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의 자서전(6)

- 미안! 너의 16년을 내가 쓰는 거.

by 화수분

새로운 놀이터 - 도청 앞 공원

엄마집은 도청에서 가까웠다.

도청 앞에는 내가 뛰어놀기 좋은 커다란 공원이 있고 도청 안에도 넓은 돌마당, 그리고 나무와 꽃이 엄청 예뻐서 엄마와 나는 매일 그곳에 갔다.


도청 앞 공원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병꽃이 정말 많았는데 이모들도 그 꽃을 모두 좋아했다.

사실은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어서 엄마와 이모들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꽃이 됐다고 했다. 엄마네 식구들은 병꽃을 "애송화"라고 부르며 "칸나꽃"과 함께 돌아가신 엄마를 백번도 더 말했다. 그래서 나도 그 꽃을 알게 된 거다.


도청 사거리 사건이 하나 있다.

내가 도청사거리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엄마한테 잡혀온 사건인데 엄마도 잘못한 건 있다.

날씨 좋은 날 도청 앞 공원에 마침 사람도 강아지도 없어서 엄마가 내 목줄을 풀어줬다.


엄마는 벤치에 앉아서 전화를 하고 나는 계단 아래가 궁금해서 한 발짝씩 내려가다 보니 큰 도로까지 내려왔나 보다. 사방에서 빵빵 소리가 나고 내가 안 보이니 엄마는 쏜살같이 사거리 가운데로 달려와 나를 안아 들고 차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또 숙이고 다시 공원으로 올라왔다.


"어느새 거기까지 갔냐?"라고 노발대발 혼이 났지만 나를 풀어주고 한눈팔았던 엄마도 잘한 건 없다.

내게 다시 목줄을 채우고 엄마는 한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곧장 집으로 왔다.

그 뒤로 그 일을 누구누구에게 여러 번 떠벌이며 고해바치고 그때마다 나를 나무랐다.

아마 지금도 엄마는 그 일을 잊지 않고 "우리 달래가 도청사거리 가운데에 서 있어 갖고 난리가 났었잖어" 그러면서 "애기하고 강아지는 순식간이여! 잠시도 눈을 떼면 안 돼!" 이런 경고를 날리고 있지 않을까?


도청 앞 공원에 가면 거기 사는 길고양이와 산책 나온 다른 강아지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나는 고양이를 만나면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그 애들은 자꾸 도망을 갔다.

강아지들을 만나면 냄새를 맡으러 옆에 오고 좀 귀찮았다.

그래서 나는 으르렁 거리며 오지 말라고 경고를 날렸다.

그러면 걔네 엄마가 깜짝 놀라서

"어머, 어머" 막 그러고, 우리 엄마도 깜짝 놀라서

"어머, 미안해요. 우리 애가 사회성이 없어서 그래요. 물진 않아요." 막 그러면서 각자 애들을 안고 뒤돌아서 다른 길로 간다. 나는 전혀 물 생각이 없었고 한 번도 물진 않았다. 그렇지만 엄마가 항상 곤란해지니까 앞으로는 으르렁 거리지 말아야겠다.


한 번은 오빠랑 엄마랑 나에게 사회성을 길러 주려고 '애견카페'라는 곳에 전화로 상담을 했다.

"우리 강아지가 물진 않는데 다른 강아지가 옆에 오면 으르렁 거립니다. 입장해도 될까요?"

엄마가 아쉬운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우리를 못 오게 했나 보다. 그래서 한 번도 애견카페에 못 가보고 사회성도 못 배웠다. 엄마는 저 - 앞에서 다른 강아지가 오면 미리 나를 안았다. 그렇게 피해 다니면서 우리는 도청마당과 공원을 맘껏 충분히 즐겼다.




엄마가 안고 온 노란 봉투

엄마집이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엄마는 외삼촌 집에 다녀왔다.

아빠가 외삼촌집으로 보낸 노란 봉투를 찾아오는 길이었다.

노랗고 커다란 봉투를 가슴에 안고 돌아온 엄마의 무표정한 얼굴이 처음보는 모르는 사람처럼 낯설었다.

그때부터 소리 없이 길어지는 엄마와 아빠의 노란 봉투 싸움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아침 일찍 일하러 가고, 밤에는 글을 써서 엄마를 돕는 변호사에게 갖다주고, 새벽이 돼도 어두운 발코니 밖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다가, 조금만 잠을 자고 또 일하러 갔다.

난 엄마가 날마다 피곤해서 저번처럼 또 얼굴바보가 될까 봐 걱정도 됐지만, 요즘 엄마는 그때에 비하면 슬퍼 보이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이모와 이야기하면서 아빠가 언니, 오빠 공부할 돈을 안 줘서 엄마 혼자 그 돈을 벌어서 보내주는데 변호사한테도 돈을 또 줘야 돼서 이중으로 힘이 든다고 말했다.

엄마는 빨리 싸움이 끝나기를 바랬고 아빠는 빨리 싸움이 안 끝나기를 바래서 변호사에게 주는 돈이 또 들어간다고 엄마는 누구랑 통화를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엄마와 아빠는 정말 오랫동안 노란 봉투를 들고 다니며 복잡하게 싸웠는데 결론은 시시하게 달라지는 거 없이 각자 지금처럼 똑같이 산다는 것이었다.


이젠 정말로 엄마와 아빠는 남이 되어서 절대로 만나지 않았고 언니, 오빠는 방학 때에는 엄마집에 와서 살다가 돌아갔다. 나도 그 이후 한 번도 아빠를 볼 수 없었다. 아빠얼굴이 생각이 나는지 안 나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우리 엄마가 더 이상 얼굴바보도 안되고 기분 좋은 날이 더 많고 어두운 곳에 가만히 앉아있지도 않아서 나는 안심이 되었다.




또 이사 - 오빠의 귀국

우리 엄마는 집을 짓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사 갈 곳이 자꾸 생겼다.

이번에는 4층 빌딩에 꼭대기로 이사를 갔다. 여기도 엄마가 지은 건물이다. 짐이 많지 않아서 엄마차로 두세 번 나르고, 마지막에 나를 데리고 1층에 엄마 사무실이 있는 4층 짜리 빌딩의 4층에서 우리 둘이 살게 됐다.

빌딩 옆 땅에 엄마 텃밭도 만들 수 있다고 엄마는 좋아했고, 나와 엄마는 우선 새로운 동네를 구경하며 멀리 산책을 다녔다.


엄마는 여름인데도 텃밭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땀범벅이 되고 얼굴은 까매졌다.

그래도 좋아서 매일 조금씩 채소를 따오고 밭에 물을 주고 자꾸 모기에게 물렸다.

나는 엄마가 텃밭일 할 때는 그늘에 묶여 있었다. 옛날에 두 번이나 엄마에게서 멀어지는 사고를 쳤었기 때문에 이제 엄마는 사정없이 나를 튼튼한 배관에 묶어 두었다. 그늘 돌바닥은 시원하고 엄마 일하는 모습을 다 볼 수 있어서 큰 불만은 없었다. 엄마가 실컷 텃밭일을 하고 나면 씻고 간식을 나누어 먹고 또 산책을 나가니까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엄마의 텃밭




오빠가 큰 가방을 밀고 집에 왔다.

미국 생활을 완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거라고 했다.

나는 펄쩍펄쩍 뛰며 오빠가 짐을 푸는 방에서 엄마방으로, 거실로 휩쓸고 다녔다.

오빠도 자꾸 번쩍번쩍 나를 안아주면서 짐정리를 하고 엄마가 요리해 준 갈비찜을 많이 먹고, 나와 함께 낯선 동네를 산책했다.


동사무소도 지나고 원불교 교당도 지나고 학교도 두 군데 지나고 연꽃이 피어있는 작은 호수옆에 소나무아래 벤치에 앉아 쉬기도 했다. 오빠는 외롭게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 얼마나 좋을까? 나는 엄마를 떠나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쓸데없이 마음만 슬프게 만드니까 안 하는 게 좋겠다.


그런데 언니는 오빠보다 더 오랫동안 미국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다. 언니가 가끔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주는데 언니도 미국에서 텃밭에 채소를 기르고 강아지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언니는 박사가 될 때까지 어려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농사도 짓고 살림도 하고 강아지 고양이도 키우고 정말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외롭지 않으려고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 건가?

난 지금도 언니가 미국에서 사다준 핑크색 비옷이 제일 맘에 들고 엄마도 자주, 비가 오지 않을 때에도 나에게 그 옷을 입혀준다. 엄마도 그 옷이 제일 맘에 드는가 보다.


언니의 호박


엄마가 큰소리로 오빠를 부르는 소리, 오빠가 큰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우리 집에서 들릴 때마다 기분이 우쭐해지고 숨 쉬는 공기가 산뜻해진다. 분명히 엄마도 그게 좋아서 자꾸 오빠를 부르고 자꾸 나를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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