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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Nov 02. 2020

다음 주 월요일, 출근하세요

 엄마와 태국 여행 중 여유롭게 조식을 한 웅큼 먹고 다시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때였다.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 잘 받지 않는 편이지만 왠지 모르게 꼭 받아야 될 것 같은 전화들이 있다. 이 전화가 바로 그랬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원자력병원 총무인사팀입니다. 선생님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 하실 수 있으실까요?” 당황스럽기가 짝이 없었다. 내가 입사가 가능하다고 적은 날짜는 아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몇 초 간의 정적이 흐른 뒤 대답을 했다. “음...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자세한 사항은 문자와 선생님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화 통화는 끝났다. 

옆에서 엄마가 물었다. “왜? 무슨일이야?” 

“병원에서 나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데?” 둘이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다. 목요일 오전에 전화를 받고 예정대로 금요일에 귀국했고 토요일에는 입사 서류 제출을 위해 신체검진을 했고 월요일에 첫 출근을 했다.     


  아침 8시까지 가면 되는 자리에 너무 떨려 새벽 다섯시부터 일어났다. 예쁘게 보이고 싶어 온갖 화장품은 다 꺼내놓고 준비를 했는데 간호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여기가 지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모를만큼 떨렸다. 식은땀에 공들여 한 화장은 다 녹아내리고 말았다. 간호부장님, 과장님들께 인사들 드리고 배치받은 병동으로 출발했다. 동관5층. 소화기내과라고 한다. 표정관리가 잘 안돼 살짝 다른곳을 보고있었다. 그 분들도 그랬다. “아이구.. 동관5층..” 바로 몇시간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원내 업무강도로 악명높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었다. 그 악명을 내 몸으로 익히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몸의 소화기관이란 입-식도-위-십이지장-간-쓸개-이자-소장-대장-항문의 장기들이 속하는 섭취한 영양소를 소화하고 흡수하고 배출시키는 작용을 하는 아주 거대한 범위를 말한다. 광범위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 내용은 어찌나 세세하고 복잡한지 소화기계로 처음을 마주한 성인간호학은 전공의 길이 이리도 험난한 것임을 알게 해주었고 국가고시 공부를 할 때엔 소화기계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 국가고시 오답노트를 펼쳤을 때 마치 내가 소화기내과에 배치될 것을 알았다는 듯이 어쩜 그렇게 소화기계 문제들만 정리되어있던지 도움이 되기는 했다.      


  프리셉터 선생님과의 8주가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간호사의 프리셉터란 일반 회사에서 사수와 비슷한 개념이다. 1대 1로 짝을 이뤄 전문의료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간호 대학생들은 1000시간의 병원 임상 실습을 완수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1000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병원 환경을 익혔다고 생각한지라 8주간의 배움이 그토록 고달플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8주 간의 교육기간 동안 나 스스로에게 제일 많이 한 질문은 ‘과연 난 1000시간 동안 난 무엇을 했는가?’ 였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아직 임상 실습을 마치지 않았거나 실습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딱 한 가지 조언을 주고 싶다. 절대 나같이 후회하지 않도록, 당신이 1년 후, 2년 후 바로 마주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게 알에서 막 깨어난 병아리였던 나는 내가 이렇게나 바보 같음에 매일이 놀람의 연속이었다. 이런 머리를 가지고 한글은 어떻게 뗐나, 구구단은 어떻게 외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담하건데 많은 신규간호사들이 이 같은 생각에 많이들 힘들어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가르치고 지켜보는 선배들은 몇 배나 힘들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들의 눈에서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작은 사고, 큰 사고들을 보며 분노를 골백번도 삼켰을 것이다. 한치의 거짓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강하게 키워질 수 밖에 없었던 환경에 감사하다.      


  우리 병동에는 나를 포함해 신규간호사가 7명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얼른 자라나 한 명씩의 간호사가 되어야 했고 적응해야만 했다. 그 안에서 생긴 끈끈한 동기애는 어느 자리에 가서든 나의 자랑거리가 되곤 한다.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야, 너 이거 알아?”라고 소근대며 물어봤다. 소근댐의 보람도 없이 “아니. 나도 모르겠는데?” 라는 바보들의 행진이 일쑤였지만 그것조차 깔깔대며 웃어 넘기곤 했다. 간혹가다 동기가 환자나 보호자들의 컴플레인에 구석에서 눈물이라도 흘리고 있으면 마치 서로 엄마라도 된 양 대신 화를 내주기도 했다. 그 동기애로 버틴 하루 하루가 지나고 점점 우리는 간호사로서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원자력병원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암 전문 병원이다.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항암요법을 주로 다루고 많이 만나보지 못했던 암환자들만 주로 만나게 된다. 알아야하는 것도 내 몫이고 모른다면 그 책임도 내 몫이다 .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했다. 머리가 안돼! 안돼! 하는데 항암 레지멘들은 머릿속으로 당장 집어넣어! 들어가! 하는 그런 매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좌충우돌 신규간호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공부를 하겠다고 퇴근 후에 찾아간 카페에서는 커피 한 모금도 마시기 전에 잠이 들기도 했고 3교대 근무에 적응하기까지 잠이 부족해 지하철에서는 늘 남의 어깨를 빌려 잠이 들었다. (전혀 고의가 아니었음을 이 글을 빌려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암 환우가 대부분인 우리 병동은 언제나 응급실이었고, 중환자실이었다. 몰아치는 추가처방과 자꾸 어디선가 미션을 주듯 터지는 응급상황들, 뒤돌아서면 울리는 콜벨, 자가약이라고 가져오는 환자들의 시장바구니 같은 약들을 보며 어떡해, 어떡해 하다 보면 어느 샌가 퇴근시간이 오곤 했다. 어떻게든 해내기는 했다. 끝나지 않는 일에 눈물이 앞을 가리며 간호기록을 남기던 때에도 있었다. 새벽 여섯시에 출근해 환자들 아침, 점심, 저녁 먹는 것까지 보고 집에 가는 길의 발걸음은 좀비가 따라온대도 도망치지 못할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사골처럼 우려먹는 이야기들이지만 힘듦도 추억으로 생각하니 견딜 만 했다.     


  학교 졸업을 얼마 앞두고 한 병원 간호부장님께서 오셔서 특별 강연을 해주셨었다. “신규간호사를 위한 꿀팁” 강의였고 이 강의로 나의 신규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 공유해보자 한다. 꿀팁은 딱 한가지다. ‘실수하자’ 신규간호사들에게 가장 힘든 점은 자신의 실수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멘탈의 흔들림이라고 하셨다. 극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자신의 실수를 용납할 수 없어 점점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매일 출근하면서 다짐하라고 하셨다. “나 오늘은 꼭 다섯 개의 실수를 할 거야!”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실수는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의료 사고를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섯 개의 실수를 다짐하고 출근한 신규간호사가 그 날 출근해서 네 번의 실수만 했다고 하자. 얼마나 뿌듯할 것이냐? 정말 나는 그 마인드로 버텼다. 눈물이 핑 돌만큼 혼나도 긍정마인드 하나로 버텼다. 그 누구보다도 유리멘탈, 쿠크다스 멘탈인 내가 했으니 다들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잘 할 수 없다. AI라면 가능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 모두 할 수 있다. 하루에 실수 다섯 개. 꼭 기억하길 바란다.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 한 번 끝날 때마다 색칠하던 동그라미를 기억한다면 그 동그라미를 다 채우면 어느 샌가 그 곡을 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실수 동그라미들을 하나씩 색칠해보길 바란다. 언젠가는 완성된 내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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