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또 방송용이군,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 최종종착지는 어디야? 자네 말대로 명예를 빼고 차선책으로 돈, 권력 등이 기다린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저는... 차가 아직 안 오는데요.”

“살다 보면 본심이 드러나 읽히게 돼... 하시모토 회장의 차로 이동할 거야”

“예 도착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속내를 말하지 못했지만 본부장은 내심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 중에서 인간의 욕망을 가장 잘 충족시키는 것이 명예가 아니라 돈과 권력이라고 생각했다. 돈과 권력은 법규를 잘 지키는 신사가 올바르게 운전하는 자동차이기도 하고, 약에 찌든 중독자가 운전하는 자동차이기도 하고, 쉼표가 없는 피아노 건반이고, 정거장이 없어 질주하는 기차라고 여겼다. 정총장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세속적인 생각을 숨기고 화려하게 명분만을 말한 것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리고는 ‘돈과 권력이란 무엇인지?’, ‘선량한 돈과 권력이 있는가? 가장 격이 맞는 돈과 권력의 좋은 사용처는 어디인가? 어떻게 사용해야 돈과 권력의 가치를 극대화하는가?’ 등 돈과 권력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에 잠시 빨려 들어갔다. 일반론으로 돈과 권력은 그것을 가진 자가 갖지 않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사용할 때 사회로부터 좋은 돈과 권력이라고 칭송을 받아왔다. 그런 면에서 보면, 돈과 권력은 소유하고 지배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때에 맞게 적재적소에 사용해서 불행을 해소하고 행복을 극대화하는 데 최고의 가치가 있다는 억지로 합의한 듯한 사회적 시선과 윤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과연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평가와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그것들을 사용하고 있을까? 돈과 권력은 갖고 있다 하더라도 타인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절대적 원칙이고 존재의의라고 한다면, 남의 것이나 다름이 없고, 쓰레기와 같아 소유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나 현재에서 세상 사람들은 사회공헌을 위해서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전쟁 같은 경쟁과 싸움으로 돈과 권력을 얻으려 하고 있단 말인가? 아마도 그것은 돈과 권력이 구걸하는 아주 작은 파편적 명분일 뿐 아니라 진실이 누락되거나 본질을 건너뛴 턱없는 허구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라고 보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 돈과 권력을 획득하고 사용하는 것이 본심이며 솔직한 이유가 아닐까? 본부장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는 정총장과 하시모토 회장이 돈과 권력을 왜 소유하여 축적하고 있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들에게 과연 돈과 권력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머릿속에 사념이 퍼지는 순간, 밖으로 눈을 돌리자 하시모토 회장이 호텔 로비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총장님 반갑습니다. 드디어 오셨군요. 본부장님도. 하하하”. “반갑습니다. 오늘 잘 부탁합니다. 본부장 인사드려.” “안녕하셨어요, 감사합니다.” “반비서가 보이지 않네요.” “예 오늘은 휴식시간을 줬어요. 자 출발합시다”. 하시모토 회장은 차로 안내를 했다. 하시모토 회장은 돈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듯이 멋진 차를 몰고 왔다. 그가 즐겨 탄다는 노란 스포츠카를 가리키며 “여기에 타시죠. 본부장님은 뒤로...”라고 말을 했다. 차는 보는 순간 이것은 차가 아니라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총장이 좋아하는 노란색을 하고 있었고, 커다란 두 개의 문, 그리고 완전히 뚜껑이 열리는 독일제 차였다. 하시모토 회장의 얼굴 생김새와 차의 모습은 닮은 부분이 있는 듯했다. 그는 탑승하자 콧노래를 부르며 차를 몰고 젊은 청춘처럼 속도를 내며 달렸다. 달리는 동안 자기와 관련된 장소가 나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유쾌하게 달리는 차의 속도에 맞춰 거침없이 내뱉었다.

본부장은 정총장이 사담으로 돈, 명예, 권력 등에서 대해 들으면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고, 그것을 언급하면서 즐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시모토 회장과 정총장은 각자가 추구하는 것들이 몸에 배었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여 잘 어울렸다. 전신에 날티를 풍기는 하시모토 회장과 근엄한 모습에 숨긴 욕망이 있는 정총장 사이에는 본심을 위장한 과시가 끈끈하게 서로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정총장은 지금까지 여자에 대해서 언급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언젠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정에서 여성은 삼부종사를 해야 한다.”는 그리고 ‘여자는 강하게 휘어잡아야 한다.’는 말이 여러 번 귓가를 스친 적이 있었다. 그 말은 가부장적 사고를 명백하게 갖고 있다는 증거였고, 남존여비 사상이 그대로 녹아든 권위주의적 사고였다고 인식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었거나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그런 사고가 총장과 반비서 사이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는 가까이 접한 적이 없어 역시 오리무중이었다. 다만 너무 친밀하기에 무엇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맑은 하늘에 뜬금없이 내리치는 번개처럼 사라졌다. 본부장은 정총장이 성공한 사회인으로서, 교육자로서 모두를 잃게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할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본부장은 반비서에게 쉬도록 한 조치는 쉬게 한다는 명분이었다. 어쨌든 자유를 얻은 반비서를 부러워했다. 정총장이 취한 조치에는 충분한 배려가 있었지만 반비서의 감정상 지위가 자신보다 위에 있다는 행간의 질서가 작용했다는 인식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대학에서의 위계서열보다 친밀도 위계서열이 영향을 준 결과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하시모토 회장으로부터 저녁 만찬은 여성과 술이 있는 자리라고 들었기에 데리고 갈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동행해서 이런저런 소문이 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한 조치이자 배려라고 추측할 뿐이다. 비로소 반비서를 둘러싼 배려와 조치는 동일한 어감으로 다가왔다. 일본에서 자유분방하게 언행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한풀이를 하는 정총장, 그리고 사회적 지위와 돈을 자랑하며 낭만을 즐기는 하시모토 회장과 함께 메이지회관으로 향했다. 본부장은 저녁 만찬에 수행원으로 참석하는 것이었기에 방관자로 있으면 됐다. 그러나 한 구석에는 주어지지 않은 관찰자로서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왠지 정총장과 하시모토 회장의 내면에서 꿈틀거리고 있을 법한 돈과 권력이 어떻게 튀어나올지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기대와 호기심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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