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를 May 12. 2020

힙스터들

김추자부터 당신까지

최근 춘천에 바람 쐬러 갔다가 ‘데미안 책방’에 들렀다. 강원도 최대이자 유일의 복합문화공간인 그 곳은 직접 가보니 듣던 것보다도 훨씬 더 근사했다. 휴일 오후에 슬리퍼 신고 나와 앉아 한가로이 책 읽는 춘천 시민들에게 덧없이 질투가 날 정도였다. 특히 넓지 않은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서가를 분류해놓은 방법이 썩 마음에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전체가 만화책과 LP 진열대로만 구성돼 있는 2층은 온전히 덕후들을 위한 공간 같았다. 얼마 전 라이즈 호텔 행사에서 DJ 소울스케이프로부터 배운(?) ‘커버로 바이닐(Vinyl) 구분하기’를 시험해보고자, 레코드들이 꽂힌 책장 한 켠을 뚫어져라 봤다. 눈에 띄게 김추자의 음반들이 많다. 아, 김추자가 춘천 출신이지 않았던가. 단순히 그게 이 유별난 큐레이션의 이유는 아닐텐데. 그나저나, 저 앨범 커버들 속의 김추자 스타일링은 지금 봐도 눈이 돌아간다. 언니 멋있어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이 전성기였던 김추자를 처음 알게 된 건 우연히 <님은 먼 곳에>를 들었을 때였다. 그 시절 내게도 김추자의 소울 넘치는 몸과 육감적인 목소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당대 가장 트렌디한 음악을 만들었던 록 대부 신중현과의 작업은 지금으로 치면 글쎄, 초기 몇 차례 테디 음악을 받아 불렀던 선미 정도일까, 아니 아무와도 비견될 수 없을 것이다. 슬프게도 김추자의 톱스타 시절은 청와대 비서실 제의를 무시해 남파 간첩으로 몰린 사건, 고백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소주병을 휘두른 매니저에게 얼굴을 난도 당해 수차례에 걸친 성형 수술을 받은 사건들 따위로 얼룩져 있다. 방송계의 구태와 연예인 처우의 실상을 고발하며 돌연 은퇴 선언을 했던 일 등을 미뤄보면 인간 자체가 투사이기도 했던 것 같다. 숱한 금지곡들을 남기고 대마초 혐의로 가요계를 떠나게 된 것마저도 그녀의 전위적 캐릭터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김추자 하니 떠오르는 이가 있다. 바로 김추자의 열성 팬이어서 나한테 김추자를 줄곧 ‘영업’했던 민이다. 그녀는 내 여중 시절 단짝이다. 그녀와 나는 교내 첫 힙합 댄스 동아리를 함께 만들었고 하굣길에 같이 호빵을 사먹었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 동에 살았으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언젠가 내한한다면 열 일 제치고 티켓팅을 하자고 서로 다짐했다. 둘 다 용케 인서울에 성공했으나 민은 유독 대학 생활에 마음을 두지 못했다. 한예종에서 연출을 공부하고 싶었던 그녀는 영화와 미술과 음악 사이에서 이리 저리 배회하다 결국 어느 여대 철학과를 내 기억이 닿지 못하는 시점까지 아주 오래 다녔다. 식구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꿈을 좇는 와중에도 그녀는 고향 친구인 나를 종종 상수동의 자취방에 초대해 밥을 해먹였다. 그리고는 옥상에서 요즘 만들고 있다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어려운 음악들이었다.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걸 그 때 민으로부터 처음 알았다. 민은 캐나다인 남자친구 데이브를 몇 년에 걸쳐 꽤 오래 만났다. 그 시절 나의 유난스런 학내 여성주의 운동에는 늘 관심을 갖고 응원해줬다. 그녀가 가장 행복했을 시절을 상상해보면 아마 ‘15년에서 ‘17년 즈음에 걸쳐 페미니스트 DJ 크루인 ‘비친다(BICHINDA)’로 ‘케잌샵(Cakeshop)’ 등지에서 활동하던 때일 것이다. 당시 인디 뮤직 레이블 ‘영기획(Young, Gifted, & Wack)’의 수장인 하박국은 ‘부비부비’와 픽업으로 점철된 한국 클럽이 남성 중심의 강간 문화에 기대 운영되고 있다고 꾸준히 주장해왔고, 민이 속한 ‘비친다’ 팀과 작업하며 누구나 안전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파티의 성공 사례들을 만들어냈다. 나도 그녀의 초대로 몇 번 케잌샵 파티에 들러 전에 없던 해방감을 느꼈다. 전해 듣기로 민은 지금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인스타 계정도 사운드 클라우드 계정도 모두 사라졌다.


민 하니 또 떠오르는 이가 있다. 2011년 민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날 위기에 놓인 홍대 앞 칼국수집 ‘두리반’을 돕기 위해 인디 음악가들이 결성한 ‘자립음악생산조합’에서 박다함 씨를 만난다. 앞선 영기획의 하박국, 단편선 등 기획자나 뮤지션들도 이 곳을 기반으로 서로 연대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공연기획자이자 스스로 뮤지션이기도 한 박다함 씨는 2012년부터 레이블 ‘헬리콥터 레코즈’를 운영하고 있다. 각종 해외 밴드들을 가장 먼저 국내에 소개하고 선진 공연 문화 만들기에 앞장서온 그의 행보에 나는 유달리 관심을 쏟게 된다. 그가 기획자로 참여한 ‘서울인기페스티벌’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한국 음악 페스티벌 이정표다. 올해 2회째를 맞는 서울인기는 최초로 ‘일회용품 없는 페스티벌’을 천명했고 나도 몸소 이를 체험해볼 수 있었다. 입구까지 길게 늘어선 다회용기 대여 줄에 더해 행사장 내 모든 부스에서 일회용기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게 농담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자, 처음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오늘 하루 이 번거로움을, 오로지 지구를 위해 무릅쓴다는 게 가능할 것인가. 그러나 사람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잘들도 행사의 규칙을 따랐다. 식기와 함께 받은 생분해 재생 휴지 다섯 장과 군데 군데 마련된 간이 헹굼 시설 덕에 불편함은 거의 못 느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작년에 비해 실제 쓰레기 봉투의 양도 4분의 1 정도로 대폭 줄었다고 한다. 또 행사장 군데 군데 붙어 있는 ‘No means No’, ‘혼자 왔다 혼자 가세요’ 등의 문구와 성희롱·성추행 대응 남녀 스텝 전화번호 등도, 평소 박다함 씨가 중요하게 생각해온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라 인상적이었다. 서울인기 몇 주 전 홀리데이랜드 페스티벌과 허바이올렛이 대대적인 빈축을 샀던 일은 차치하고서라도, 서울인기는 그 자체로 빛났다.


박다함 하니 또 떠오르는 이가 있다. 내 회사 선배인 L이다. 그의 가족 중 한 분이 박다함 씨와 가까운 사이다. L은 이 사실을, 나와 을지로의 ‘신도시'에 갔던 날 거기서 근무중이던 박다함 씨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 L도 서울인기에 가며, 새소년의 음악을 내게 소개해줬다. 그는 디스코와 시티팝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외에도 세상의 모든 돕(dope)한 사운드들과 음악 잘하는 아티스트들을 감사히 여긴다. 사람들은 그를 엉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정말로 기상천외한 소리를 하는데 그것들은 대개 무해하다. 그는 우사단 길과 한남동 어린이 놀이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아는 이들 중 나이에 비해 품고 사는 편견의 무게가 가장 가벼운 사람이다. 정의로운 사람이지만 주로 남의 얘기를 듣는 쪽인데, 가끔 내가 토로하는 사회 불만에 대해서만은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해준다. 그는 작년에 차를 샀고 다음 달에 결혼을 한다. L을 결혼이라는 제도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부류 중 하나로 느끼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알파메일의 프로필에 모자람 없이 부합하는 조건들을 가졌지만 그 전형성으로부터는 한 발짝 떨어져 있고, 함부로 미루어 짐작컨대 결코 남들처럼 가부장제의 단맛을 기꺼이 누릴 것 같은 인간이 아니어서다. 그가 부디 결혼을 하고도 혼자 디스코를 들으러 가는 일을, 친구들과 페스티벌에 가는 일을 이따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힙스터들의 삶은 종종 조금씩 불편하고 어렵다.

이전 06화 꼰대와 사투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