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흠결이 없는 사랑의 가격

by 청사

삶은 즐거운 희망 고문이다. 희망이 없으면 살 수 없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는 고통과 분노가 따르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진 채 실현하지 못하거나 고통과 분노만 있으면 삶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희망과 반대급부가 동반되지 않는 일방적인 삶은 없다. 좋은 바람이 불어오듯 항상 좋은 삶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부 단장인 모리 히로시(森弘司)는 밥 먹듯이 벌어지는 차별과 이지메(いじめ)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 졸업을 최우선 목표로 했다. 그것만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고, 어머니의 한을 푸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일본인 학생의 눈빛이나 행동이 거슬렸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일본인 스승의 눈빛에 의지하며 고교 시절을 보냈다.

모리 히로시는 어머니가 염원했던 대학에 들어갔다. 유명사립대에 들어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국립대학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국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에 단념했다.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인식했다. 그 과정에서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렸다.

먹구름처럼 자신을 엄습해 온 것은 그런 상황이 대학 이후의 삶이나 생활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일본인처럼 정상적인 회사나 기관에 들어가 보통 사람으로 사는 길은 자신의 인생 지도에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엘리트의 삶은 고사하고라도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도 자신에게는 꿈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성인의 길목에 서서 자신에게 물었다. 대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신의 정체성과 의문투성이가 될 미래에 대해서 문답을 통해서 세밀하게 점검했다. 자신은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했다. 그것은 더욱이 망망대해처럼 멀리 있어 앞이 보이지 않고, 거친 파도가 밀려오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허둥대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아차 하는 순간 자신의 삶과 생명이 한꺼번에 망가질 수 있다는 아찔함을 느꼈다. 그가 갈 수 있는 길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을 제외하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도서관과 고우나 미우나 맞아주는 집뿐이었다.

그가 성장하면서 노출된 한국인이라는 신분은 헤어나기 어려운 늪과 같았다. 일본인과 한국인이라는 잣대는 길이도 깊이도 측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인과 한국인이라는 저울질은 달지 않아도 수치가 나오는 그런 것이었다. 구별의 시작점이 있을 뿐 끝점은 보이지 않았다. 경험하지 않아도 괴로웠고, 예상하지 않아도 아픈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숨이 붙어있는 한 가슴에 안고 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희망과 기대, 평등과 기회, 자유와 정의가 작동하지 않았다. 삶의 사다리는 애당초 차등화되어 있었고, 삶의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었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주어진 권리는 보호되기보다는 방치됐다. 보호되지 못하고 권리가 숨어버린 상황에서 스스로 보호하거나 권리를 찾을 뿐이었다. 새로 유입된 자유주의, 민주주의, 인권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막 자신의 삶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경쟁을 하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삶과 미래 앞에서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지? 자신이 향하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무엇일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은 해야 할지? 에 대한 답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던 ‘돈’으로 귀착되었다.

모리 히로시는 대학 졸업 후 임시로 거주지역에 있는 대한민국거류민단 지부에서 사무업무를 보며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오래 머물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민단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한국인의 접촉을 통해서 자신의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제일 크게 눈에 들어온 것은 파칭코였다. 미래의 희망이라고 인식한 순간 과감하게 한국인이 운영하는 파칭코 점에 취직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번듯한 직장을 갖기를 바랐던 것 치고는 볼품이 없었지만 희망이 있는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무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 돈을 벌기 위해서 파칭코 맨으로서 첫걸음을 디뎠다.

그러나 파칭코 맨이 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확신이 없었던 모리 히로시는 일상에서 집단성과 개인성을 가진 일본인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취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것은 함께한다는 집단성과 따로 한다는 개별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 파칭코라고 인식했다. 더욱이 접근성이 좋고, 출입이 자유로우며,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시간과 돈을 적절하게 소비하는 파칭코가 중요한 사업 거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파칭코 기기에서 연속적으로 튀어나오는 구슬과 인색하게 나오지 않는 구술에 인생과 미래를 거는 도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파칭코를 운영하는 사장 곁에서 헌신하면서 경영비법과 그 업계에 대해서 배웠다. 2년 정도 경험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사이에 기회가 왔다. 아는 지인으로부터 파칭코 폐업 소식을 듣는 순간 결심의 기로에 잠시 서 있었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인수하기도 결정한 곳은 20여 대 파칭코 기기를 가진 곳이었다. 그는 그 파칭코 점을 보면서 절망을 본 것이 아니라 희망을 봤다. 폐업은 새로운 길로 전환하는 기회라고 여겼고, 화려한 파칭코 기기는 희망이라고 인식했고, 파칭코 구슬이 부딪치는 탱글탱글한 소리는 자신을 반기는 환호라고 여겼다. 이 기회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온 것이라는 느낌이 물려왔다.

모리 히로시는 매우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실천하기 시작했다. 동일 업종에서의 견제와 이지메를 민단 지부의 인적 관계를 통해서 해결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배워온 경영지식을 바탕으로 파칭코 점을 최신식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최첨단의 파칭코 기기 설치, 승률상승, 서비스의 다양화와 고급화 등 고객 중심의 문화 인프라를 구축했다.

또한 일류 파칭코 기업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생보다는 젊은 대졸 인력을 채용하고 처우를 개선했다. 일본인과 한국인과 같은 국적을 구분하지 않고 최고의 인재를 선발하는 실력 중심의 채용 제도를 도입했다. 그것은 일본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평등하게 기회를 주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모리 히로시의 다양한 시도는 적중하여 기존의 파칭코 업계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꿈은 최초로 파칭코 빌딩을 세워 각 지역에 지점을 확장하는 사업구상을 구체화하는 것이었다. 그가 구상한 계획은 순풍에 밀려가듯 순항을 했다. 마침내 파칭코 빌딩을 역세권에 세워 파칭코 업계의 방향과 판도를 바꿨다.

파칭코 사업은 자신을 인간답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 ‘돈’을 벌어 주었다. 비로소 일본인처럼은 아니지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었고 자신의 희망을 실현했다. 그는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이었던 ‘돈’을 손에 넣었기에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가졌다.

그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구상을 했다. 사업을 통해서 얻은 이익 중 10%는 사회를 위해서 기부하는 것이었다. 자신처럼 운명적으로 일본에서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을 위해서 지원하였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설에 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헌신하는 봉사 개념은 없었다.

모리 히로시는 파칭코 사업뿐 아니라 다른 사업을 병행하면서 승률이 좋은 사업가 위치에 있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깊게 인식했다. 그것은 짝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결혼은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보다는 자신의 한계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하는 사업 거리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과 후대가 일본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숙명적 불안감이 결정해 준 가치였고 과업이었다.

결혼은 남녀 간의 사랑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행위가 아니라 일본인과 동등해지기 위한 전략이라고 인식했다. 결혼상대자는 사랑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라는 의미가 강했던 것이다. 모리 히로시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 구체적인 실천안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돈을 벌어온 것처럼 실천하지 못했다.

사랑은 서로 다른 마음이 한 곳을 바라보는 가운데 피어나는 아름다운 만남이다. 사랑은 서로 다른 신체가 접촉하는 가운데 피어나는 기분 좋은 더듬이 행위이다. 사랑은 서로가 서로의 정신과 신체를 훔치도록 자유를 주는 그런 것이다. 모리 히로시에게는 그런 정신과 신체의 환상적 조합으로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관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결혼은 여전히 차별을 없애는 수단이며 민족적 편견을 바꾸는 극히 전략적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결혼은 애당초 전략 행위에 불과했고 오로지 보상심리로만 인식했다.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며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결혼은 유사 일본인이 되어 평생 마음을 쪼여왔던 편견을 극복하면 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에게 사랑은 부모나 조국에 대한 애착,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으로만 남아있었다. 불행하게도 배우자가 되려는 여성에게 줄 수 있는 이타적 사랑은 없었다. 사랑이 있는 결혼은 사치이고 과대망상이었고 어머니와 조국에 대한 배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일본에서 누군가가 그로부터 사랑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결혼은 필연이고 사랑은 부속품이었다. 사랑은 없지만 자신의 신분을 덮어줄 사람과의 결혼이 완전한 사랑이 되고 있었다. 신분이 세탁되면 결혼은 완성되는 것이고 흠결 없는 완전한 사랑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완전한 결혼의 대상이 되는 일본인 여성은 사냥감에 불과했다. 그러나 여성을 사냥감으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처참한 광기이며, 자신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마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질주했다.

본래 사냥의 목적은 목표물을 생포하거나, 상처를 내어 잡거나, 목숨을 거두어 완전하게 자기의 소유로 만드는 데 있다. 사냥에는 인정사정이 없는 것이다. 목숨이 붙어있는 채로 잡는 것이냐 아니면 목숨을 끊어 잡는 것이냐 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사냥은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참혹한 방법으로 탈취하는 행위이며, 존재를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수탈 행위이며, 자유를 박탈하는 속박행위이다.

모리 히로시의 내면에는 약탈적 감각으로 결혼 배우자를 선택하는 냉소적인 무자비함이 내재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자리 잡은 사랑은 겨울날 매섭게 피부를 찌르는 찬바람과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 작동하고 있는 사랑은 목숨을 끊는 비수와 같은 것이었다. 내재화된 증오와 울분을 풀기 위해 사람을 표적으로 하는 극히 이기적이며 야만적인 행위에 불과했다.

헐어버리고 애처로운 사랑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힌 채 살면서도 그는 쌓이는 돈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전능한 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돈이 만들어주는 힘을 느끼면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사랑’이 아니라 ‘돈’이라는 수단에 전전으로 의지했다. 완벽하게 일본어 발음을 하고, 일본 국적을 가진 여인을 구매할 준비가 되었다고 인식했다.

지난 부모님이 겪은 과거와 자신이 겪은 현실에 의해 왜곡된 삶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사랑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것은 환상이 아니라 가장 실현 가능한 수단이었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사냥감을 포획하기 위해서 ‘돈’이라는 화살촉을 준비했다. 돈으로 사는 사랑이 다른 성질의 화살촉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에게 기회는 돈으로 만들 수 있고 살 수 있는 것이었다. 평등하게 얻을 수 있거나 지혜로 만들거나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기회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거나 버려도 되는 것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기회가 아니었다. 누구나 잡아도 되고 잡지 않아도 되는 기회는 소나기에 묻히는 눈물과 같은 것이었다.

모리 히로시는 기회를 잡기 위해 돈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돈으로 만든 의도적인 기회는 자신을 돈으로 봤고 방탕하게 만들고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여성과 만나기 위해 돈을 이용한 관계는 성매매에서나 통하는 것이지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인간 법칙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아는 기회가 되었다.

돈으로 매수되는 사냥감은 탐욕의 희생양이라는 것을 알았다. 돈으로 사는 사람은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을 맺는 돈의 노예라는 것을 알았다. 돈을 먹는 목구멍은 마치 하마와 같은 입이었다. 돈으로 해결하는 사람은 돈을 먹는 벌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돈의 힘에 의지했던 자신의 방향과 궤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돈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것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사랑은 용광로에서 끊는 쇳물이었고 두들기며 점점 단단해지는 쇠와 같은 것이었다. 사랑은 고통과 인내를 희생을 통해서 발현되는 돋아나는 잎새이기도 했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기도 했고, 익어가는 열매이기도 했고, 잠시 숨을 둘리다 가는 휴식이었다. 사랑은 그윽한 향기이기도 했고, 찬바람에 떨어지는 외로운 낙엽이기도 했다.

모리 히로시에게 ‘사랑’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자신을 사람으로 그대로 봐주는 것이었고,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인식해 주는 것이었다. 사랑은 달콤하게 밀회를 공유하여 기쁨을 누리면서도 혹독하게 희생하는 것이었다. 그는 ‘돈’이라는 화살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화살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만이 자신과 삶을 구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부정적인 과거와 현실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를 돈이 아니라 진실로 찾는 것이었다. 불신이 가득한 일본, 일본사회, 일본인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것은 오로지 진실한 자신으로만 접근이 가능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내면에서 한(恨)으로 굳어진 두려움과 증오를 희석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모리 히로시는 성공이라는 궤도에서 새로운 사업을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삶을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가운데 돈으로 봉사하면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희생하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픔으로 매여있는 과거로부터, 돈에 매여있는 현재로부터 자신을 구제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사토 마사미(佐藤雅美)라는 일본인 여성으로 사회봉사단체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그녀는 고급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봉사를 했다. 그녀가 눈에 들어오면서 ‘사냥과 사랑’이라는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할 기회가 온 것을 알았다.

사토 마사미는 모리 히로시가 생각하는 완전품도 부속품도 아니었고, 자신이 포획해야 하는 사냥감도 아니었다. 극히 평범한 사고와 행동을 하는 보통으로 살아가는 인간적인 여성이었다. 모리 히로시는 그녀가 갖는 평범함과 인간성에 매료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욱이 부정적인 요소가 파고 들어와 내재화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여성이라는 생각에 깊이 빠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았던 ‘돈철학’에 대해서 종종 사토 마사미에게 설파를 했다. 자신이 숨겨온 전략적 결혼과 사랑에 대한 편향성이 여전히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돈은 궁한 사람에게 유용한 수단이 될지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지금까지 ‘돈에 매인 모리 히로시 다움’에 인간적인 색깔을 칠하고 있었다.

모리 히로시는 자신을 통찰하고 알게 해 준 그녀에게 고백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있는 모리 히로시의 마음을 간파한 사토 마사미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모리 히로시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예, 돈, 돈이죠.”

“왜 돈이죠?”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지 않나요? 기회, 힘, 영향력, 자유, 민족, 삶, 사랑 등...”

“당신의 마음에는 돈 이외 다른 것은 있나요?”

“.....”

“돈으로 사랑을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모리 히로시는 사토 마사미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 의미를 생각했다. 그녀가 하는 말은 하룻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구매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함께 하는 데 필요한 사랑에 대한 구매라고 인식했다. 그녀의 말은 ‘자신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으로 들렸다.

사토 마사미는 모리 히로시의 생각과 관계없이 속내를 털어놨다.


“저의 몸뚱이를 놓고 거래를 해볼까요? 구매한다면 얼마나 지불할 건가요?”

“아니 돈으로 사기엔...”

“저를 구매하는데 얼마를 쓸 수 있나요?”


그녀의 말 한마디에 고백은커녕 자신의 돈철학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과 돈에 대해서 저격을 했다.

“그런 자신감도 확신도 없이 사랑을 돈으로 사겠다고요? 얼마나 돈이 있는지 모르지만 돈으로 저를 구매해 보세요. 폭탄세일을 할 테니 가격을 매겨보세요. 얼마인가요?”라고 말하고 듣지도 않고 당당하게 사라졌다. 사라지는 사토 마사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가진 신념과 걸어온 길이 그녀처럼 당당 했는가를 되돌아보았다.

사토 마사미는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 갈기갈기 짓이겨놓고 사라졌다. 사랑이 구매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었다. 사람은 사람답게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 주었다. 그녀의 거절 앞에서 무엇인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영원히 돈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고, 무거운 과거와 현실이라는 프레임에 빠져 평생 피해 의식 속에 빠져있을 것이라는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모리 히로시는 ‘여성에 대한 사냥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야 인생이 제대로 갈 수 있어.’라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속삭였다. 그는 사랑에 기초해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하지 못했던 결론에 도달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의 무모한 사냥계획이 무덤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에 달가운 미소를 지였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한 인간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비록 사토 마사미는 사라졌지만 그녀가 남긴 말들은 자신을 인간다운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 저격수의 총질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자신으로부터 미련 없이 사라진 사토 마사미에게 가야 한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고 말았다. 자신이 갖은 비인간성이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돈으로 사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랑을 얻는 것이 정도이며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겸손한 자세로, 가장 진실한 자세로 사랑에 접근하는 사랑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장 가치 있는 곳에, 가장 필요한 곳에, 가장 의미가 있는 곳에 돈을 쓰는 돈 사용법이 필요했다.

모리 히로시는 그녀에게 돌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일본인 여성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배우자로서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를 돈이 아니라 열열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자신의 인생에 초대하는 것이었다. 사냥감이 아니라 신붓감으로, 지배가 아니라 존중하는 존재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기로 다짐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한국인과 일본인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 동행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는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서, 과거와 현재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일본인 여성을 사냥해서 지배하려 했던 잘못에 대해서, 자신과 인생을 같이할 그녀를 위해서, 미래를 살기 위해서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모리 히로시는 사토 마사미를 사냥하려다 오히려 그녀에게 포획되는 운명에 직면했으면서도 행복감을 느꼈다. 자신이 사냥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돈의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 인간다운 궤도로 진입하는 법을, 일본에서 얻은 보복심리나 보상심리로부터 벗어나 사랑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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