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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봄이다!

꼬마전구같이 잘잘한 꽃부터 불 밝히고 봄이 온다

by 화수분

나는 작은 꽃밭을 돌본다.

열두 가구가 살고 있는 빌라에 딸린 길쭉한 조경용 화단이다.

볕이 깊이 들지 않아서 안쪽엔 지피식물을 심었다.

한 두해 욕심껏 꽃을 심다가, 풍성한 결과를 못 보고 이젠 욕심 없이 풀이나 뽑는 정도다.


날씨가 푸근해져서 주말에 화단 청소를 했다.

마른 가지들을 잘라내고 흙을 골라주다가 낯선 얼굴을 만났다.

이 화단에 내가 모르는 새싹이 돋아났다.


어머 얘는 누구냐?

내가 심은 기억이 없는데 뾰족뾰족 고개를 내밀고 흙밭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수선화 같기도 하고, 무스카리라고 하기엔 잎이 좀 넓고......

꽃을 피워 봐야 이름을 알 것 같다.


진짜 궁금하다.

내가 심어놓고 잊었을까?

누군가 다른 세입자가 심었을까?


비교적 햇빛이 잘 드는 쪽에 줄지어 심어 놓은 걸 보면 내 솜씨 같기도 한데.

내가 심고 잊었다면 난감한 일이고,

다른 이가 심어 놓은 것이라면 고마운 일이다.


장미줄기에 빨간 싹이 돋았다.

빨간 싹이 점점 자라나서 녹색 줄기가 되고 5월이면 그 끝에 환타색 장미꽃이 피겠지.


돌나물이 여기저기 흩뿌려 놓은 것처럼 흙밭을 점령했다.

좀 자라나면 뽑히기 바쁜 돌나물이지만,

지금은 뾰족 올라온 것이 예쁘니까 한동안 봐줄 것이야.


수국, 양귀비, 시계꽃, 치자꽃, 범부채, 국화, 아주가, 철쭉, 회향목, 쑥부쟁이, 부추, 여름두릅, 이팝나무......

어울려 피고 지고 향기도 나누어 주고 그렇게 살아라.

내가 물도 뿌려주고, 풀도 뽑아주고, 버팀목도 세워줄게.


부득이 가지를 치고 포기를 좀 솎아낼 수도 있는데,

너희들 자태가 의젓해지고 뿌리가 튼튼해지라고 그러는 것이야.


꽃밭이 좁고 길쭉해서 미안해.

햇볕이 골고루 들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꼭 알맞은 자리를 너에게 주려고 내가 궁리를 많이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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