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술 포함!
'칙-칙-칙-칙------'
'치익--------------'
밥솥 두 개가 다 익혔다고 신호를 보낸다.
외출에서 돌아와, 제일 먼저 쌀을 씻고 서리태 콩을 한주먹 섞어 전기 압력밥솥에 밥을 안쳤다.
그다음엔 돼지고기 앞다리살 한 팩을 물에 헹궈 풍년압력솥에 넣고, 월계수잎 서너 장, 통후추 몇 알, 묵은 된장 작게 한 스푼, 물 한 컵을 붓고 불에 올렸다.
후다닥 샤워를 마칠 때쯤 칙칙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 젖은 발 끝으로 실내화를 꿰어 신고는 주방으로 내닫는다. 갓 지은 밥냄새, 구수하게 익은 수육냄새.
음! ~ 내게 바칠 한상차림을 위해 손놀림이 바쁘다.
냉장고를 열고 몇 가지 식재료를 꺼낸다.
얼른 익혀서 구색 맞춰 식탁을 차려보자.
아침에 콩나물국을 한 솥 끓여서 냄비째 냉장고에 넣어 뒀으니 시원한 국물은 됐고.
표고버섯과 양파를 뚜걱뚜걱 썰어서 작은 웍에 담고 식용유에 잠깐 볶다가 진간장을 한 바퀴 휙 두르면
'치익!'소리가 나면서 간장이 살짝 타는 듯한 풍미가 일품.
마늘 찧어 넣고, 대파를 어슷 썰어 넣고 더글 더글 볶아서 희고 오목한 접시에 담는다.
상추, 깻잎도 씻어 소쿠리에 담고 물받침으로 넓은 접시를 받쳐서 거실 테이블에 미리 갖다 놓았다.
생마늘, 생양파를 곁들이로 조금 썰어 담았다.
한 가지씩 반찬이 완성될 때마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 놓아둔 큰 쟁반에 착착 올려놓는다.
압력솥에서 수육을 꺼내 나무 도마 위에 놓고 고기집게로 잡고 칼 질을 한다.
부드럽게 잘 익었다. 길쭉한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서 쟁반에 올렸다.
시원한 콩나물국, 김치, 아직 따뜻한 버섯볶음, 가지볶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서리태 콩밥 한 공기도 쟁반위에 올려졌다.
양손에 받쳐 들고 발뒤꿈치에 신바람을 달고 거실 탁자로 가서 한 상 차린다.
다시 냉장고를 열고 테라캔 하나를 따서 '그립'감 딱 좋은 유리잔에 콸콸 붓는다.
넘치지 않게 한 잔 가득이다.
상차림 오른쪽에 숟가락, 젓가락.
상차림 왼쪽에 맥주 가득 찬 유리잔.
테이블 가운데 단정하게 자리 잡은 한 사람.
나!
미소와 함께 식사를 시작한다.
당연히 맥주 한 모금이 먼저다.
이렇게 시작된 식사시간이 끝나는데 꼭 한 시간!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밥을 조금 더 퍼 올 때도 있고, 캔을 하나 더 딸 때도 있다.
내가 장보고 내가 요리하고 내가 상 차려서 나 혼자 먹는 온전한 혼밥!
나를 위해 준비한 한상차림을 먹는데 기꺼이 한 시간을 공들이고, 공원에 나가 한 시간 걸으면 폭식에 대한 죄책감을 좀 줄일 수는 있다.
가끔 이런 혼밥을 하고 나면, 내 안에 빈자리를 너무 밥으로만 채운 거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든다.
그러나 이 시간이 주는 만족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식당에 가서 잘 차려진 음식을 먹을 때와 달리, 생생하게 나를 대접하는 정성까지 곁들인 소박한 내 밥상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한 잔의 반주도 따뜻한 위로가 되고.
근데 맥주'잔'에서 느껴지는 손 맛도 중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