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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자연인과 거리의 여인

by 청사

직업은 삶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기에 통과역이지 종착역이 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선과 악을 창출할 수 있는 마력이 작동한다. 직업은 선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숭고한 존재 가치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악을 생산하게 되면 파렴치한 존재가 되어 본래의 가치를 상실한다.


인류 최초의 직업은 기원전 우루크를 126년 동안 지배한 왕으로 3분의 1은 인간, 3분의 2는 신인 갈가메시의 신화집 『길가메시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에 그린 사회상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권력을 휘두르는 갈가메시(Gilgamesh) 왕, 동물을 사냥하며 살아가는 사냥꾼, 자연과 동화된 자연인 엔키두(Enkidu), 성전에서 일하는 여인 샴하트(Shamhat) 등이 등장한다. 갈가메시의 폭정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 낸 반인반수(半人半獸) 엔키두(Enkidu)이지만 동물적 야성을 지녀 사냥을 방해하기에 사냥꾼과 적이 되어 거세의 대상이 된다. 엔키두의 동물적 야성을 제거하기 위해 여성이 동원된다. 직업인으로 왕의 권력, 사냥꾼의 삶, 자연인의 야성, 여인의 성 등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 권력은 정의와 불의, 삶은 생과 사, 야성은 야만과 문명, 성은 사랑과 박탈 등으로 발현되는 과정에서 선(善)과 악(惡)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길가메시 서사시』 에서 묘사된 것처럼 각각의 직업은 이중적이어서 선이나 악을 창조해 낼 수 있다. 현실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갖고 있는 직업은 사냥꾼처럼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생이나 사에 직면하여 선이나 악을 만들어 낸다. 직업인으로 나는 내가 선택한 직업이 생과 사의 축에서 어떻게 놀이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M군으로부터 서신이 왔다.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국내외를 오가며

승무원으로서 고객들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비행을 끝내고 동료들과 찍은 사진을 송부합니다.

일본에 자주 오시기에

비행기 안에서 도킹하는 경우를 상상해 봅니다.

점차 더운 계절이 다가오는 듯하니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동료들과 환하게 웃는 모습이나 밀도 있는 단정함은 승무원(Cabin Attendant)으로서 조금의 모자람도 없었다. 고객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에서 철저한 직업윤리를 갖고 있다고 느꼈다. 직업윤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고 행동규범이다.

승무원이 되려는 목적에 대해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직업적 책무를 잘하고 싶다”라고 직접적으로 들은 바가 있어 수긍이 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승무원이 된 것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직업적 락(樂)과 책임을 다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M군에게

멋진 사진 고맙습니다.

매우 잘 거울리며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최근 책무(責務)라는 말이 생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어떤 그리고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인 것 같습니다.

메일주소에 0000라는 숫자가 있어 추측은 갑니다만...

항상 즐거움이 있는 비행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직업이 자신을 지키는 보호막이고 방어벽이며 삶을 이어가게 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내가 배움터에서 선택한 직업은 그런 연장선상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그 직업에 숨겨져 있는 즐거움, 직업윤리, 숭고한 책무는 무엇일까? 나는 잇따른 질문공세에 엉켜버렸다.

나의 직업관은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등장한 직업인들의 행동을 능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가혹하고 지독한 직업인으로 활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냥꾼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동물을 포획하는데 충실하지만 나는 본연의 목적 이외에도 많은 것과 연루되어 무엇을 파생시키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동물과 동화되어 삶을 망가트리고 있는 엔키두(Enkidu)의 야만성을 제거하여 문명화를 유도하게 위해 성으로 유혹하는 거리의 여인이 매우 당당하게 보였다. 문명화를 위해 성을 사용한 행위에는 오히려 숭고한 책무가 있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직업을 통해서 숭고한 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헌신적으로 전력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직업윤리와 책무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한 나약한 생활인이다. 사익과 공익, 자신과 타인, 윤리와 비윤리 등의 관점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라는 급한 마음 때문에 혼돈에 빠졌다. 직업이 생산할 수 있는 선을 찾아야 한다는 때늦은 자각이 벌인 의미 있는 소동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선 타인, 공익, 윤리 위에서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막 시작한 고민이기에 속물의 근성을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 직업이 지나는 통과역은 ‘HAPPY VIRUS STATION’이어야 한다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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