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삶이 식혀지지 않는 것은 머물고 싶은 곳을 찾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가는 길 위에서 절실하게 걷고 있지만 가야 하는 길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다른 길을 찾지 못하면서 여전히 사상의 종언에 대한 충격과 함께 깊숙이 숨겨져 있던 문학의 길이 꿈틀거렸다.
대학 시절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문학에 깊숙이 빠져 생긴 낡은 흔적이었다. 나쓰메 소세키에서 얻은 영감이 머릿속을 흔들었기 때문에 생긴 희망이기도 했고 병이기도 했다. 그리고 문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상실의 시대》에서 그린 시대성에 공감하면서 생긴 울퉁불퉁한 감성이었다.
나는 깊숙이 자리를 잡았던 문학의 길과 새로운 길로 여겼던 학문의 길에 대해서 다시 물었다. 가는 곳이 어딘지 모르고 걷는 발길은 마치 뇌의 구조가 사라져 아무것도 없는 빈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처지였다. 정처 없이 걷는 발길과 답을 찾지 못하는 머리가 만들어낸 슬픈 이중주는 불투명한 자신을 찾는 발버둥이었을 뿐이다.
멍하니 가다 보니 막다른 골목과 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발길이 도착한 곳이어서 멈춰야만 했다. 더 이상 가는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과 벽에 발길이 멈추었듯이 자신이 가야 할 길도 지금처럼 무엇인가가 멈춰주기를 바랐다. 발길이 멈춘 곳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머물러 있는 숨을 하늘로 뱉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 대학 캠퍼스 정문이었다. ‘자신이 머물 곳이 여기인가?’라는 약간의 기대가 봄기운처럼 느껴졌다. 내가 서 있는 발아래에는 뜨거운 희망을 가졌던 청춘들이 끝없이 디뎌 바래버린 회색빛의 길이 있었다. 그들의 발길과 동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욕심 잃은 탄성만이 나를 위로했다.
잘 나가는 청춘들이 꿈을 실현해 온 이곳과 절망에 빠진 자신의 모습은 분명히 어울리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앞서면서 갈 수 있는 길인지 의심을 했다. 자신이 만든 흔들림의 넓이와 깊이는 매우 낮은 단계에 있는 탈출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길이 너무 밝아 무서워져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고 싶은 그런 절망이 밀려왔다. 너무 좋아 피하고 싶은 그런 공포심이 덮치고 있었다. 한 발은 이 순간이 두려워 김이 빠진 발걸음이었고, 다른 한 발은 내일을 위해 두근거리는 뜨거운 발걸음이었다. 등을 밀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들어가면 나오지 않겠다는 생각에 못 질을 해야 했기에 움직이질 못했다.
그러나 이정표가 있는 길에서 가지 않거나 멈추고 싶은 용기는 없었다. 땅에 붙어있는 양발은 내게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암시했다. 그리고 하늘로 뿜어낸 새하얀 입김이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고 결심하도록 압박했다. 연속된 긴장은 다리의 힘을 풀리게 했다. 그냥 잠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땅바닥에 앉은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다. 더 이상 낮아질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낮은 곳에 있지만 지금 자리를 잡고 있듯이 미래를 위해 이곳에서 뭉개고 싶었다. 입속에서는 자신을 위한 해방공간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눈 속에서는 자신을 위한 자유공간이라고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캠퍼스 앞에 온 것은 무호흡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고, 이곳에 들어가야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낮은 곳에서 뛰는 심장으로 만들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무호흡이라는 혼돈과 낮은 곳에서 뛰는 심장이 만들어낸 결과는 잘 계획된 것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이 부족하면 채워야 한다. 그것은 배움의 이치이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것은 생의 이치이다. 돈이 없으면 벌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의 이치이다. 살고 싶으면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것은 삶의 이치이다. 학문이 있으면 살고 학문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이치였다.
이 시점에서 선택은 의미가 없었다. 지금 앞에 놓인 상황에 대해서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치스러운 결심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나온 감탄사와 같은 것이었다. 오랫동안 찾아왔고 바랬던 희망이었다. 아마도 운명이 있다면 이 순간이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앞에 있는 도다이(東京大學)와 타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국대학이었다는 사실과 유명하고 저명한 위인들을 많이 배출되었다는 사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뭉개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전부였다.
정문은 맘에 들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들어오는 데 매우 까다롭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듯이 매우 간결하고 깔끔했다. 양옆으로는 큰 기둥 2개와 그사이에 작은 기둥 2개가 있었고 3개의 출입문으로 되었다. 서구 문명의 냄새를 풍기고 있어 유럽의 어느 명문가의 대문을 보는 듯했다.
나는 작아지는 자신을 수문장이 숨어서 보고 있는 듯한 뜨거운 눈길을 의식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자신과 그 앞에서 망설이는 자신의 마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매우 낮은 자세와 존재하지 않은 신분으로 이 정문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정문을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캠퍼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있는 듯이 나의 눈길과 발길은 움직였다. 전방을 향해 눈을 들고 살포시 한 발을 딛는 순간 앞에 펼쳐진 것들이 환호하는 듯했다. 봐도 되나 밟아도 괜찮은가 등과 걱정은 한꺼번에 날아갔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학문과 문명의 본거지라는 탈 일본적인 정문과 오랜 세월 동행해 온 거목은 굵고 짧게 침묵으로 인사를 했고, 단정하게 흔드는 풍성한 잎새는 속삭이며 마구 질문을 쏟아냈다. ‘인생이 무엇인지?, 학문이 무엇인지?, 내가 가는 길이 옳은지?, 이곳에서 머물 수 있는지?’ 등 강하고 아픈 질문이었다.
수많은 지성들이 질문을 받으며 걸어갔을 이 길은 근대화의 길이었고, 문명의 길이었고, 학문의 길이었고, 희망의 길이었고, 철학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거목처럼 침묵으로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이 길은 시작의 길, 사색의 길, 기회의 길로 이제 막 엉성한 발 돋음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열정과 욕망으로 주름진 거목은 침묵으로 걷고 있는 발길을 재촉했다. 직선으로 나있는 가로수길을 똑바로 걸어야만 할 것 같았다. 자유롭게 똑바로 걸어가야 어울리는 그런 길이었다. 앞을 보고 가거나 옆을 보고 가도 되었으나 뒷걸음질만 치지 않으면 되는 길이었다.
이 길은 내 길이 될 것이고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는 확신을 찾고 싶었다. 옷맵시와 마음을 다잡고 가야만 하는 길 위에서 있었지만 뒤돌아서면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마음의 불꽃을 소환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대로 들어가 나가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을 잡아주거나 놓아주지 않은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붙들면 되는 것이었다.
철학의 길을 지나니 고요함과 조용함을 가득 담은 여러 길이 나왔다. 이곳저곳을 봐도 모두가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 있었다. 가끔 가랑비처럼 존재감 없어 보이는 더벅머리 학생이 어디론가 급하게 가고 있을 뿐이었다. 능력자들의 웃음도, 잘난 사람들의 재잘거림도, 지적 욕구의 북적거림도 없었으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 거동을 살피고 있는 듯했다.
애타게 찾았던 확신의 근거는 아주 단순한 것에 있었다. 나를 끌어안고 잔잔하게 흐르는 격렬한 따스함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고 싶다는 마음을 폭발시키게 한 매우 거만한 분위기였다. 이미 내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뜨거운 열정은 ‘이곳에서 꽃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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