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의 절정을 지나 겨울로 들어서는 시기가 되면,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한다.
딱히 의도하는 건 아니지만, 이때는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는 것에 더해, 나이 감각 역시 민감해진다. 단순히 나이가 점점 많아진다는 생각만은 아니다.
겨울이 되기 전에 늘 대청소를 한다.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공기질이 나쁘지 않은 이상은 창문을 열어놓는 시간이 대부분인데, 겨울에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먼지들도 털어내고 방에서 지내기 편한 구조로 가구배치를 조금 바꾸기도 한다.
그러다가 보면 당연히 물건들에게도 생각이 멈출 수밖에 없다.
최근에 구입한 것들도 있지만, 나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것들이 훨씬 많은 내 방.
모서리가 조금씩 벗겨져 가기 시작한 책상, 내가 앉는 자세에 따라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 의자(나사를 조이면 괜찮아지겠지만, 자꾸 미루다가), 사용 중인 필기도구와 노트, 연습장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도 몇 년의 시간을 함께 하고 있고, 침대나 옷장 같은 가구들은 그 이상으로 오래 사용한 것들이다. 내 삶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와 함께 내 인생의 시간을 함께 보낸 이 모든 것들도 이렇게 마모되어 가면서 나이 들어가는구나 이런 생각 말이다. 내 외적인 모습이 변해가는 것처럼.
다음은 책장이다. 책에 먼지가 굉장히 많이 쌓인다는 사실 - 어릴 때는 책들을 다 꺼내놓고 읽고, 정리하고 또 다음날이 되면 또 꺼내고를 반복하기 때문에(부모님의 수고와 결합되어) 괜찮지만, 어른이 되면 읽은 책을 다시 꺼내 읽는 것은 나의 경우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렇게 한번 책장에 자리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 오랜만에 책들도 꺼내 먼지를 털어준다. 그 과정에서 책장들을 빠르게 넘기다 보면, 그 책을 읽던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중간중간 밑줄, 메모, 포스트잇들을 보면서 이때는 이런 생각을 했고, 지금의 나를 만든 어떤 생각들은 여기서 출발했구나라는 발견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내면적인 부분에서의 나이 듦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오래된 책들은 겉모습도 닳아가고 있지만.
나이 든다는 게 뭘까?
시간으로 인해 생겨나지만, 시간이 지난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는 나이 듦.
성장의 느낌, 성숙의 느낌, 결실의 느낌을 더 강하게 풍긴다고나 할까?
시간이 흐르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지만, 나이는 내가 잘 나이 들어갈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겨울은 여름과 함께 긴 계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이 지나면 수많은 외부적인 변화가 있다. 겨울의 시작 때와는 다른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가게 되고, 급작스럽게 따뜻한 봄이 찾아온다. 자연은 언제나 자연의 일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속도로 해 나가니까.
왠지 모르게 쓸쓸해진다.
나의 삶에 들어와 있는 것들은 모두 다른 이의 시간과 나이를 담고 있다. 내가 읽은 책의 작가들은 자신의 책이 나와 함께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남은 마지막 책의 먼지를 털어내면서, 내가 잘 나이 들어갈 수 있기를 또 한 번, 새삼스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