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있어 봄이 되듯이 학생이 있어 내가 있다. 비록 4년간 몸을 담지만 학생은 주인이 되고, 퇴임까지 가는 교직원은 주인이 되지 못한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근무하는 신분은 출신이라는 신분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수라는 신분은 진정한 주인이 아니기에 5월이 되면 손님으로서 대우를 받는다. ‘스승의 날’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위로와 감사로 보낸 모든 것을 책장에 진열해 놨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심과 학생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스승의 날은 RCY(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현직의 선생님과 병중에 계시는 퇴직 선생님을 위문하면서 시작되어 가르침의 은혜를 끼진 선생님이라는 의미로 은사(恩師)의 날로 정착됐다. 그 후 한글을 창제하여 백성을 보살핀 세종대왕의 탄신일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라는 촌지(寸志)가 뇌물로 둔갑하여 어정쩡한 모습을 하고 있다.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진정한 선생님을 뜻한다. 스승의 날이 되면 마음이 무겁다. 진정한 스승이 되지 못한다는 회한과 자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연구실에 장미차, 국화차, 유자차, 커피, 비타민c, 홍삼알사탕, 청포도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마음 한구석에는 스승의 날의 의미를 살리는 그들이 있어 기쁘다. 보슬비처럼 은은하게 적시는 정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롤링페이퍼와 한송이 카네이션의 의미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그들과 함께 만든 정이 얇아지고 이별하는 날이 가까워지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고 미련일 수 있다.
나는 M군에게 봄의 소리와 함께 스승의 날에 받은 롤링페이퍼를 보냈다.
「M군에게
늦은 산통으로 태어난
철쭉이라는 이름을 가진 환한 아이를 보냅니다.
그리고 사진 한 장을 더 보냅니다.
‘스승의 날’ 학생들이 그린 롤링페이퍼입니다.
점이 모여 면이 되는
모래알이 모여 진흙이 되는 기적의 현장입니다.
군과의 만남도
그렇게 승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느 하늘을 비상하고 있는지요?」
「선생님
방콕에서 막 귀국했습니다.
봄의 피사체를 보면서
아름다운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한국에는 스승의 날이 있습니까?
좋은 날이군요.
사진을 보니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마음이 듬뿍 담긴 것 같습니다.
오늘 도쿄는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빗소리가 즐겁게 마음속에 스며듭니다.
방콕의 사진을 보냅니다.」
물론 나도 일본에 있을 때 스승의 날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일본에서는 일반사단법인 교사의 날(教師の日) 보급위원회가 유네스코가 규정한 ‘세계교사의 날’을 ‘교사의 날’로 정해서 매년 행사를 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교사의 날에는 감사와 응원을 하는 편지와 안개꽃을 선물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스승의 날은 감사와 위로로 매우 담백한 정(情)을 쌓는 날이었다. 배움터에서만 할 수 있는 순수한 특권이다. 정은 비합리적인 측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합리적인 측면을 월등히 능가하는 힘을 갖고 있다. 사제 간의 정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계산을 강조하면서 머리가 깨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합리성을 핑계로 벽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은 무엇인가에 굶주려 궁지에 몰려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배움터에서 생기는 아픈 상처는 정이 무너져 생긴 얼룩이 아닐까?
「M군에게
스승의 날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보내온 사진에 많은 정성이 있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많은 것들이 행복하게 보입니다.
빗소리가 가슴에 스며드는 것은
공감하는 존재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는지요.
가슴에 파고드는 즐거운 실체가
조속히 체현되기를 바래봅니다.」
아직 캠퍼스에서 내가 피우고 있는 냉온의 정은 자랑스러운 학생들, 아쉬운 학생들, 그리고 여러 가지 꿈을 갖고 다가올 학생들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빗소리처럼 M군의 가슴에 파고드는 즐거운 실체는 내가 아님이 분명할진대, 어찌 내 가슴에 파고드는 즐거운 비명의 주인공이 M군을 닮아있단 말인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