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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를 May 12. 2020

꼰대와 사투리

남들이 눈치 채기는 쉽지 않을 수 있으나, 스스로는 명징하게 자각하고 있는 오랜 습관이 있다. 꼰대와 대화할 때는 반드시 사투리를 쓰는 것이다. 꼰대와 사투리. 사투리와 꼰대. 사투리를 쓰면 일견 꼰대와의 대화가 편안하게 느껴지고, 꼰대와의 대화는 어쩐지 내 입에서 나오는 사투리를 더 리드미컬하게 만든다.


나는 일종의 바이링구얼(bilingual)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부모가 다국적 커플이거나 해외 교민 가정에서 자라난 것도 아닌데 웬 바이링구얼인고 하니, 서울에서 나고 자란 부모님이 경상도의 한 지방 도시로 이사를 와 나를 낳으신 것이 그 연유다. 나는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무조건 사투리로 대화하고 집에 와서는 부모님과 완벽한 서울말로 오늘 하루를 공유하는, 말하자면 ‘2개도(道)어 구사자’였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니 내한테 와 그라노’ 하다가 엄마가 찾으면 ‘으응 엄마 나 불렀어?’로 대답하니, 사회언어학적 용어로 ‘코드스위칭(Code-switching)’도 자유자재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 광경을 지켜본 고향 친구들이 반드시 ‘닭살 돋는다’, ‘공주병이냐’ 따위의 핀잔을 줬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도시에 사는 또래 집단에게 서울말이란 그 자체로 막연한 특권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스무 살 이후의 삶을 서울에서 꾸려온 나는 오히려 사투리를 다시 보게 된다. <백분토론>을 틀면 진행자를 제외한 모든 패널들은 대개 영남 사투리를 쓰는 남성이었다. 서울에서 호남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만나기 쉽지 않은 데 비해 부산, 대구말은 어디서도 잘 들렸다. 경상도 출신 여학생들은 서울로 대학을 오자마자 이내 서울말을 구사하는 반면 같은 고향 출신 남학생들은 대개 학내에서 사투리를 고수하는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늘 ‘못 고치겠다’였지만 때로는 ‘고칠 필요가 없어서’로 들렸다. 사투리는, 엄밀히 말해 경상도 사투리는, 어른의 세계에서 기득권의 언어로 들렸다. 나이가 들고 소위 사회 생활이란 것을 해나갈수록 그 인식은 자연스럽게 짙어지기도 했다.


내게 꼰대와 사투리가 시너지를 내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십여 년간 서울에 거주중인 여성으로서 고향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나누는 사투리의 끝맺음과 강세가 헷갈릴 만큼 당연히 제1언어는 표준어가 됐지만, 사투리는 지극히 전략적 언어로 기능한다. 권력과 위계 질서에 흡수됨으로서 얻는 이득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에만 선택적으로 사투리를 꺼내어 쓰게 되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무례한 농담을 한 상무님에게 용기 내 일침을 가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을 때나, 팀장의 논지에 반박하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날 때 사투리가 나온다. 그리고 은근 이것이 통한다. (만약 상무님이나 팀장님도 사투리 구사자라면 더할 나위없는 '치트키'다.) 자고로 보통의 꼰대라면 아래 사람이 말하는 내용보다는 그 태도를 보게 마련이고 사투리를 구사하는 나는 더 이상 ‘싸가지 없는 깍쟁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습지만, 꼰대와의 대화에서 사투리는 분위기를 소탈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효과가 분명 있다.


꼰대와 사투리는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손해를 입힌 적이 없는 ‘스마트 콜라보’다. 그러나 진정 유의미한 과제란, 위계의 힘을 빌리거나 권력자에게 친근함을 주지 않으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온전한 나의 언어로 전달하는 일일 것이다. 나부터 바뀔 의지가 없으면서 그것이 가능한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당장은 자신 있다 말할 수 없어도, 언젠가는 이런 전략적 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채 상급자와 대화할 날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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