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를 읽고
어떤 스타일이 되었건, 어떤 주제가 되었든 나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읽었을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의 신작이 나왔고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감동을 줄지 기대를 많이 했다. 그렇게 읽게 된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 작가에게 뜬금없는 소재나 주제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소재가 되었든, 주제가 되었든 쓸 것이고 독자는 읽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쓰고자 한 미래의 세계는 이런 느낌이구나 싶은. 하지만 조금은 생소한 느낌의 먼 미래의 이야기? 아니 어쩌면 조만간 이런 세계가 도래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지구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선 인간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사라지는 인간이라. 인간이 사라지고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
열반의 세계에 오르는 것. 그것은 다음 생에 태어나지 않는 거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번 생에 덕을 쌓아서 다음 생에서는 절대 태어나지 않는 것.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도 다음 생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 태어나는 그 자체가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든 적든, 얼굴이 예쁘거나 못생겼거나, 이름을 날리거나 아니거나 사는 건 그 자체로 고통이다. 사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둥, 행복은 큰 게 아니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오는, 우리 주변에 있는 거라고. 가능하면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까?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도 어떤 날은 내가 미친 듯이 외롭고, 어떤 날은 미친 듯이 쓸쓸하고 어떤 날은 그냥 힘들다. 아무 생각 없이 짜인 프로그램대로 산다면 이런 삶의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소설은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멀지 않은 미래. 소년의 아버지는 유명한 기업의 IT 연구원. 아버지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 날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리고 자신이 인공지능 로봇이라고 한다.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지닌 철이는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믿지 못한다. 자신을 한 번도 로봇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철.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선이와 민이와 수용소를 탈출하는데...
나만 그럴 것 같지 않지만, 주인공의 이름이 ‘철’이라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은하철도 999’다. 그 만화에서도 주인공 이름이 철이었던 것 같은데,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인공지능 로봇과 같이 생활하게 되는 것일까?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면 지금처럼 비인간적인 행동은 싹 사라질까?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대부분이니까, 억울한 일은 사라질까? 인정은 없고 옳고 그름만 있는 세상. 사람은 죽지만 로봇은 부품이 고장 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살 수(?) 있는 세상이라니.
삶이 아름다운 건 끝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죽는 유한한 삶. 그렇기에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고민하고, 생각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한하게 산다면, 그런 삶이 지속된다면, 사는 게 감사하고 고마운 일 일까? 사는 게 즐겁지는 않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냥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삶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나를 잃지 않고 나로 산다면 다행인 걸까? 언제든 재부팅되고, 내 기억이 기록으로 남는 것. 언제고 새로운 몸으로 재탄생되는 삶이라는 것. 그런 인생을 사는 로봇이라는 것.
이번 책은 어렵다. 읽는 게 어렵다기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쉽게 읽고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의 존재.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물음. 아마 답을 없을 것이다. 나도 나의 존재를, 내 삶과 죽음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이렇다 할 답은 없으니까. 답이 없기 때문에, 그냥 내 나름대로 열심히, 착실히, 또 때론 그냥 대충 살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매일 열심히 살 수 없고, 매일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 10이라는 단계의 삶이 있다면, 5의 하루는 대충 재미있게 살지만, 나머지 5는 내식대로 열심히 사는 게 나만의 정답이다. 이런 나의 믿음이 혹은 나의 규칙이 어느 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살아봐야 뭐가 있어?라는 자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럼 그때 다른 형태로 살아가야지. 정답은, 인생의 내 정답은 내 생각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거니까.
선 그리고 철. 그들 중 누가 더 행복했을까 물을 필요가 있을까? 그들 중 누가 더 가치 있게 살았다고 비교할 수 있을까? 선이든 철이든 그리고 그게 나든 간에 누구의 삶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오늘 내가 살고 있는 현재가 중요한 것이다. 우린 유한한 삶을 산다. 그러니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을 즐겁게 그리고 만족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