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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Nov 02. 2020

담담하게 이별하기

  뇌와 적혈구의 에너지원이 되는 혈액에 포함되어 있는 포도당. 혈액에 함유된 포도당 농도는 70∼110㎎/㎗ 정도이다. 식사 후에도 180㎎/㎗를 넘지 않으며, 굶주린 상태에서도 60㎎/㎗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포도당은 뇌세포의 유일한 에너지원으로, 혈당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중추신경계에 이상이 온다. 또한 30㎎/㎗ 이하가 되면 경련 및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된다. 아침에 인수인계가 끝나면 데이 번 간호사의 첫 번째 할 일는 당뇨 환자들의 아침 식전 혈당을 재는 일이다. 아침 공복에 혈당이 60㎎/㎗대까지 떨어진 경우들이 간혹 있었는데 보통은 사탕이나 주스 등 단당류를 섭취하도록 하고 조금 있다 재측정을 하면 다시 정상 혈당으로 돌아오곤 하는데 음식물 섭취로도 되지 않는 경우에는 포도당 수액을 정맥 주사를 하여 혈당을 정상 범위로 맞추기도 한다.     


  그의 혈당을 재기 전부터 온 몸에 식은땀이 보였다. 충분히 저혈당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의 혈당은 45였다. 땀만 흘리고 있을 뿐 나와 멀쩡히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도의 저혈당이었다. 약간 어지러운 것 빼고는 아무 문제 없다는 그를 일단 침대에 눕히고 재빨리 주치의에게 전화를 했다. 주치의는 50DW(고농도의 포도당)을 처방했고 바로 주입했다. 30분 후 그의 혈당은 200대로 올랐다. 한 시름 놓았다는 생각이 들 때 쯤 그의 보호자인 그의 아내가 간호사실로 나왔다. 환자가 다시 식은땀을 흘리며 온 몸을 떨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가서 혈당을 쟀을 때 그의 혈당은 다시 40대로 떨어져있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기계 이상인줄 알았다. 당뇨환자들은 보통 하루 1번에서 4번의 혈당을 재며 관리를 했는데 그는 그날부터 두 시간 마다 한 번씩 혈당을 재기 시작했고 혈관 주사의 카테터가 굳어 잘 주입이 되지 않을 정도의 고농도 포도당 주사를 24시간 동안 계속 맞아야 했다. 혈당 측정을 위해 수십번 찔린 손끝은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간호사, 의사들에게조차 듣도 보도 못했던 아주 희귀한 췌장암의 합병증이라고 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저혈당 쇼크 때문에 그에게는 병원 정원에 나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한 순간도 빠짐없이 모든 순간 그의 아내는 그런 그의 곁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병동 라운딩을 하던 담당 간호사가 그가 자리에 없는 발견하고 그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병동 엘리베이터 앞 의자에 쓰러져있었다. 다행히 맥박과 호흡은 잡히는 상태였으나 예상했던 것처럼 그의 혈당은 혈당 측정기계에서조차 ‘측정불가(LOW)’라고 나올 정도의 수치였다. 또다시 고농도의 혈관주사가 긴급하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참 후 그의 혈당이 다시 돌아왔고 대화도 가능해졌다.


“혼자서는 아무데도 안된다고 했잖아요!” 속상한 마음에 환자에게 한 소리를 했다.

“다들 자는데 조용히 잠깐만 바람 쐬려고 했지. 잠깐도 안되네. 알겠어 이제 꼭 붙어있을게.”

3살 아기도 아니고 53살 어른인데 말이다.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해서는 안됐다.     


 모두의 마음을 모아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를 지키고 또 지켰는데 그에게 낙상이라는 큰 사고가 생겼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 침상에서 일어나려다 혈당이 떨어져 어지러워서 바닥으로 넘어진 것이다. 하필이면 머리부터 바닥에 닿아 큰 충격이 생겼고 이제는 그에게 유일하고도 최후의 수단이었던 고농도의 포도당도 이제 별 수 없었다. 통증도 참아내던, 극한의 저혈당도 정신력으로 버텨내던 그였다. 얼른 바깥에 한 번 나가고 싶다던 그의 간절함을 알고 있었기에 더 안타까웠다.      


  그를 봐달라며 간호사실에 뛰어 나올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순간도 그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그의 아내는 그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해야만 했다. 그가 임종실로 자리를 옮긴 날 그의 아내는 조용히 나를 불렀다.


“얼마 안남았겠지만 앞으로 그이 좀 잘 봐줘요.” 

“당연한 말씀을요.” 그런데 그녀의 부탁은 꼭 떠나는 사람의 말투였다. 

“그런데 혹시 어디가세요?”

“저 집에가요.”      


  당황스러웠다. 가족으로는 남편과 자신, 둘 뿐이라고 하셨다.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이 임종실로 옮겨간 날 그의 아내는 집으로 간다고 한다. 그들에게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허락될지 예측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그녀를 설득했다.

“그래도 같이 계시는게 마음이 편하지 않으실까요? 금방 오시는거죠?”

그녀는 남편만큼이나 씩씩하게 답했다.

“아니요. 저는 안와요. 저는 저사람 가는걸 볼 수가 없어요. 간병인이 지금 올거에요. 다 정리되면 전화주세요. 저는 장례식장에서 남편 만날게요.”      


  너무 사랑해서 작별 인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너무 사랑해서 그의 힘든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본인이 살아갈 수 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사랑과 슬픔이었다. 


  그녀가 집으로 모든 짐을 가지고 집으로 떠난 후 임종실에는 그와 간병인만의 고요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3일이 흘렀다. 무의식 상태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그는 그간의 힘듦을 다 내려놓고 떠났다. 그는 우리병원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의 아내에게도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아저씨 방금 가셔서요...”

“고마워요 선생님. 그사람 편해보였나요?”

“네 편히 가셨어요.”

무의식 환자의 무표정은 어떤 시각으로는 편해보이기는 한다. 나의 편하게 보내드리려는 마음이 더해져 어쨋든 그는 한결 행복해 보이는 모습으로 자유로운 곳으로 떠났다.      


  먹먹한 이별을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봤지만 하루에 열두번도 더 싸워가며 병원 생활을 하던 노부부가 떠오른다. 밥 한 숟가락이라도 떠먹이려던 할머니의 숟가락을 입맛 없다며 쳐버리고 두유를 가져오면 우유를 사오라고 하던 참 귀엽고도 어려운 할아버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그 옆을 지켰다. 할아버지가 통증에 힘들어 할 때면 불쌍해 죽겠다며 울며 복도로 나와있기도 했다. 그런 복작복작한 날들을 보내던 중 할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결국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사망환자를 모시러 오기 전 환자의 수액 주사, 소변줄, 산소 등을 제거하고 환자복을 정리해드리면 운구 하시는 분께서는 사체를 하얀 시트로 감싼 채로 이동한다. 할아버지의 사망선언이 끝난 후 할머니는 시간을 잠깐만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선 비단 한복을 꺼냈다. 예쁜 수의를 준비하셨다고 하셨다. 

“도와드릴까요?”

“아니. 내가 하고 싶어.” 그렇게 할머니는 차가워진 남편에게 오랜 시간 낑낑대며 혼자 힘으로 예쁜 옷을 선물하고 있었다.      


  삼류 사랑 드라마, 어릴 적 읽은 유치한 인터넷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대사가 있다. “사랑하니까 떠난다.” 그 별로인 것 같은 대사가 우리의 세상 속으로 들어오니 한 사람의 애뜻함과 슬픔을 모두 담아버린 최선의 한마디가 되었다. 아무튼 쉬운 이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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