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기를 지날 때마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진다. 학교 다닐 때 하루하루 헤어짐이 아쉬웠던 친구들 중에 이제는 만나지 않는 친구들도 있고, 매일 점심을 함께하며 대화가 끊이지 않았던 오래전 퇴직한 회사의 동료들도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종종 고민한다.
메신저에 남아있는 목록에서 삭제를 할지 말지를.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들로 멀어지게 된다.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경우가 가장 많지 않을까 생각은 하지만.
예전에 나의 한 시기를 함께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나의 과거 한 부분을 알뿐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나를 아는 것일까?
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은 낯선 사람들이다.
아무 거리낌 없이 마치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대화를 이어나가기에는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대화를 이어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 대화가 그 사람들과 나의 멈춰진 시간의 벽을 단번에 넘기는 힘들 것이다.
나 스스로는 변함없어 보이지만, 나의 삶은 매일 변화했고, 그 변화가 긴 시간을 두고 봤을 때는 큰 달라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만남을 지속하며 나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함께 시간을 공유하며 삶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나를 안다고 말할 수 있겠지? 나도 그 사람들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지.
안다는 것에는 수많은 경우의 수와 정도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예전엔 알았지만,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한때 알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제는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낯선 사람들.
이제 다시는 편지를 쓰지 않겠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변해 가고 있다는 걸 무엇 때문에 알려야 하는가? 내가 변하면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엇이다. 그러니 이제 내게는 아는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하다. 낯선 사람들에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수야 없는 것이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