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의 비밀은 외계인?

나인(천선란)을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드라마에 나오는 극적인 출생의 비밀. 드라마에선 그렇게도 흔한 것이 왜 현실에선 만나기 어려운지. 사춘기 시절 나는. 나에게도 그런 출생의 비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랬다. 어느 날 짠~~ 하고 나타나는 부잣집 부모님. 이제 내가 널 데리러 왔어하는. 하지만 나는 울 엄마의 외모를 너무 닮아서 결코 출생의 비밀은 없을 거라는.. ^^ 사춘기엔 한 번쯤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되는데 어느 날 나에게 너는 외계인이야.라는 터무니없는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외계인인 내가 특별한 능력을 발휘한다면? ^^


열일곱 살 나인은 이모와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어느 날 나인은 식물의 목소리가 들리고 손톱에서 새싹이 자라나게 된다. 이런 나인에게 승택이란 소년이 찾아와 ‘너와 나는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이모는 나인에게 그제야 비밀을 털어놓는다. 나인은 ‘아홉 번째 새싹’으로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 하루아침에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 나인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식물과 교감하는 능력을 통해 나인은 2년 전 실종된 박원우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나인은 박원우 사건을 알리기로 마음먹지만, 숲이 전해준 이야기이기에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나인은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 현재와 미래 그리고 승택의 도움을 받아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알릴 방법을 찾기 시작하는데...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내는 것이라고 했다. (27)

성벽처럼 쌓여 있던 화목이 모형이었음을 받아들이는 건 제 손으로 벽을 부수는 고통이었다. (36)

세상 모든 일들은 엮이면 피곤해진다. (137)

소수가 다수를 이기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겹고,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 나게 구는 것이라고. (138)

인간들은 그래. 믿을 수 없는 게 하나 생기면 모든 걸 다 가짜로 만들어 버려. (144)

말하지 못하는 게 생길 때 관계에도 거리가 생기는 걸까? 그럼 끝끝내 말하지 못한다는 건, 그렇게 멀어지다 결국 남이 된다는 걸까? (153)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세상 바깥에라도 그 이름을 붙여 두고 싶은 것이라고. 파도에 휩쓸릴지라도 모래에 이름을 적어 두는 것이라고 (158)

사랑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걸. 사랑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그럴듯한 낙관주의라는 걸. 낙관주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173)

이 세계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괴로운 것 같아. 누군가가 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이 찢고 나간 틈으로 또 다른 세상이 보여. (178)

버티고 사는 건 전부 강한 것이다. (382)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존재하게 한다. (416)


꽤 매력적인 소설이다. 나인을 외계인이라 설정했지만, 학창 시절 우리 곁에는 외계인 같은 특별하거나 특이한 친구들이 있었다. 이 친구들을 통해 우리 곁에 늘 함께 하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춘기 시절 늘 하는 이야기. 비밀은 없어야 해. 이거 너만 알아야 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돼.로 시작하는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 비밀이 생기는 순간 약간의 틈이 생기고, 한 번 생긴 틈은 악어의 무서운 입처럼 벌어지고 만다.


어른이지만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 아이들 앞에 성적이, 대학이, 자본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걸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인성은 그지 같아도 공부만 잘하면 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나는 아니라고,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청소년 소설 같지만 어른과 함께 아니 부모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고민과 아픔 그리고 다양한 생각들. 그들의 생각이 조금 달라도 그건 틀린 게 아니다. 우리들 부모가, 어른이 다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그래야 복잡해지지 않는다고 나인에게 말하는 어른들. 하지만 나인과 현재, 그리고 미래와 승택은 그런 어른들의 생각을 깨부순다. 그게 힘든 일이어도 깨야 한다고 그렇게 말한다.


어른인 내가 오늘을 사는 것도 기적과 같다. 아프지 않고 무사히 무난히 지내는 시간 자체가 매일 기적 같다. 나의 하루가 그럴진대 아이들의 하루는 또 얼마나 기적 같은 하루일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어떻게 마음이 성장해야 할지 모르는 그 아이들이 하루를 살아간다. 이 또한 매일 기적 같은 일 아닐까? 어른이 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는 것 인지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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