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구멍이 난 배와 산으로 가는 배

by 청사


나는 나에게 둘도 없는 선물을 줬다. 그것은 스스로 명명해 간직해 온 ‘경쟁대학, 자부심 대학, 거만한 대학’이었다. 그런 살벌한 세계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과 필연으로 다가온 지금의 상황은 그 어느 것과도 그 어느 때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존재였다.

이제야 비로소 쌓여있던 역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단아하게 서있는 야스다 강당(安田講堂)이었다. 정문에서 똑바로 가도록 안내를 하는 건물이었다. 일본산업혁명의 선두에 서서 성공한 재벌이 익명의 조건으로 기부하여 건축됐다.

건물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문에 착안하여 설계하였고, 관동대지진으로 일시 중지되었다가 1925년 준공되었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신선한 마음이나 고답적인 마음이나 차별하지 않고 벽 속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1988년 야스다 기업이 강당이 입은 외상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으로 보수했다.

관심을 끈 것은 벽에 깊이 남아있는 상처들이었다. 이곳은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을 하던 1960년 후반경 청년 세대가 권위적인 기성세대를 상대로 저항한 도다이 분쟁(東大紛争)을 온몸으로 담아냈던 곳으로 민주화의 성지로 여겼다.

눈앞에서 펼쳐져 야릇하게 웃고 있는 벽돌의 사연이 알고 싶었다. 1980년대 대학의 한 모퉁이에서 민주화를 위해 저항했던 나로서는 이곳의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어 어떻게 결말을 맺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내 몸속에 운동 기질이 남아 용솟음치거나 분출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곳의 상처는 질풍노도를 거치면서 생긴 자신의 상처와 오버랩되는 것 같았다. 치유해도 치유되지 않는 아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 시대가 바뀌어도 남는 기억, 시간이 흘러도 흘러가지 않은 잔해, 버리려 해도 되돌아오는 메아리 그것이 바로 민주화가 남긴 영원한 유산이었다.

역사는 흘러가면 과거로 남아 기록되거나 사라진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강당의 상처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항상 현재로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벽의 상처로 남긴 청년들의 민주화 소리는 내가 냈던 신음과 매우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곳저곳 상처를 살폈다. 어딘가에 그 흔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강당의 한 모퉁이에 당시 학생이었을 선생의 이름이 아주 작게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다. 첫 대면에서 인상적이었던 선생의 쇳소리가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직감했다.

시대적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젊음을 불살랐고, 무엇인가를 위해 몸부림쳤을 선생의 모습이 고스란히 낙서로 상처 난 벽돌과 동행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어떻게 이름이 새겨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영광의 상처’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여전히 나를 아프게 했던 민주화운동이기에, 선생에게 상처를 냈을지도 모를 민주화운동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선생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애용하던 도서관의 그 자리에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벽돌에 얽힌 사연을 직접 듣고 싶어 돌연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마르크스주의자였습니까?”

“...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민주주의자라고 하면 좋지 않을까?”

“자네는 마르크스주의자인가?”

“예. 그 사상을 신봉하였고, 그 연장선에서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선생은 민주주의자로서 ‘민주화’를 위해서 학생운동을 했고, 나도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였고, ‘민주화’를 위해서 학생운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비판 사상에 기초해서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 운동 과정과 결과가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선생은 자신이 체험한 도다이 분쟁(東大分爭)에 대해서 회상에 잠겼다. 도다이 분쟁은 의학부 학생의 인턴제도 폐지 요구와 처우개선, 대학 운영의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학교 측과 충돌하면서 시작되었다. 의학부 학생들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무기한 파업을 단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직원 간의 불상사가 일어나면서 대학 당국은 의대생에게 징계를 내렸다. 그중 한 학생이 오인되어 징계받았다는 의혹이 생기면서 점화된 대학분쟁이 폭발하게 되었다.

학교 당국이 징계 철회를 거부하자 의학부 학생들의 주장에 크게 동조를 했던 급진파 학생들은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다.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 총장은 경시청 기동대의 출동을 요청해 점거한 학생의 강제퇴거에 나섰다. 강제퇴거에 반대하기 위해 법학부를 제외한 학부가 참여하여 하루 파업을 단행하였다.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대치국면이 지속되면서 안전모와 마스크를 쓰고, 각목을 드는 적극적인 대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야스다 강당을 두고 벌이는 기동대와 학생 간의 싸움에서 각목, 최루탄, 물대포 등이 사용되어 아수라장이 되었고 강도가 더해지면서 강당의 벽이 깨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학생들의 싸움은 권위적 권력행사에 대한 저항이었고, 학생들의 함성은 기득권이나 불합리한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민주화의 소리였다. 그 과정에서 도다이 분쟁 참여자들은 변혁의 새로운 주체로 탄생했던 것이다. 도다이 급진파 학생 중의 한 사람이었던 선생은 당시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는 데 참가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외부의 극좌익세력이 참가하면서 새로운 과격한 단체가 결성되었다. 이후 강력해진 과격한 단체와 당국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도다이 학부자치회는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과격한 단체는 결사적으로 투쟁을 하는 동시에 ‘도다이 해체’라는 더욱 새로운 표적물을 들고 나왔다.

그들은 도다이가 기득권을 유지하고, 기회를 독점하는 극단적인 기관으로 규정하였다. 그런 도다이를 유지하는 것은 특권적인 공동체를 옹호하여 편익을 도모하는 사악한 행위이며, 인간차별과 인권유린에 해당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권위적으로 사익을 독점해 온 도다이 권력 클러스터를 없애기 위해 도다이를 해체하는 것이 공익추구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미래사회는 전통적인 가치와 권위로부터 과감하게 해방되어야 하기 때문에 도다이 해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선생은 중학교 수학여행 코스로 도다이를 견학했을 때, 정문을 보면서 반드시 이곳으로 들어와 아카몬을 보면서 웃으며 나갈 것이라고 다짐을 했었다. 이후 선생은 도다이 정문을 통해서 들어와 비판 문학을 지향하면서 개혁과 민주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도다이의 민주화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그동안 대학개혁, 민주화, 반권위 등에 크게 동조했지만, 과격한 단체가 주도하는 운동이 대학의 민주화에서 도다이 해체로 이행한 것에 대해서 강한 이질감을 가졌고, 큰 충격과 함께 반감을 갖게 되었다.

더욱이 도다이를 해체하는 것이 공익이라는 주장에는 대학의 미래와 희망이 없었고, 대학의 민주화를 가장한 또 다른 특권층 만들기이며, 그것을 위한 노림수에 불과하며, 공익을 위장한 사익이 내재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그리고 파괴적인 투쟁방식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현상이라고 인식했다. 학생운동은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한복판에서 허덕이는 민주화의 방향성을 잡기 위한 힘이지 결코 대학 존재 자체를 붕괴시키는 파괴적 힘은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했다.

그런 이유로 대학개혁과 민주화라는 명분에서 크게 벗어난 파괴적 투쟁방식과 왜곡된 목표에 근거한 도다이 해체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를 하였다. 더욱이 미래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현장을 파괴하는 행위를 용인할 수 없었다.

선생은 도다이 지킴이가 되기로 결심하여 행동하기 시작했다. 도다이 지킴이가 된 선생의 주도로 그동안 분쟁의 씨앗이 됐던 학생징계 철회, 자치활동의 자유화, 대학개혁과 민주화 등에 대한 합의가 성사되었다.

이후 많은 민주화에 목말라 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파업과 투쟁을 중지하고 학교생활로 돌아갔다. 과격한 단체의 힘이 약화되었고, 동시에 극렬활동가가 검거되면서 도다이 분쟁은 막을 내렸다. 분쟁이 종식된 후에 대학개혁과 민주화의 과제는 도다이의 바람직한 존재방식과 비전적 역할을 강조하는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지식은 신념을 낳기도 하고 변절을 낳기도 한다. 지식은 분쟁을 낳기도 하고 타협을 낳기도 한다. 지식은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 지식은 방향성을 갖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지식은 희망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하다. 선생의 지식은 그렇게 신념, 변절, 분쟁, 타협, 열정, 냉정, 희망, 절망 등과 같은 칼날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이정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선생은 사익과 공익,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보수화와 민주화, 도다이 해체와 존치, 현실과 미래, 자신과 타인 등과 같은 이중 구도에서 파괴 사상과 새로운 사상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을 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선생은 도다이 분쟁을 계기로 급진적 파괴와 붕괴를 조장하는 사상을 포기하고 점진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온전한 민주화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선생은 말을 마치고 나의 상황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자네가 참가한 학생운동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네. 아마도... 군부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정권을 탄생시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사회를 구축하는 데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내에서의 민주화운동은 어떠했는가?”

“거의 매일 군부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집회와 과격한 투쟁을 하여 대학교육은 고사상태의 위기에 빠졌지요.”

“일시적으로 우리도 그랬네, 학생들의 호응은?”

“처음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으나, 운동 세력이 독단적이어서 외면받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지요. 더욱이 운동세력이 좌지우지하면서 민주화가 누락된 운동권 세력화를 추구했다는 생각에 이질감이 생겼습니다.”

“민주주의 도입에 기여를 했는가?”

“저항에 부딪힌 군사정권은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뽑도록 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정권이 탄생했는가?”

“민주화 세력 사이에 민주화운동의 원조를 둘러싸고 분파가 생겨 민주주의적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군사정권이 탄생했지요. 그 이후 민주정권을 탄생시켰지만 권력을 독점하는 기득권자로 행세를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정권이 교체된 것은 민주화운동의 결실이라고 생각하네.”

“그 일부는 민주화운동을 훈장으로 알고, 여전히 자신들만이 옳다고 하는...”

선생이 참여한 민주화운동과 내가 참여한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의 활성화에 긍정적인 역할과 기능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남겼다. 민주화운동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목적을 두었지만, 자칭 민주세력 일부는 정치적 욕망과 연결시키 자기중심적 의지를 무리하게 내세워 비민주주의의 한 주체가 되었던 것이다.

도다이 분쟁은 결과적으로 권위적인 뱃사공이 민주적으로 배를 운행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배의 존재를 없애기 위해 구멍을 뚫어 난파시키려 한 딜레마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은 침몰하는 배와 동행할 수 없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내가 참여한 민주화운동은 독재하는 뱃사공을 민주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공했다는 데 성공했지만, 스스로 뱃사공이 되어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하여 배를 산으로 가게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산으로 가는 배와 동행할 수 없어 새로운 길을 찾았던 것이다.

선생은 도다이 분쟁을 통해서 도다이 해체 세력에 대항하는 도다이 지킴이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길’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민주화를 가장한 또 다른 권위 세력’이 되어 도다이 해체에 가담했을 것이고, 선생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군부 권력의 대체를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민주화를 가장한 또 다른 독재세력으로 등장하는데 반기를 들지 않았다면, 나는 그 행로에서 결코 ‘새로운 길’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새로운 독재 세력화’에 동조했을 것이고, 선생을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60년대 선생이 추구했던 민주화와 30년 후 자신이 추구했던 민주화는 ‘새로운 길’을 찾는데 일맥상통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찾기 위한 운동으로 구축한 민주화의 발판을 내어줬어야 했다는 점, 원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비워줬어야 했다는 점에서도 일치하는 듯했다.

민주주의는 사상으로서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쓸모가 없어졌거나 헌책방의 한구석에서 잠자지 않고 있어 이 시대를 움직이는 사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민주주의와 민주화운동은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으며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이 시대의 불문율이라면 잘못된 판단일까?


continued story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14화 님이 그리워 쓰는 비밀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