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와 라캉으로 그림책 읽기>를 마무리하며
브런치를 알고는 있었지만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출간이 임박했던 원고 계약을 파기하고 원점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1년 넘게 공들인 작업이 순식간에 무위로 돌아갔으니... 작가를 무시하는 편집자(사실 이런 편집자는 처음 봤다.)와 그걸 못 참은 작가가 부딪혀 사달이 났다. 처음 부딪혔던 작년 8월에 그만뒀더라면 시간은 벌었을 텐데, 참고 참다가 고작 출간을 2,3개월 남겨둔 올해 1월 말에 터져버렸다.
"계약을 해지하는 게 좋겠어요!"
"작가님이 원하신다면!..."
그리고 계약은 파기됐다! 바로 그날 밤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올해 설 연휴 첫날이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브런치에서 허락(?) 메일이 왔다. 그날부터 기존 글을 30개로 쪼개고 다시 수정해서 거의 매일 브런치에 올렸다. 모든 신경이 온통 브런치로 쏠린 탓에 배도 안 고프고 잠도 안 왔다. 글을 열 개 정도 올렸을 때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브런치를 통해서). 이전 출판사보다 인지도가 훨씬 높은 곳이었다! 다시 미팅을 하고 계약을 하고 출간 날짜를 잡고 원고를 보냈다. 그리하여 출간은 원래보다 훨씬 뒤로 미뤄져 내년 초에나 책이 나올 예정이다.(승질 안 부렸으면 책은 벌써 나왔겠지만 브런치라는 세상은 영 모르고 살 뻔했다ㅠ)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이전 원고를 그대로 책으로 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독자들이 실시간으로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긴장됐다. 한동안은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글을 다시 다듬고 내용을 보강했다. 계약 이후에는 한 주에 한 개 정도 글을 올렸고 그렇게 6월 25일에 마지막 글을 올렸다. 드디어 끝났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두고 봐라! 나와 내 책을 홀대한 일을 꼭 후회하게 해 주겠다! 뭐 그런 독기가 충천했다. 사실 에너지원으로 독기만 한 게 없다. 한동안 늘어지고 힘 빠져서 대충 살아! 를 외치던 나를 눈에 불을 켜고 날밤을 새 가며 원고를 다듬고 올리는 일을 계속하게 만들었으니!
시작할 때 가졌던 분노는 사라진 지 오래다. 글을 올리고 실시간으로 따뜻한 반응을 경험하고 다른 작가님들의 글에 울고 웃으며 내 삶이 많이 풍요로워졌다. 수많은 작가님들이 때론 진지하게 때론 순수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진심을 펼치는 곳! 돈이면 다 된다고 믿기 쉬운 세상에서 돈과 상관없이 이토록 진정성을 뿜어내는 수많은 작가님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니! 브런치를 접하고 내 마음이 말랑말랑 해졌다.
소중한 이 공간에서 나는 다시 새로운 시간을 꿈꾸려 한다.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다독여도 두고, 내 무의식이 자유롭게 말하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도 싶고 또, 한 권으로 묶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인상 깊게 읽었던 그림책도 띄엄띄엄 여유롭게 다루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많은 작가님들이 그려놓는 보석 같은 삶의 지혜를 오래오래 같이 음미하고 싶다. 그동안 복잡하고 어려운 글, 진지하게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다음 글들도 예쁘게 봐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