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힘든 또 다른 이유

by 글밤


생각해 보면 살아가면서 ‘시작’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한다. 계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외부의 변화를 나타낼 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시작’이라는 단어의 뜻을 헤아려보면, 나 스스로에게는 너무 남발하는 것만 같다.

어떤 일이나 행동이 실제로 시작 단계에 이르거나 머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작이라는 단어로 합리화하거나 혹은 나 스스로에게 강요하기도 하면서 삶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렵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조금 전의 지금과 이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알지 못하고,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마음에서 생겨나는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더욱 어려움을 증폭시킨다. 그런데 일단 시작이 되면 당연한 감정처럼 느껴지던 두려움은 조금씩 줄어든다.(그래서 삶의 지침 등을 다루는 책들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진행되기에 일단 시작하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하지만, 나는 두려움 말고 시작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끝맺음’

우리의 삶은 직선으로 곧게 나아가지 않는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선의 두께도 다양하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결심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한 수많은 망설임, 위에 적었던 두려움, 걱정, 그리고 지난 경험에서 나온 제자리를 맴돈 수많은 흔적들이다. 이 흔적들이 더 두꺼워질수록 시작하기가 힘들어진다.

예전에 취미로 그림을 배울 때였다.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아무리 내 그림을 봐도 완성이라고 말할 타이밍을 몰라서, 선생님께 물어봤다. ‘이 정도면 될까요?’하고, 그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여전히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지침이 되곤 한다.


멈출지 더 할지는 본인 선택이라는 것.

내가 더 손을 대서 그림이 좋아질 수도 있고, 아니면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그 고민에 빠져서 앞에 놓인 그림만을 보고 있으면, 나는 다른 그림을 시작할 수 없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들이 끝맺음과 시작으로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작은 매번 하나의 기준점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점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산뜻하게 출발하기 위해서는 뒤에 남겨진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내가 수없이 시작했던 시작은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채 그에 따른 고민만이 남아있다.

여기서 끝맺음을 할지, 아니면 계속 끌고 갈 것인지의 고민. 그리고 그 고민은 새로운 시작을 가로막는다.

모든 하루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끝이 있다.

그리고 더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여전히 지난날의 잔상이 다음날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어느 순간부터 시작과 끝이 모호해진다. 그러면 나는 또 뒤늦게 오늘을 시작하고, 또 오늘에 대한 미련을 내일에 넘긴다.

10월의 첫날.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지나갈 시간이 시작되었다. 내 마음은 아직 9월에 머물러 있고, 여전히 끝내지 못한 일들을 붙잡고 있는데, 10월은 시작돼 버렸다.

미련과 후회라는 감정이 강하게 자리 잡는 시기도 시작되었다.

연말에 가까워지면서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감정이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이 감정들이 요즘에는 어제의 일들에 대해서도 하루 건너 하루씩 밀려든다.


오늘은 9월을 놓아주자.

나 스스로도 10월의 시작을 시작하자.


그리고 2025년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시작을 시작하자.

'2025년' 내가 그린 이 그림의 완성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 새해를 앞두고 또 머뭇거리지 않도록.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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