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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May 04. 2024

3. 왜 선의 반대는 선하지 않음인가?

                  

얼마 전에 아버지를 뵈러 춘천에 갔다가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자리에 앉았는데 몇 정거장 안 가서 한쪽 팔에 기부스를 하시고 계란 꾸러미를 드신 아주머니 한 분이 타시더군요. 예순은 넘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분이 제가 앉은 자리 옆에 와서 서시는 겁니다. 속으로 잠깐 고민했습니다. 한쪽 팔에 기부스까지 했는데,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 그런데 당시 저도 요즘 다리가 안 좋아서 서 있기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자리 양보를 안했습니다. 당시 버스 앞에 승용차가 가고 있었는데,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자 앞에 있던 승용차가 급정거를 했고, 뒤쫓아 가던 시내버스도 급정거를 했습니다. 내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는 붕 떠서 날아가고, 서 계시던 몇몇 분들도 쓰러지고 부딪치고,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주머니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고는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크게 다치시지는 않았더군요. 아마 제가 진작에 양보했다면 아주머니가 날아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속으로 좀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해봅시다.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저는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아니면 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선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하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그렇죠? 이에 대해 논의하려면 선과 악의 정의가 필요할 겁니다. 먼저 선에 대해 정의해 봅시다. 선이란 무엇입니까? 몇 년 전부터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어가 부쩍 눈에 보이길래 한번 검색해봤더니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이더군요.      


‘선한 영향력’이 요즘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이 말은 한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 선순환을 뜻한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남을 이롭게 하는 선한 마음, 이타성이다. - <한겨레21> 2020.1.15.일자 기사     


기사에서는 선을 이타성,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남을 이롭게 하는 것, 이타성’을 선이라고 정의해봅시다. 제가 아주머니에게 자리 양보를 하지 않았으니 분명 남을 이롭게 하지 않은 겁니다. 그렇다면 저는 분명히 선하지 않은 사람이죠. 앞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선이라 정의했으므로, 남을 이롭게 하지 않은 저는 선한 사람이 아니죠.

선을 이타성이라 정의하니 이타적이지 않은 행위는 선하지 않음이 됩니다. 즉 어떤 기준으로 선을 정의하면 그 기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선하지 않음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는 선이 존재하면 즉 선을 정의하면 선하지 않음이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의 용어대로 하자면 선을 정의하는 순간 선하지 않음을 낳게 됩니다. 선이 선하지 않음을 낳을 수 있는 이유는 선하지 않음이 선을 부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하지 않음은 선을 부정함으로써 나온 것이므로 이는 선하지 않음이 선에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이러한 상태를 수학기호를 이용해서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선 아님 ⊂ 


는 오랜만에 보시죠? 집합 배울 때 나오는 기호로, 는 포함을 의미합니다. 의 오른쪽에 있는 것이 왼쪽에 있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은근히 좀 기분이 이상합니다. 내가 선하지 않다니 마치 내가 무슨 대단히 악한 짓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내가 선하지 않다고 해서 악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죠? 자리 좀 양보 안 했다고 해서 내가 악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다들 동의하시죠? 그렇다면 나는 선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악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선하지 않음 그리고 악하지 않음


나는 선하지 않음과 악하지 않음이 중첩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선하지 않음이 선에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악하지 않음은 악에서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악하지 않음은 악을 부정한 것이니까요. 따라서 선이 선하지 않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악도 악하지 않음을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기호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악 아님 ⊂ 


앞서 우리는 선을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 행위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남을 이롭게 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선 아님에 포함됩니다. 악은 당연히 남을 이롭게 하지 않죠? 악이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인가요? 아니죠? 그렇다면 악도 선 아님에 포함됩니다.                     


                                                   악 ⊂ 선 아님 ⊂ 


이제 왜 노자가 선에 대해 악을 말하지 않고 선하지 않음을 말했는지 이해가 되시죠? 선 아님 즉 선하지 않음은 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무엇의 반대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무엇 아님’입니다. 그런데 선하지 않음이 선 안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선을 부정하고 나올 수 있는 것처럼 무엇 아님도 무엇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그 안에 있다는 거죠. 무엇 아님은 무엇 안에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노자가 예로 든 다른 것들도 그런지 살펴볼까요. 먼저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 - 아름답지 않음


아름다움이 있으면 아름답지 않음이 있습니다. 뭐 이건 당연한 거죠. 세상 모든 것이 다 아름답나요? 아니죠? 아름답지 않은 것도 있잖아요. 그리고 1장에서 설명한 노자의 법칙으로 말하자면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래 표에서 상자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가운데 벽으로 나눠 놓은 것은 저 둘이 서로 반대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움 - 추함


아름다움이 아름답지 않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추함도 추하지 않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아름다움과 추함은 정확하게는 다음과 같은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음 ⊂ 아름다움 - 추하지 않음 ⊂ 추함


우리는 배우 이영애나 전지현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반면에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을 보면 추하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배우 이영애도 골룸도 아닌 보통 사람들은 어떤가요? 이영애나 골룸에 비하면 보통 사람들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상태죠?                     


                                         아름다움 - 아름답지 않으면서 추하지 않음 - 추함


이제 노자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감이 오시나요? 다른 것도 살펴봅시다. 어려움의 반대되는 것은 쉬움이지만 어렵지 않음도 있습니다. 쉬움의 반대되는 것은 어려움이지만 쉽지 않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과 쉬움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 - 어렵지 않음 쉽지 않음 쉬움


어렵지 않음과 쉽지 않음은 중첩될 수 있으므로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선하지 않음과 악하지 않음이 중첩되어 있다고 설명드렸죠?                    


                                      어려움 - 어렵지 않으면서 쉽지 않음 쉬움 


긺의 반대되는 것은 짧음이지만 길지 않음도 있습니다. 짧음의 반대되는 것은 긺이지만 길지 않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긺과 짧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긺 - 길지 않음 짧지 않음 - 짧음


우리가 두 사물의 길이가 똑같다라고 표현하는 상태는 다르게 말하자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긺 -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음 짧음


노자가 예로 들지 않은 다른 것들도 그러한지 살펴봅시다. 위와 아래를 가지고 살펴봅시다. 위와 아래가 생성하는 4개의 대립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 - 위 아님 아래 아님 아래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 상태를 우리는 ‘가운데’라고 부릅니다.                    


                                          위 -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님 아래

                                          위 -              가운데            아래


위와 아래에서 가운데란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님이 중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처럼 서로 반대되는 것은 4개의 대립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운데처럼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 상태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노자가 선의 반대에 악이 아닌 선하지 않음을 쓴 이유는 반대되는 것은 무엇 아님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사물이라고 지각하고 생각했던 것들은 실상 그 안에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음을 노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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