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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속을 들여다보면

제각각 제 몫의 일을 수행하는 중입니다

by 화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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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남쪽 지역엔 아직 단풍이 내려오지 않았다.

멀리서 산을 보면 갈색빛이 조금씩 물드는 정도?

산으로 막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정도.


그래도 오랜만에 산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요일 아침에 모악산(793.5m)으로 향했다.

물 한 병과 청포도 스무 알을 챙겼다.

한여름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산에 올랐다.


최근에 비가 자주 와서 그런가 계곡물이 퀄퀄 소리 내며 흘러내렸다.

산의 풍경은 예쁠 것도 없고 그저 다니던 길을 묵묵히 오르던 중에 앙징맞은 푸른 잎을 보았다.

사철나무 어린 묘목이, 잎을 벌레에 갉아 먹힌 채 짱짱하게 버티고 서있었다.


경사진 비탈에 보드라운 흙속에 누군가 꽂아 두었던 사철나무 잎.

몇 군데 경사면에서 특이하게 발견되었던 사철나무 잎을 나는 수개월간 눈여겨보고 있었다.

눈 녹은 산비탈에 사철나무 잎을 꽂아 두었던 그 사람도 묘목을 보고 있을까?

어떤 염원을 갖고 그 잎을 꽂았을까?

어린 나무가 올겨울에도 살아남고 내년 봄에는 새 가지를 냈으면 좋겠다.


수왕사에 들러 약수를 마시고 숨을 골랐다.

범부채 꽃도 지고 꽃 진 자리에는 튼실한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맥문동 보라꽃 진 자리에도 초록색 열매가 흑진주처럼 영롱하게 반짝거린다.


앵두같이 빨간 열매는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다.

내년 봄에 잎이 나면 꼭 알아봐야겠다.

금잔화처럼 꽃잎이 촘촘한 국화향기를 맡아보았다.

비로소 가을향에 흠뻑 취한 기분이 들었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고 정상석을 지나 전망대에 올랐다.

산맥은 굽이굽이 푸르고 갈변하며 계절의 중간을 넘어가는 모습이 중첩돼 보였다.

감흥도 감동도 없이 정상아래 쉼터 벤치에 앉았다.


청포도를 꺼내 먹었다.

참 달고 싱싱하다.

모르는 아저씨에게 한 줌 권했더니 세알을 집었다.

한알 먹고 후회했겠지.

한 줌 다 받을 걸......


무제봉에 구절초가 수줍게도 피었다.

개미취도 간간히 꽃인가 싶게 얼굴을 내밀었다.

요즘 국악원에서 배우는 흥타령 한 대목이 생각나서 흥얼거렸다.


"국화야~ 너는 어이~~~

3월 동풍을 다 보내고~

낙목한천 찬 바람에~

어이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아~이고 대고 허허 너으으~

성화가 났네 해~~~"


하산길은 컨디션이 널널하다.

대원사 화단에서 절토끼를 만났다.

가까이 가도 괜찮아서 반갑게 아는 체하고 사진도 몇 컷 찍고.


산아래 할머니 좌판에서 호박, 시래기, 토란, 대파를 샀다.

집에 가면 친한 동생에게 얻은 민물참게가 있으니,

그걸 달게 지져먹을 생각에 부릉부릉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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