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변덕스러움이 10월을 채워가고 있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가 계절의 색을 더욱 짙게 만든다.
신기하다.
매일 보던 풍경도 계절의 색을 입으면 달라 보인다.
물을 머금은 정도에 따라 수채화의 색감이 달라지고, 물감을 덧칠함에 따라 질감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가을 하늘은 맑고 청량하기도 하지만, 묵직한 깊이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온전히 가을 하늘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밀려든다.
추석 때도 비가 와서 보름달을 보지 못했는데, 당분간 계속 흐림으로 뜨는 기상예보를 보면서 더욱 아쉬움이 밀려든다.
지금 느낄 수 있는, 비 내리는 가을의 감성을 충분히 만끽할 수밖에.
찬 공기가 만들어 내는 뿌연 유리창을 따라 흐르는 빗방울을 보면서 나의 감성도 가을색으로 물든다.
가을이 되면 떠오르는 시들이 있다.
가을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늘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떠오른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윤동주 / '별 헤는 밤'에서
떨어지는 낙엽들을 바라볼 때면 별 하나에 아름다운 이름을 하나씩 불러볼 때 나온 시인이기도 했던 릴케의 시가 떠오른다.
잎이 떨어진다. 멀리에선 듯 떨어진다.
하늘의 먼 정원들에서 시든 것처럼
거부하는 몸짓으로 잎이 떨어진다.
그리고 밤마다 무거운 지구가 가라앉는다.
모든 별들에서 떨어져 나와 고독 속으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 / '가을'에서
이제 서울의 밤하늘에서 쏟아질 듯 가득한 별을 보는 것은 힘들어졌지만, 그 너머에 수많은 별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별들을 바라보았던 시인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한다.
하지만 고요한 밤의 침묵만이 나를 이끄는 느낌이다.
이 느낌이 고독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어도 좋다.
지금 이 느낌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순간 나는 시인이 된다.
나의 언어로 쓰인 어쩌면 내 삶의 최초의 시를,
잔뜩 멋이 들어가고,
짐짓 센티하고,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하지만 사라지도록 두고 싶지 않았던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가득 품은 시를,
이 계절, 가을만이 가진 감성 필터가
비단 나만이 아닌 우리를 시인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