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푸르다고 하지만 항상 푸른 것만은 아니다. 길은 있다고 하지만 항상 가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항상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우러러보는 하늘이고 가는 길이고 살아가는 인생이다. 나는 하늘 아래에서, 길 위에서, 인생 속에서 여전히 신분 잃은 존재로 있었다.
자신에게 부여된 최대의 사명은 ‘잘 들어와 잘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되는 매우 적합한 장소를 찾았다. 집단지성과 엘리트들이 향하는 곳이기에, 버팀목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빠져 급하게 발길을 옮겼다. 그곳은 떠나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이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도서관이었다.
편안해지면서도 텁텁해지는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길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유보할 이유도 모두 사라졌다. 그곳 어딘가에 답이 숨어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눈을 크게 뜨고 살피는 순간, 학생들은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에 열중하였고, 연륜이 있는 듯한 어떤 노신사는 서가 앞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발걸음이 멈춰지고 눈은 그분들의 크고 작은 행동에 몰입했다. 속으로 “책이 그렇게 좋은가요? 학문하는 데는 나이 제한이 없는가요? 지식은 백발처럼 하얗게 피는 건가요?”라고 속삭였다. 상대방이 풍기는 아우라에 대한 나의 희망 섞인 하소연이었다.
마치 일곱 색깔 무지개가, 매혹적인 장미가, 자유로운 야생화가 피워내는 아름다움보다도 조용히 공간을 차지한 백발의 인꽃(人花)이 더욱 빛을 발하는 듯했다.
“나도 이곳에서 꽃이 될 수 있을까?
인생은 무엇을 찾는가 에서 시작되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에서 성장하며, 무엇을 했는가에서 매듭이 지어지게 된다. 나의 인생은 학문을 찾는 시작점에 있었다. 그리고 아직 그것을 통해서 성장하거나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는 숙제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앞에 있는 노신사는 그 과정의 정점에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몹시 급해졌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으로 눈을 돌렸다. 진짜 도다이(東大)의 학생과 교수들 틈에서 가짜 학생이 숨소리를 죽이며 희망을 찾았다.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듯이 책들은 낚아채 갈 주인을 기다리며 옹기종기 속앓이를 했고, 나는 초연의 심정으로 그것을 간절하게 응시했다. 자그만 유혹에도, 끌림에도 금방 넘어갈 것 같았고 빠져들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우연은 필연이고, 누군가에게 필연은 우연이다. 도서관의 주인이 된 노신사와 책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이 순간과 공간은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나에게 우연한 필연이고 필연적인 우연이라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
나는 한 구석에 나란히 꽂혀있는 책으로 눈이 갔다. 모두 동일한 저자가 쓴 책들이었다. 학문의 경지는 알 수 없으면서도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은 분명 ‘낯설움’이었고 동시에 ‘새로움’이었다. 그것은 사상의 혼란에 빠졌던 자신, 그리고 인생과 삶이 흔들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구세주와 같은 신선함을 주었다.
그것은 바래버렸다고 생각했던 사상의 새로운 방향과 흐름을 암시했다. 나는 새로운 만남에 고개를 숙여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했다. 한참 동안 내용에 빠져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다. 당분간은 이 책 저자의 제자가 아니라 이 책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임이 없었다. 우연히 이 대학의 정문에서 이 대학을 선택했지만, 이번에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이 대학에서 스승을 찾아야 했다.
책장에 진열된 스승이 된 책을 제자가 모두 손에 넣었다. 책에 인생을 거는 모험을 하면서도 한없이 짜릿했다. 온 마음으로 도박하는 것이 행복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만약 인생에서 올인할 경우가 있다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손에 든 책을 보고 간절히 “센세이(先生), 잘 부탁합니다. 삶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충심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시원하게 말했다. 학문에 대한 다짐인지, 책의 저자에 대한 바람 인지 헷갈리고 있었지만 진심을 내보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나는 잠시 처음으로 도쿄에서 선택받기보다는 선택하는 사치를 누렸다. 마음속에서는 있는 숙제가 잘 풀리고 있는 것인지, 안 풀리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 나의 선택은 태풍이 갑자기 거세게 밀려와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는 단비와 같이 달콤했고 유쾌했다.
그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무게를 강하게 느꼈다. 무거운 것은 무거운 만큼만 지고, 가벼운 것이라도 그만큼만 지면 된다는 체념론이 둔갑한 낙관론이 나를 휘어 감았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져 망치거나 가벼운 것을 무겁게 져 망치고 싶지 않았다.
“삶의 무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무게만큼만 잘 지면 되는 것”이라고 속삭였지만, 앞으로 끊임없이 밀려올 학문의 무게가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 의심이 갔기 때문이고, 낮지만 깨지지 않는 초심으로 강하게 버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자신이 선택하면서 생긴 무게만큼만 잘 지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믿고 그 무게를 가늠하면서 님이 되어버린 책의 저자에 대한 그리움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노트에 써 내려갔다.
사사곡(思師曲)
님을 알지 못합니다
님을 알고 싶습니다
해가 포효하듯 벌겋게 알고 싶습니다
달이 요동치듯 설레게 알고 싶습니다
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님을 뵙고 싶습니다.
햇빛처럼 뜨겁게 뵙고 싶습니다
달빛처럼 살갑게 뵙고 싶습니다
님을 찾은 적이 없습니다
님을 찾고 싶습니다
해처럼 밝게 찾고 싶습니다
달처럼 은은하게 찾고 싶습니다
님과 동행한 적이 없습니다
님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햇빛에 젖은 낯처럼 동행하고 싶습니다
달빛에 취한 밤처럼 동행하고 싶습니다
소원은 이루어져야 맛이 난다. 나의 소원은 지금처럼 도다이의 정문으로 들어가 내부인이 되어 당당하게 생활하며 의미가 있는 흔적을 남기고 아카몬(赤門)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 출발점은 사사곡(思師曲)으로 확인된 짝사랑을 진하게 하는 것이었다.
거만한 캠퍼스에 유혹당하면서, 도서관에서 신선하게 만난 노신사를 보면서, 새로움으로 타격을 준 책들에 홀리면서 새로운 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현재의 마음 그대로 직진을 하면 행복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 심장부인 도쿄에서도 그러했듯이 도다이에서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딘가에 떨어트린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는 결심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을 통해서 만난 그분이 가는 학문의 길에 동행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쌓여가는 기다림을 소각하기 위해 책 속의 글과 대화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움’은 무엇일까? 새로움의 시대는? 새로움의 미래는? 등에 대한 ‘문(問)’을 일방적으로 그분에게 보내는 문통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사곡과 짝사랑으로 시작된 길 찾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 수없이 부딪히면서 ‘답(答)’이 없는 문통을 이어갔다. 나의 간절함은 마치 넓은 하늘 속으로 흔적 없이 흡수되는 한 줌의 공기와 같았고, 세찬 바람에 꼬꾸라지는 작은 숨소리에 불과했고, 거세게 낙하하는 소낙비로 지워지는 눈물 자국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시작은 이미 고사 상태에 빠졌다. 사람이 몹시 그리웠고, 님이 한없이 야속했다. 슬픔에 빠진 내가 슬픔에 빠진 나를 위로하던 어느 날 오후 연락이 왔다. “연구실로 와” 그 한마디였다. 거기에는 대화도, 쉼표도, 질문도, 대답도 없었다. 오로지 시작과 마침표가 붙어있는 전언뿐이었다.
“책 속의 님이 ‘연구실로 와’라고 합니다. 매우 간결하게 긴 여정을 시작하고 싶은 님이었습니다. 희망의 시작과 절망의 끝을 알고 있는 님이었습니다. 칼날 위에서 곡예를 해도 웃으며 동행하고 싶은 님이었습니다. 따듯함과 냉혹함을 가진 님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는 님이었습니다.”
‘연구실로 와’라는 이끌림에 연구실 앞에 있었다. 잠시 망설임에 기대어 자신감이 누락된 노크를 했다. 책으로 둘러싸인 구석에서 선생님이 고개를 들고 빼꼼히 나를 봤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서관에서 본 그 노신사였다.
첫 만남에서는 살얼음을 걷는 나와 살얼음을 만든 선생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기울어진 운동장만 있었다. 칼칼한 쇳소리 같은 짧은 ‘문’에 모랫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듯한 ‘답’이 있었다.
“학문하는 이유는?”
“예...”
이 짧은 ‘문답’이 사사곡에서 시작된 짝사랑의 결말이었다. 거기에는 고마움이나 그리움을 표현할 간극이나 찰나도 없었다.
짧은 만남으로 정문 앞에 서게 되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정문을 통과해야 하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의 매듭은 종결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이 아프게 밀려왔다. 시작이 완전하게 사라지도록 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이제 겨우 캠퍼스에 깔려있던 고요한 침묵은 격렬한 경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사라진 딱딱함은 뜨거운 마음으로 굳어진 열정이었다. 덥수룩한 더벅머리 학생은 이곳에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이었다. 날카로운 눈길은 여기에만 있는 도가니 같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행스럽게 정문을 통과하는 행운을 얻었다. 나에게 이곳은 감성의 유무를 느끼지 못해야 설 수 있는 곳이었다. 미추를 등한시해야 정상으로 향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자존심이 최대의 장애가 되는 곳이었다. 빨간 마음으로 경쟁해야 하는 곳이었다. 인간다움이 무너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다. 버거움을 느껴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곳이었다.
나는 비로소 까다롭게 굴었던 정문, 많은 질문을 쏟아냈던 나무들, 두려움에 기죽은 발길을 응원했던 철학의 길, 나가는 길을 아름답게 축복했던 아카몬, 지식인의 생각과 열정으로 물들여진 소문난 역사, 백발로 맞이한 어느 노신사의 유혹, 유난히도 날카로운 스승의 목소리 모두가 캠퍼스의 사랑이었다. 나도 이제 막 캠퍼스 사랑을 시작했다.
continued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