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 설경

날씨 좋고 친구 좋고 가이드 좋았던 제주여행

by 화수분

설명절을 앞두고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앞으로는 큰 산에 그만 가려고 마음먹었었는데 또 갔다.

새벽산행을 시작해 드디어 눈 쌓인 백록담을 보고 왔다.



***1일 차(2026.02.12)

노씨 자매 희정과 우정을 만나서 군산공항으로 갔다.

12시 35분 출발 비행기에 올라 제주공항에 내렸더니 날씨가 화창했다.

우리를 마중 나온 든든한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주에서 살다가 이른 퇴직을 하고 제주로 이사 간 우정의 지인 김선생님이다.

3일 동안 우리를 가이드해 주실 분을 만났으니 아무런 근심이 없다.


우리 일행은 김선생님의 흰색 SUV를 타고 일단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늦은 점심을 먹었다.

역시 우정이 지인이 운영하는 <화리> 식당에서 간단하게 해물칼국수와 돔배고기에 막걸리를 한 잔 했다.

운전걱정 없이 낮술 먹는다고 우리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함덕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우와~~~"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바닷물빛이 표현하기 어려운 투명한, 은색, 옥색, 하늘색, 파란색......


양치만 하고 얼른 내려와서 김선생님을 따라 <서우봉(犀牛峰)>으로 갔다.

함덕해수욕장과 연결된 낮으막한 오름이다.

한 시간 남짓 걸었다.

말등에 올라타서 나뭇잎을 뜯고 있는 염소를 보았다.

한식구로 사는 동물들의 애정이 느껴져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곧 피어날 유채밭도 지나고, 일출 일몰이 멋지다는 봉우리도 지나서, 바다를 보며 짧은 산행을 마쳤다.

김샘과 헤어져 주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우럭조림과 방어회로 저녁을 먹었다.

내일 새벽에 한라산에 가야 되니 일찍 취침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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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차(2026.02.13)

새벽 4시 반에 김선생님 차에 탔다.

김선생님은 한라산에 한 주가 멀다 하고 다닌 분인데 우리를 위해서 라이딩해 주고 동반산행도 해 주시겠단다.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다.


또 감사한 일은 며칠 전에 내린 폭설로 한라산등반이 통제 됐다가 어제 전면 개방 됐다는 것이다.

여행날짜를 잘 잡은 우정이가 신통할 뿐이다.

5시 반에 성판악코스로 산행을 시작했다.

아이젠, 스패치, 장갑, 모자까지 단단히 챙기고 김샘이 준비해 준 랜턴을 켜고 깜깜한 숲길로 들어섰다.


빠그작, 빠그작, 빠그작, 빠그작.

아이젠에 부서지는 얼음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사위는 어둡고 여명의 기미도 없다.

띄엄띄엄 사람들의 랜턴 불빛만 노랗게 움직인다.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왼쪽 언덕으로 어렴풋이 빛이 열린다.

곧 속밭대피소에 도착해 잠깐 쉬고 6시 50분 진달래 밭 대피소를 향해 또 출발.

7시 반부터는 조금씩 환해졌다.

한라산의 설경에 눈이 팔려 발걸음이 좀 가벼워졌다.


8시가 좀 못돼서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다.

삼각김밥, 찐계란, 컵라면, 한라봉, 김샘부인이 준비해 준 생강차까지 펼쳐놓고 요기를 했다.

이제부터 진짜로 오르막과 바람을 견디고 정상까지 분투할 예정이니까.


우리 네 명이 따뜻한 간식을 먹고 있는데 눈을 돌려 보니 20대로 보이는 젊은이 네 명이 우두커니 앉아만 있다.

간식이 없는지 물었더니 산을 내려가서 먹을 예정이라고.

이리 와서 같이 먹자며 주섬주섬 나눠 줬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두 개 주고, 약과와 김밥을 건네 주니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자기들 자리로 돌아가서는 컵라면 냄새를 맡아보고 고개를 젖히며 좋아했다.

제 집에선 귀한 자식들이 새우탕컵라면에 저렇게 감격하다니......

집 나와서 춥고 배고프고 고생해 봐야 부모님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이다 싶어 나도 살짝 웃었다.


8시 반에 진달래밭 대피소를 출발했다.

눈이 쌓여 계단이 비단길이 되었다.

계단보다는 이게 낫지만 아이젠 신고 눈길 걷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터질 듯 뻑뻑하다.


이젠 시야가 트여 구름아래 바다도 보이고 구상나무 고사목들도 늠름하게 서있고 무엇보다 한라산정상을 바라보고 걸으니 다리는 고단해도 기분은 좋았다.

1800고지에서 잠시 쉬는 참에 고향총각들을 만났다.

젊은이들은 힘들어 죽을 맛이라며 숨을 골랐다.

우리는 배낭에 남은 비스켓이며 간식들을 꺼내주었다.

입이 귀에 걸리며 좋아하는 고향총각들이 대견하고 예뻤다.


바람도 불지 않고 얌전한 날씨에 눈 쌓인 한라산 등산이라니!

삼대가 덕을 쌓아야 백록담을 본다더냐?

오전 10시에 드디어 백록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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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이야 좀 지루해도 그게 대수랴.

고마우신 가이드 김선생님은 앞서 내려가시고, 가슴이 너무 뿌듯한 세 사람은 사진 찍어가며 수다 떨어 가며 실력대로 내려온다.

오후 1시 50분에 산행을 마쳤다.


늦은 점심을 쌈밥과 고등어구이로 푸짐하게 먹었다.

나의 최애 소맥을 몇 잔 곁들이니 뿌듯함이 배가되고 백록담에 다녀온 것이 꿈만 같았다.

일찍 숙소에 들어 샤워하고 한숨 자고 나서 바닷가 산책을 했다.


***3일 차(2026.02.14)

날씨가 흐리고 비가 몇 방울 떨어진다.

김선생님이 아침 8시 반에 데리러 오셨다.

비가 와서 오름산행을 포기하고 <선흘곶 동백동산>에 가자고 하셨다.


어제 고단한 산행을 했으니 오늘은 평지를 걸으며 다리를 풀어주는 게 좋을 성싶다.

동백동산은 정글 속에서 편안한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 반쯤 원시의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 힐링이 됐다.


점심은 <방주할머니> 댁에서 먹었다.

이름난 맛집이라 11시만 돼도 줄을 선다고 했다.

도토리와 메밀로 만든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칼국수, 전, 곰취만두, 곰취두부를 만족스럽게 잘 먹었다.


오후에는 제주동화마을에 들렀다가 성산일출봉에 갔다.

동화마을은 어린이가 있는 가족들이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잘 꾸며진 조경에 음식점, 커피숍, 선물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특산품 쇼핑......

한 바퀴 쭉 둘러보고 사진 찍고 아이스크림 사 먹고 또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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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 가는 도로가에 유채꽃이 한창이다.

육지에서는 아직 못 보는 풍경인데 확실히 기온 차가 느껴진다.

우리도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다.

요래요래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들었다.


일출봉을 오르는 계단이 가팔라서 땀이 송골송골 났다.

어린아이들이 힘차게 올라가는 뒤를 따라 꾸역꾸역 한 20분 올랐다.

일출봉 꼭대기에서 분지를 내려다보았다.

여기는 처음 올라와 본 것 같다. 분화구 바깥쪽으로 조릿대숲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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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엔 해변도로를 타고 가면서 바다를 구경하면 된다.

군데군데 예쁜 해변에 들러 사진도 찍고 오징어구이도 사 먹었다.


해가 어스름 넘어갈 무렵 김선생님이 특별한 해변을 보여줬다.

카페 델문도 김녕점 앞바다 너른 갯바위로 걸어 들어갔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촬영한 곳이라면서 우리도 드라마처럼 연출해 보기로 했다.

별 우스운 퍼포먼스를 다 해보고 너무 웃어서 배가 고팠다.


다시 함덕 숙소 쪽으로 이동해서 젊은이들이 웨이팅 하는 맛집 연탄구이 흑돼지를 먹었다.

역시 만족한 식사를 끝내고 김선생님과는 아쉽게 헤어졌다.

우린 내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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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차(2026.02.15)

오전 10시 반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일찍 일어나서 간단히 요기하고 커피를 마시고 짐을 쌌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해변을 20분 정도 산책하고 택시를 탔다.


조금 연착한 11시 비행기로 군산에 도착하니 윽,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금세 제주도 생각이 났다.

사람 참 간사하기도 하지!


늘 함께 여행하며 도움 주는 노자매친구들과 이번 제주여행에 큰 도움 주신 김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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