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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Jan 27. 2021

말로만 듣던 '서른의 실체'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라이프러리

삼십 대가 되는 순간 다르다던 항간의 소문들이 있었다. 이 소문은 건강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체력이 갑자기 확 떨어진다거나, 소화가 안 된다거나, 비타민을 챙겨 먹게 된다거나 하는. 나아가 이제는 연애를 다르게 해야 한다든지, ‘진짜' 친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든지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다. 대체로 이제는 ‘어렸을 때처럼 안된다'며 무모한 도전을 만류하고, 안정을 지향하며, 탐험보다는 축적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그런 류의 이야기들. 말하자면 주로 뭔가 좀 패배적이고 결론적인 톤이 많았던 것 같다.


난 아직 고작 삼십 대의 3년째를 지나고 있을 뿐이고 다른 사람의 경험은 알지 못해 단지 나의 경험만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의 30대는 들리던 소문과는 뭔가 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공감대가 있기는 하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되며 편안함에 익숙해지니 고생은 하고 싶지 않은 게으른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것, 그리고 내 몸의 능력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깨달아 '웬만하면 좀 아껴가며 써야 말년에 고생을 안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 그리고 나이 드는 부모님을 보며 내 인생의 끝 또한 상상하게 되는 것 등이다.


하지만 불안정하던 이십 대를 지날 때 느꼈던, ‘진짜 어른'으로서 무언가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초조함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나의 무지를 인정하기가 쉬워졌으며, 시간의 한정이 자칫 둔해질 수 있는 뇌의 감각을 날카롭게 만드는 각성제로서 반갑게 느껴지게 되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학교나 가족 또는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진정 나와 생각과 마음의 결이 비슷한 사람을 찾는 방법에 조금 능숙해졌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져 내 안의 깊은 것들에 귀 기울이는 법을 알아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를 거치며 점점 나의 세상, 나의 것을 구축하고 싶어 하던 내면의 깊고 간절한 욕구로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희열을 느낀다.



심지어 건강상으로도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아직은 혈기 왕성한가 보다. 오히려 운동을 시작하고 내 몸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되며 신체적 능력이 향상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있다. 악기 때문에 아픈 부분들은 사실 십 대일 때도 아팠던 곳들이라 단지 조금 더 아픈 것일 뿐 사람들의 말처럼 갑자기 어딘가가 확 나빠지는 경험을 하지는 않았다. 내 몸은 분명 노화를 시작하는 시점에 들어섰겠지만, 그렇다고 아직 가속도가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삼십 대에 찾아온 가장 반가운 변화는 ‘잘 모르겠다’라는 말이 점점 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행동했던 예전 모습과 달리 요즘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왠지 즐겁다. 언제든 ‘그래,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라거나, ‘그 부분은 제가 잘 알지 못해요.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무안함과 부끄러움을 무릅쓰는 것은 굉장한 용기와 상당한 배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저지른 하나의 잘못이 자존감을 통째로 흔들지 않도록 내적 견고함을 오랜 시간 다져온 사람만이 비로소 사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어른이 되는 것이리라.


나의 장단점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발전의 기초공사이다. 나만의 기준으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기애와 자존감이 있다면 발전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나의 모든 장단점은 양가적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장점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장점이라고 여겼던 부분이 치명적인 단점으로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나의 진취적 추진력은 일의 진척과 속도에 있어 장점이지만 때때로 함께 일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감성적 둔감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컨설팅 서적인데, 그 책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잘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거나 아주 오만하여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오만한 사람은 좋은 동료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자존심이 있는 사람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부풀려 이야기하지 않는다.’라는 글귀를 보았다. 이 글을 읽으며 나이가 들수록 단호한 태도로 나 자신을더욱 영민하고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오만하고 능력 없는 동료이지 않았는가. 나는 과연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인가.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의 능력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과연 계속해서 말랑한 사고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의 단점을 인정하며 진보하고 있는가.


삼십 대의 나에게는 이십 대보다 훨씬 더 큰 도전과 창작에 대한 열망이 꿈틀댄다. 나라는 인간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한참 멀었다. 그러므로 더욱더 나아질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 뜨거운 열망을 오래도록 품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글쓴이 조진주 바이올리니스트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9살 강아지 미소의 집사. 낭만적 이성주의자이다. 발리에서 한달 살기를 꿈꾸는 등 자연과 함께 하는 힙스터의 삶을 상상하지만 연습/연주 때문에 실행하지 못한다. 쪼꼬렛과 커피, 그리고 일 벌리기 중독자이며 프랑스 소설을 사랑한다. 유난스러운 사람들과 재밌게 살다가 삶의 끝엔 현악 사중주를 연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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