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처녀들 콧바람에 쏘댕 기다!
"구례까지는 고속도로로 갈까?"
모처럼 남쪽여행에 들뜬 마음으로 운전을 맡은 나는 동행하는 두 사람에게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며 묻는다.
오래된 친구와 새 친구를 내 차에 태우고 섬진강을 따라 매화꽃 나들이를 간다.
전주에서 출발하여 남원~구례~광양까지 산수유와 매화를 보며 드라이브하고 식사도 하고 돌아오면 하루여행으로는 딱 맞춤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섬진강 나들이를 두세 번 다녀오는데 지난 3년간은 코로나 전염병으로 섬진강 꽃구경은 포기하고 우리 동네 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늘 첫 방문코스는 지인들의 추천으로 구례 사성암으로 정했다.
섬진강 드라이브 길을 오가다 보면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 끝에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절이 사성암이다. 무심히 지나쳐 다니던 그곳이 고승들의 기도터와 기암절경으로 유명한 곳인 줄도 몰랐다가 이번에 올라가서 보니 과연 유명세를 들을 법한 명승지였다.
절마당에 들어서니 눈길 가는 곳마다 정갈하게 청소하고 꽃을 심고 가꾼 정성에 구경꾼의 마음이 몽글몽글 포근해졌다. 큰 나무 밑에 둥글게 미니 화단을 만들고 남색, 흰색, 붉은색의 아네모네와 키 작고 뽀얀 마가렛 이른 꽃을 심어 놓았다.
'아마 나처럼 꽃 가꾸기 좋아하고 절살림을 야무지게 잘하는 보살님이 계실 거야'라고 혼자 생각에 빠져 마치 내 손 끝에서 그 정연한 가람이 완성된 듯 훈훈한 미소로 꽃들을 보았다. 방문객들의 카메라도 다투어 꽃들에게 엎드리며 근접촬영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사성암의 절집들은 오산 정상(531미터)의 바로 아래 절벽에 바위와 바위를 벽삼아 지붕 삼아 여러 전각을 지어 놓았다. 가파른 기울기와 높고 좁은 일터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했을 목수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우러났다.
사성암 뒤쪽으로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절구경을 하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정상으로 향했다. 우리 세 사람 외에도 중년이 넘은 등산객들 여럿이 왁작왁작 좁은 계단을 채우고 오르내린다. 정상부근의 전망대에 올라서서 섬진강과 구례읍 전경을 한눈에 담아보고 눈 시리게 화창한 하늘을 향해 깊은숨도 뿜어냈다. 그 순간만큼은 단 한 점의 근심 없이 자연과 친구와 '두둥실' 뜨는 내 마음의 평화만이 시공간을 가득 채웠다.
한나절동안 산꼭대기에 있는 사성암 유람을 마치자 허기가 밀려오고 다리도 고단해졌다. 가파른 절경을 뒤로하고 S자 코스로 조심스레 산을 내려와 이젠 매화천지 광양으로 달려간다.
매화축제로 전국에서 유명한 광양에는 내가 섬진강 드라이브를 갈 때마다 찾아가는 농촌문화 체험장이 있다.
처음 인연은 20여 년 전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 한편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지역 사투리가 섞인 글을 한편 읽었는데 도무지 알아먹지 못할 대목이 너무 많아서 글쓴이가 궁금해졌다.
'농부네 텃밭 도서관'을 운영하신다는 글쓴이를 물어물어 찾아가서 마치 외삼촌, 외숙모 같이 푸근한 관장님 부부를 만났다. 넓은 울안에 온갖 농작물과 가축, 예스러운 놀이기구, 농기구박물관, 작은 도서관을 둘러보고 나서는 '마음이 쉴 곳이다'하고 철 따라 찾아다니게 됐다.
매년 가을에는 추수가 끝나고 텃밭도서관에서 동네잔치 겸 농촌생활문화 축제를 열었다. 경향각지에서 회원들이 찾아오고 후원하고 가까운 지역의 주민들도 함께 즐기는, 말 그대로 대동잔치가 되어 함께 어울렸다. 나도 몇몇 지인들과 동참해서 우리들의 언니, 삼촌, 부모 세대의 문화를 체험하고 늦가을 촌집 마당의 모닥불가에 앉아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 짓고 그랬었는데...
농부네 텃밭도서관 옆에 왜가리 서식지인 작은 소나무 숲이 있었다. 농부집에서 하룻밤 묵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 숲 둘레로 나있는 좁은 길로 산책을 다녀오면 마음이 한갓지고 기분이 참 좋았다.
그런데 그 숲에 공장이 들어선다고 개발업자가 아름드리나무를 베어내자 관장님은 경운기를 끌고 광양 텃밭도서관에서부터 서울까지 가는 '환경지킴이'시위를 하고 결국 그 소나무 숲을 지켜냈다. 관장님의 경운기가 전주를 지나갈 때 나도 집밥 도시락을 싸가지고 광장에 나가 대접하고 진심으로 응원을 했었다.
아뿔싸!
이번에 3년 만에 그 동네를 다시 찾아갔더니 그 숲은 사라지고 산 하나가 통째로 전원 주택지로 개발이 한창이었다.
"산날망에 집 짓고 살면 좋으려나?"
사라진 숲이 아쉬워서 나도 모르게 혀찬소리가 나왔다. 사유지를 숲으로 유지시킨다는 것도 한계가 있는 일이었겠지 하고 무력감이 밀려왔다.
텃밭도서관 관장님도 그 모습을 보기에 몹시 속이 상했는지 본인의 밭에 생울타리를 만들어 시야를 가릴 계획을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텃밭도서관은 있던 자리는 없어지고 없던 것들은 생겨났다.
비닐하우스를 확장해서 바나나 한그루를 키워 바나나가 열렸고, 아보카도 나무가 자라고 있고, 몇몇 잎채소는 키워서 로컬푸드 매장에 납품을 한다고 예쁘게 수확하고 있었다.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이 자주 체험학습을 오기 때문에 볼거리를 다양하게 준비해 두는 모습을 보니, 경운기 도서관부터 시작하여 평생 농촌 문화운동을 해오신 텃밭도서관 관장님의 열정이 고맙고 부럽기도 했다.
농부네 텃밭 도서관 울안에는 갖가지 나무와 꽃이 각자 세월의 나이만큼씩 실하게 자리 잡고 살고 있다.
마당 끝자락의 연못가에는 홍매화가 한창이다. 그 나무 위에다 못 보던 원두막을 지어 놓고 거기서 차를 마시자고 우리 세 사람을 안내하시는 관장님.
곶감과 알싸한 수정과를 맛보고, 고추장 된장 어간장 감말랭이 쪽파 상추 갓을 한 보따리씩 챙겨 주시는 대로 차에 싣고 약소한 후원금을 남기고 돌아오는 길에 안주인의 야윈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텃밭도서관의 안주인은 내가 처음 만날 때부터 만성신장병을 앓으면서도, 궂은일구더기 속에서 괴짜남편이 하는 일을 묵묵히 뒷바라지하고 있었다. 안주인의 건강염려 때문에 코로나 시국에는 더욱 조심스러워 봄이 돼도 방문을 미루고 있었다. 이번에 만났더니 못 본 사이 신장이식수술을 하고 잘 적응이 됐다고 해서 진심으로 반갑고 감사했다.
내가 텃밭도서관에 찾아다니던 초기에는 이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셨고 관장님의 아들 둘이는 풋풋한 청년이었는데......
어르신 두 분은 모두 떠나시고 청년들이 결혼해서 이젠 손주들이 마당을 차지하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세월 동안 안동에서 시집왔다는 안주인의 고단하고 행복했을 삶에 대한 연민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이런저런 생각 보따리를 섬진강에 띄워놓고 우리 세 사람은 해지기 전에 다시 우리 동네로, 우리 일상으로 돌아왔다.
곧 사월이면 지리산 쌍계사 가는 길에 벚꽃이 흐드러질 텐데 또 섬진강으로 달려가고 싶어서 이른 아침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남쪽 하늘을 올려다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