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피워내는 따듯한 온기가 모이는 곳이었다. 혼란한 정신과 경직된 신체가 스스로 녹아내려 깔끔해지는 곳이었다. 어지러운 세상을 비추고자 광기를 부렸던 햇살도, 힘이 빠져 하염없이 뛰어내리는 빗물도 부드럽게 받아내는 곳이었다. 파랗게 돋아난 새싹이 노랗게 익어가는 사계의 변덕도 기쁘게 안고 가는 곳이었다.
거기에서는 누군가에게 달려가 안기거나 고백을 해도 될 것 같았고, 누군가가 데려가 줘도 고마워할 것 같았다. 그러기에 꽃향기처럼 부드럽고 유혹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야 어울렸고,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는 한가로움이 있어야 어울렸고, 한 모퉁이에서 죽고 싶을 정도의 지독한 외로움이 있어야 어울렸다.
이곳에는 언제나 함께 건너고 싶은 돌다리, 야한 마음을 흘려보내는 잔잔한 물줄기, 거친 미소를 머금은 야생화, 겹겹이 서로를 안고 있는 나무, 떼 지어 군무하는 금붕어, 자유롭게 올라가야 할 것 같은 돌계단, 유유자적 물질하는 거북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돌부리가 엉켜 있는 곳이었다.
물안개가 안개가 되고, 금붕어도 붕어가 되고, 검정물방개도 방개가 되고, 그림자도 어둠이 되고, 짝사랑도 사랑이 되는 소박함이 물 멍으로 살아나기도 했다. 본류에서 약간 비켜 간 죄로 물안개, 금붕어, 검정물방개, 그림자, 짝사랑이 되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이곳은 신지이케(心字池)라고 부르는 연못이었다. 마에다가(前田家)가 에도시대 쇼군(將軍)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이곳에 연못을 조성해서 쇼군 이에미쓰(徳川3代将軍家光)를 맞이한 곳이었다. 연못의 형태가 ‘心’ 자를 형성하고 있어 더욱 유명해졌다. 군신 간에 충(忠)으로 하나가 되고, 사람 간에는 사(思)로 하나가 되는 듯한 곳이었다.
이후 신지이케는 소설 《산시로》(三四郎)에서 오카와 산시로(小川三四郎)와 사토미 미네코(里見美禰子)가 만난 곳이어서 산시로 연못(三四郎池)으로도 불렸다. 그들의 사랑은 만나면서도 그리워하는 짝사랑이었고, 홀로 되어 애가 타는 외톨이 사랑이었다. 좋아해도 가까워질 수 없고 놓아도 놓지 못하며, 떠나도 떠나지 못하는 상태로 서로를 그리워하는 별리 사랑이었다.
산시로 연못은 정숙하고 부드러운 여성을 닮았고, 성깔 있게 절정에 다다른 거친 남자를 닮았다. 가끔가다 남성을 닮은 햇빛과 여인을 닮은 물빛으로 곱게 차려지는 일곱 색깔 무지개가 물 꽃으로 피어났다. 언제가 홀연히 나타날 것만 같은 님을 기다리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가끔 속이 뒤집혀 무엇인가 그리우면 와야 했다. 외로움이 솟구쳐 오르면 물속을 거닐고 있는 홀로 된 노란 비단잉어의 물장구에 맞추면 되었다. 빈 마음을 채우고 싶으며 물 위에 비췬 나무 그림자를 보면 됐고, 걱정거리가 있으면 조용히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섞어 날려버리면 됐다. 행복이 넘치면 돌부리의 기운에 의지하여 조용히 앉아 흥을 내면 됐다.
매일 먹어도 때가 되면 허기가 지듯이 매일 들러도 돌아서면 그리워지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소중하고, 혼자 가만히 있어도, 자신을 껴안고 있어도, 알지 못하는 사람과 의미 없이 마주쳐도, 부딪침이 없어도 좋은 곳이었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아는 척 가만히 있으면 됐고, 가면 가는 대로 꽁무니를 향해 ‘잘 가시라’고 인사를 하면 됐다. 서먹함과 익숙함이 하나가 되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가끔 사랑에 대한 갈증이 생기면, 연못을 맴돌며 서성이는 자신의 얼굴을 물 위에 진하게 그리곤 했다. 산시로 연못과 함께 하는 익숙한 얼굴을 볼 때면 “또 만났군요. 당신을 좋아해도 될까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주문을 외우면 됐다. 연못과의 사랑은, 자신과의 사랑은 그렇게 이곳에서 존재했다.
언제나 일편단심 하나로 있는 연못과 자신이 내게 있는 전부였다. 연못이 있어야 볼 수 있는 자신을 닮은 물그림자를 보며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우리 사이에는 눈치를 안 보고 고백을 해도 됐다. 날카로운 거절이 없어 좋았고, 항상 부드러울 메아리로 오는데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 좋았다.
그것으로 부족할 때면 가끔 스쳐 간 사람을 그렸다 지웠다 하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번개처럼 왔다가 물속의 그림자로 길게 남은 여인이 생겼다. 아름다운 꽃을 떨군 것도 아니었고, 향기를 듬뿍 뿌리고 간 것도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여운과 함께 뚜렷한 자태를 연못 속의 물그림자로 띄우고 가버린 사람이었다.
아무런 인연이 없는 듯이 사뿐히 사라졌지만 산시로 연못을 갈 때마다 그 모습은 항상 그 자리에 진하게 남아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물그림자와의 짝사랑은 잔잔한 물살로도 깨져버리곤 했지만 언제나 그 자리로 돌아왔다. 물그림자로 살아가는 짜릿한 여인이 있어 이곳을 찾아와야 했다. 다시는 그런 스침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밤낯처럼 찾아왔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었고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었다. 그녀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부정하고 싶었고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나와 함께 긍정적인 부정과 인정 사이에 존재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에게 했던 ‘사랑합니다.’가 물 위에 그려진 그녀에게로 향했다.
“몹시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그리움이 그녀에게 훅 들어간 것이기에 자신만이 알고 앓는 홀로 하는 사랑이었다. 생각하거나 그릴 수는 있으나 품을 수 없는 그런 허깨비 사랑이었다. 아주 잠깐 오는 것이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무모한 사랑이었다. 마음껏 사랑하고 싶지만 그녀는 알지 못하는 짝사랑이었다.
그리움으로 어두워진 마음을 깨울 듯한 화창한 봄기운이 기지개를 펴면서 새 학기 제미(ゼミ:seminar)가 시작되었다. 선생의 제자가 된 대학원생들이 강의실에서 조우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이른 시간에 갔다. 이윽고 선후배들이 속속 자리에 앉으면서 짧은 인사의 눈빛이 오고 갔다.
선생의 강의가 무르익어 갈 때쯤 소리 없이 한 사람이 들어왔다. 눈에 들어오기에 힐끔 봤다. 그러나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얼굴이 아니라 확실하게 봤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 사람이 틀림없었다.
산시로 연못에서 한순간 스치고 간 후부터 기억 속에서 그리고 그렸던 그 여인이었다. 물속에서 물그림자로 살고 있는 그 여인이었다. 마치 물속에서 있어야 할 물그림자가 야생화처럼 생생하게 피어나 내앞에 있었다. 눈길은 그녀로부터 멀어지려고 허공을 헤맸지만, 요란하게 뛰고 있는 가슴은 그녀를 외면하지 못했다. 외면하고 싶은 눈빛과 머물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엇박자가 되어 몸체를 흔들었다.
다행스럽게 마음속에 어떤 여인이 들어오면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울림에 대해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로지 자신만이 그 황당하고 가슴 벅찬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빠져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 자리에는 그 이외의 아무런 소동도 재잘거림도 없었다. 그녀도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강의가 잠시 휴식 시간에 들어가면 틈을 이용해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했다. 이윽고 그녀는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치조 마리(一條茉莉)’라고 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땅으로 떨어져 사라지기 전에, 다른 이들의 귀에 들어가 희석되기 전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숙명처럼 다가왔다.
머리와 가슴으로 그녀의 이름을 정확하게 반복적으로 속삭였다.
“이치조 마리, 이치조 마리”
한 글자 한 글자 외우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순간적으로 생긴 혼란이 제어되지 않는 것은 좋아하고 있다는 징표라는 것을 알았다. 속마음이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초조함은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조그맣게 일어나는 파장이 기뻐하는 설렘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연히 산시로 연못의 마주침이 멀리 날아가는 바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감정이 뭉쳐져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당신에게 마음을 쌓아가도 될까요?’라고 묻고 싶었다. 그 모든 것은 그녀가 있어 생긴 소동이지만 그녀의 책임이 아니었다. 마치 어느 작가가 쓰는 소설의 한 장면이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그것은 실체가 아닌 허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만남이 도쿄에서 생길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이 거짓 없이 똑바로 전달되어 뒤틀리지 않게 반향 하는 교류가 되기를 바랐다. 저절로 흘러가는 이 눈빛이 엇갈리지 않기를 기도했다. 산시로 연못에서 시작된 물보라 사랑이 현실이 되기를, 영원히 깨지지 않는 물그림자로 남아있기를 희망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부끄럽지 않은 심정으로 산시로 사랑에 불을 댕겼다. 타들어가는 마음을 끌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마음껏 태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어도 매번 다시 시작해야 될 것 같다는 것도 알았다. 내게 산시로 사랑은 오늘의 시작이 내일의 시작으로 반복되어도 버텨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이치조 마리는 호수와 같은 맑고 촉촉한 눈을 가졌다. 일본열도처럼 길게 내리 뻗은 코를 가졌다. 입술은 꼭 닮은 선남선녀가 사랑을 나누는 한 쌍처럼 요염하게 자리를 잡았다. 머리칼은 잘 다듬어진 정원수처럼 다소곳했다. 이목구비는 날카로운 칼로 정성을 들여 조각한 작품처럼 보였다. 서구적인 풍을 담고 있어 판단할 틈도 없이 미인이라는 단어가 아름다운 위협으로 다가왔다.
가냘픈 목덜미는 상하를 조화롭게 연결했다. 어깨는 세파의 흐름을 적절하게 지고 갈 수 있을 만큼 버티고 있었다. 가슴은 조용하게 사뿐히 한숨을 쉬고 넘을 수 있는 언덕처럼 아담함과 부끄럼을 안고 있었다. 허리와 다리는 잠자리처럼 가냘프고 아름답게 온몸을 떠받치고 있었다. 몸체는 즉시 탐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완전한 도시풍의 여자였다. 빼어난 이국적인 미모와 눈을 빼앗아버리는 몸매와 귀를 기울이게 하는 화력을 가졌다. 그 누구도 거부하거나 부인할 수 없는 매력을 가졌기에 항상 화두의 중심에 서있는 여성이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발산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침묵하는 흑백의 여성이었다. 특히 영어, 독일어, 한국어에 능통하였고, 많은 재능을 갖고 있는 재주꾼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면에서부터 외면에 이르기까지 있는 모든 것을 향유하는 자유방임주의자였다. 불합리한 규칙을 파괴하고 새롭게 만들어내는데 익숙한 제도 파괴자이고 개혁가였다. 안갯속에 있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이는 것을 소중히 하는 실증주의자였다. 과거의 사실이나 미래의 허상보다는 현실적 실상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였다.
특히 그녀는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생기는 파열음을 촘촘히 분석하고 대응하는 완벽주의자였다. 민주주의가 부르짖는 자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극히 위험한 도구로도 사용되어 때로는 독이 된다고 인식했다. 민주주의는 항상 민(民)에게 약이 되는 존재이기를 바랐다.
잘 속지 않을 만큼의 냉정함, 상대방을 대화로 제압하는 언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세워지는 논리, 버들가지처럼 살랑거리는 다정함으로 그녀의 비밀을 묻고 있었다. 자신이 자란 환경과 가족에 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듯했다.
그녀가 선생의 제자가 된 것은 선생이 추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매력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올바른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몰두했다. 평소에 그녀는 일본형 민주주의에 대해서 회의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형 민주주의에 대해서 회의를 가진 자신과 매우 흡사한 상황이었다.
선생의 제미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연구하여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녀는 한국형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나는 일본형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공동연구를 하기로 하였다. 다행스럽게 공동연구를 통해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우리는 한일 간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 민족주의를 초극할 수 있는 사상을 민주주의로 규정하였다. 한일관계에 존재하는 문제가 민주주의의 조락이나 왜곡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며, 미래지향적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했다.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온전한 민주주의’에서 찾았다.
이치조 마리와 나는 민주주의 정체와 실체에 대해서 몰두하면서도 서로의 정체와 실체를 탐색하는 시간도 양념처럼 곁들여졌다. 우리는 각자가 갖고 있는 호흡의 길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가 표현하고 있는 감정의 색깔과 농도를 느낄 수 있었다. 괴변이나 주장을 들어줄 수 있었고, 질문에 답을 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민주주의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증거를 찾을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하고 풍부한 자료가 있는 도서관 서고로 나를 끌고 갔다. 오래된 도서가 있는 서고에는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쌓였고, 철 지난 냄새들이 코를 자극했다. 그녀는 서고 냄새에 푹 빠져있었다. 인기척이 없었고 반기는 것은 책뿐이었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치조 마리가 유일했다.
찾아올 연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인고의 시간을 보내다 바래버린 초췌한 도서들이 외롭지 않게 나란히 서로에게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책들이 갖고 있는 사연을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자료를 찾으면서 책 사이로 가끔 마주치는 눈빛이, 때로는 투박하게 때로는 사푼사푼 다가오는 발소리가 빈 공간과 내 마음을 채웠다.
분류표가 이끄는 대로 가다 보니 불투명한 만남과 이별이 반복됐다. 어느 순간에는 저편으로 사라지는 그녀가 갑자기 그리워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에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녀가 더욱 그리웠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내는 소리를 귓가에 담았고, 그녀가 가진 자태를 눈에 새겼다.
책들이 만들어낸 공간은 사랑스러운 공간이 되어갔다. 이따금 마주치는 눈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고, 가끔 부딪치는 스침이 부드러운 기운을 만들어냈다. 서고 속에 있는 마리는 아주 오랜 세월을 같이 한 연인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름다운 여인 그대로였지만 야한 냄새가 나지 않는 여인이었다. 고서들이 내뿜는 진한 냄새를 가진 여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이성과 감성이 그녀 속으로 파고들 틈이 없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고서들이 그녀가 사랑하는 대상이었고, 사랑의 보호막으로 있었다. 나를 위한 공간이 없다는 인식과 빈틈없이 진행되는 이 상황에 질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살며시 그녀를 훔치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다가도 속마음이 읽히지 않도록 거북이 목처럼 끌어들이는 데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고요함 속에서 이따금 들리는 그녀의 발소리는 ‘빨리 쫓아오라’는 소리로 들렸고, 새근거리는 숨소리는 무엇인가를 재촉하는 듯한 신호로 들렸다. 책을 집었다 다시 꼽는 행동은 ‘빨리 안았다가 되돌려 놓으라’는 행위로 착각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행방을 잃고 허공을 떠돌 때면 잡아줘야 한다고 오인했다. 그녀가 길게 빚어내는 눈빛은 내가 만들어낸 잘못된 인식을 태워주는 듯했다.
그녀의 순수함과 나의 불량함이 달리면서 유지하는 평행선은 이따금 마주치는 친근감으로 상쇄되는 듯했다. 이 접점에서 생기는 친근감은 너무 빨리 사라져 잡거나 멈출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나만 알고 그녀는 알지 못했기에 공유할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시간과 공간이 모두 그녀의 것이 되었다. 순수함과 불량함이 평행선을 유지하는데 지친 시점에서 나는 가지고 온 책을 땅바닥에 놓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도 잠시 쉬어가자며 옆에 앉았다. 행복한 순간이었지만, 숨겨왔던 마음과 조용히 내뱉는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면 나는 그녀를 보고 겸연쩍게 웃었다. 긴장이 담긴 모습을 해결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마리는 승패가 나지 않는 숨 막히는 감정 공간을 깨기라고 하듯이 몸을 내게로 살며시 기댔다. 그녀답게 매우 자신 있고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이내 그녀가 뿜어내는 향기가 신선하게 맴돌았다. 그렇게 달콤한 향기를 맡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로 기울어지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몰리고 있었다.
그녀는 우연히 겹쳐진 손을 떼지 않았다.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잡은 손만을 뚫어지게 봤다. 망설임이 길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그녀의 입술이 돌진했다. 피할 힘도 피할 용기도 없었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가장 잘한 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바닥에 누워 포개진 몸짓이 만들어내는 향연에 긴장과 짜릿함을 느꼈다. 흔들리는 설렘은 거칠고 낯선 호흡으로 이어졌고, 여러 곳으로 분산되고 있던 몸체의 무게는 사랑의 눌림으로 다가왔다. ‘사랑하고 싶다. 좋아하고 싶다.’는 급한 마음에 그녀의 가슴을 강하게 잡고 말았다.
“바보야..., 이렇게!”라는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 속삭임이 들렸다. 용기를 내어 수정하는 재치를 보였다.
이윽고 은밀한 곳으로 마음이 옮겨가는 것을 느꼈다. 내 손은 철통 보안요원으로 기능하고 있는 달라붙은 속옷을 매우 천박하게 다루었다. “바보야..., 이렇게?”라고 다시 바보에게 수정을 요구했다.
그녀는 침범하고 있는 낯선 행인을 숨김없이 받아들였다. 나의 천박함은 그녀의 너그러움으로 승화됐다. 그녀의 숭고함은 나의 허물을 덮고 있었다. 그녀는 숭고함과 천박함의 경계를 없애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의 접촉이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으로 인식했고, 절대사랑으로 생각했다.
“사랑은 천박하고 숭고한 것이었다. 사랑은 허물어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사랑은 항상 풍족하고 부족한 것이었다. 사랑은 동행하고 갈라지는 것이었다. 사랑은 손을 잡고 놓는 것이었다. 사랑은 하나이고 둘이 되는 것이었다. 사랑은 매우 두렵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사랑에는 승패가 없는 것이었다. ”
그녀와 나의 만남은 다행스럽게 접점에 잠시 서있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접점을 지나면 평행선이나 기울어진 선으로 달릴 수 있었다. 접점을 지나면 점점 멀어질 수 있는 운명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와의 사랑은 옳아도 옳지 않아도,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접점에 있어도 있지 않아도 항상 흔들림 속에서 찾아가야 하는 그런 것으로 다가왔다. 마치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애증의 평행선을 걷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형상과도 같았다.
그녀와 나는 도서관에서 형성된 접점에 대해서 이견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접점을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데 확신이 없었다. 그것은 현재 내가 갖고 있는 포용력을 능가하는 사람이어서 생기는 것이었다. 그녀는 좀 더 고도가 있는 곳에서 만나야 할 그런 사람이었다.
마리는 이미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운명론을 감지하였다. 그녀는 그런 생각에 일침을 가하며 긍정적인 운명론을 설파했다. 그녀는 “너와 나의 만남은 한국과 일본 간의 현안과 같은 관계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앞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해!”라는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그녀와 나와의 접점은 산시로 연못에서 시작된 산시로와 미네코의 접점과 오버랩되고 있는 듯했다. 산시로 연못에서 산시로와 미네코가 만난 현실, 선생의 제자로서 일본인으로서 이치조 마리와 한국인으로서 자신이 만난 현실은 되돌릴 수 없는 숙명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종종 처음 만났던 산시로 연못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처음 만나 그려진 물그림자가, 수없이 반복했던 독백이, 말없이 남겼던 발길이, 서로의 호흡으로 표시했던 사랑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연못이 담고 있는 물처럼 깊고 넓게 고이고 있었다. 산시로 연못은 우리의 현실이었고, 미래였다.
그녀는 “이 학교에 오면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아버지가 데려왔던 산시로 연못”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도다이 출신으로 이곳에 애착을 가져 산시로 연못을 닮은 정원을 만들고 싶어 했었다. 그 이상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면서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다만 이치조 마리는 “산시로 연못에서 시작된 아버지의 사랑이 행방을 잃었듯이 자신의 사랑이 묘연해지는 것을 막고 싶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마리의 말에는 진심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고, 희망도 있었고, 고마움도 있었고, 사랑도 담겨 있었다.
산시로 연못은 잊을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갈라질 수 있으면서도 소중한, 몸과 마음을 다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사랑으로 남는 그런 곳이었다. 산시로 사랑은 절대적 희생으로 양산하는,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매우 아파하는 사이로 남아야 살 수 있는, 상처를 내면서 기억하는 사랑이었다. 우리가 시작한 사랑도 신시로 연못이 갖고 있는 사랑으로 남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그녀의 즐거운 노예가 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하는 말에 대해서 거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할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이유를 말하지 않고 ‘목숨을 요구한다.’고 해도 기꺼이 내어 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와 한 약속은 생명이 다해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녀가 있거나 없거나, 사라지거나 증발하거나 관계없이 맹세한 나만의 약속이었다. 그녀를 받아들이는데 그런 약속을 하는데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것만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녀의 ‘바라기’라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continued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