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 작가의 '홀딩 턴'을 읽고
그 후로 둘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예전엔 이 말을 참 좋아했다. 사랑하는 둘이 결혼하고 난 뒤 당연한 듯 행복하게 살 것 같아서. 하지만 그건 결혼이라는 생활의 현장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그 후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두 사람은 얼마나 서로를 맞추며 살아야 할까? 결혼하기 전 미치도록 좋았던 부분이 결혼하고 난 뒤 단점이 된다는 사실을 이젠 알 수 있다. 또한 결혼이라는 제도가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충만할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제 결혼한 지 햇수로 20년이 되어 간다. 20년의 세월 동안 꽃길을 걸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사소한 습관과 행동 때문에 화가 났고, 이후엔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신경전이 있었다. 하지만 습관이나 행동은 하나도 변한 게 없고, 이젠 그걸 눈 감거나 무시하는 걸로, 혹은 내가 조금 부지런해지는 걸로 타협하게 되었다. 만약 그런 모든 행동들을 타협하지 않고 여전히 거슬리는 걸로 생각했다면 우린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결정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만 이혼의 과정도 쉽지 않다. 서유미 작가의 ‘홀딩, 턴’을 읽으며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건조하게, 하지만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해서 좋았다.
4월의 어느 일요일, 결혼 5년 차 지원과 영진은 헤어짐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 만났던 댄스 동아리, 그리고 사랑 고백과 결혼 과정.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냉랭한 기운이 가득하다. 이혼 이야기가 나오면서 지원은 영진과의 만남부터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단순한데 함께 살 수 없는 이유는 구질구질하게 길었다. 그래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사연들을 하나로 묶어 사람들이 성격 차이라고 명명하는 것 같았다. (122)
사랑이 충만한 시기와 완전히 고갈된 것 같은 시기와 미움이 창궐하는 시기와 다른 욕망을 품은 채 바깥을 힐끔거리고 서성대다가 발길을 돌리는 시기까지 모두 합쳐 결혼 생활이 되는 것이다. (216)
무엇보다도 사랑과 생활이 겹치는 지점이 불편했다. (218)
살다 보니 누군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러서 신뢰가 깨지고 그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서로 죽일 듯이 싸워야만 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로의 뒷모습을 보며 적의가 담긴 눈길을 쏘아대는 순간 헤어짐이 시작되는 것이다. (229)
전혀 다른 사람이 만나 같이 사는 것. 사랑하면 뭐든 용서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서로의 습관 때문에 잔소리하는 경우가 있다. 기분 좋거나 컨디션이 괜찮을 때는 그 자체를 넘어갈 수 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엔 그런 습관들 하나하나가 짜증이 되어 돌아온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극복할 수 있는 것과 넘어가기 어려운 것.’이런 것들은 과연 몇 가지가 될까? 변하지 않았고 변하기 힘든 것들을 남편에게 강요하고 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다. 또한 극복할 수 있는 것과 이것 정도면 괜찮아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은 또 무엇이 있을까? 이것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린 그 흔한 성격 차이란 이유로 이혼을 하게 되는 것일까? 지원과 영진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결혼한 부부다. 모나거나 튀지 않는 평범한 부부. 그들이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고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이혼에는 그 이유가 다양하다고 했던가?
이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내 옆에 있는 그 남자. 내 남편 외에는 함부로(?)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사랑하게 될 내 아이들에게 기대(?)가 크다. 이 녀석들은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이별하며 그 아픔을 어떻게 이겨낼지. 사랑하기 때문에 당사자만 보고 결혼하면 좋겠지만, 결혼을 해보니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된다.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결혼이나 이혼이라는 주제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겠다. 쉽지 않은 선택이 결혼이지만 또한 쉽지 않은 선택이 이혼이다. 사랑으로 지었던 건축물이 무너졌다고 해서 그곳이 폐허가 되는 건 아니다. 그 자리에 다른 꽃이 피어날 수도 새로운 건축물이 지어질 수도 있다.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보며 우리의 결혼 생활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린 누구를 위해 결혼을 유지하고 살아가는지... 나도 내 생활을 뒤돌아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